흔들리는 당ㆍ정ㆍ청

▲ 당ㆍ정ㆍ청이 흔들리면 정부 정책은 겉돌고 경제와 민생은 더욱 어려워진다.[사진=뉴시스]
성주 군민 2000여명이 지난 21일 서울역에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반대 집회를 했다. 참외 수확을 미루고, 가게 문을 닫고, 직장에서 연차를 얻어 상경한 이들은 모두 가슴에 파란색 리본을 달았다. 평화의 상징이라며. ‘사드 배치 결사 반대’ 문구가 적힌 머리띠도 파란색이었다. 손에는 소형 태극기를 들고, 목에는 성주군 마크가 그려진 이름표를 걸었다. 성주를 찾은 국무총리가 달걀과 물 세례를 받고 6시간 넘게 빠져나오지 못한 뒤 불거진 외부세력 개입 논란을 의식한 차림이었다.

같은날 청와대에선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열렸다. 박 대통령은 “모든 문제에 불순세력들이 가담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사드 배치 반대 집회가 이념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파란색 리본과 이름표를 달고 상경한 성주 군민들이 이 발언을 전해 듣고 어찌 생각했을까.

박 대통령은 또 “정치권과 일각에서 사드 배치를 취소하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드 배치 외에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부디 제시해달라”고 했다. 이 또한 순서가 틀렸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기 이전에 할 말이지 밀실에서 결정하고 사전 현장방문이나 설명도 없이 배치 지역까지 일방 통보한 뒤 할 말은 아니다.

비밀ㆍ일방주의 사드 배치 결정에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비리 의혹, 친박 인사들의 4ㆍ13 총선 공천 개입 논란 등 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면서 박근혜 정부의 국정 운영이 총체적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국정의 중심을 잡고 나아가야 할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한꺼번에 흔들리면서 정말 말기 레임덕(권력누수 현상) 시계가 빨라지는 모습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직자 사정과 인사 검증을 맡고 사정ㆍ정보기관을 총괄하는 막강한 자리다. 그런 위치에 있는 인사가 수임계를 내지 않은 ‘몰래 변론’과 처가 부동산 고가 매각 등 비리 의혹에 휩싸였다는 점만으로 청와대는 이미 깊은 상처를 입었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우병우 수석을 퇴진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마의 30%대를 근근이 지키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당 대표 경선을 앞두고 친박과 비박 진영간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박 핵심세력이 비박계 후보를 압박한 녹음파일이 공개되면서 혼돈 상태에 빠졌다. 친박 당대표를 세워 남은 임기를 당ㆍ청 친정체제로 끌어가려던 박 대통령의 구상은 날아갔다. 8월 9일 전당대회에서 비박계 대표가 당선되면 새누리당은 힘 빠진 청와대와 차별화하거나 각을 세우려 들 것이다.

권력 움직임에 민감한 공직사회는 청와대의 권력누수와 집권당의 분란을 재빠르게 읽는다. 청와대가 애달는 노동개혁 등 4대 구조개혁과 창조경제 등 핵심 국정과제들이 추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해운ㆍ조선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부지하세월이다. 당ㆍ정ㆍ청이 이렇게 흔들리면 정부 정책은 겉돌고 경제와 민생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런 판에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낮췄다. 지난 4월 3.0%에서 2.8%로 낮춘 데 이어 석달만에 다시 조정했다. 정부가 집행할 11조원 추경을 전제로 하고도 성장률을 낮췄으니 앞길이 가시밭임을 예고한 것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며 수출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기에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경제보복까지 가세하면 타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도 당ㆍ정ㆍ청이 흔들림을 느끼는 듯하다. NSC를 주재하며 “지금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흔들리지 않겠다고만 해선 공감을 못 얻는다. 선거를 통해 권한을 부여받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국정이 흔들리는 원인을 파악해 스스로 제거함으로써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다.

성주 군민, 야당 의원 등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한 국회 동의를 받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친박과 거리를 두며 정리하고,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도 쇄신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그렇지만 국정도 상당 부분 심리다. 지금 날씨가 덥지만 국민은 청와대의 불통에, 여당의 권력다툼에 더 덥고 답답하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