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건조한 숫자의 맹점과 허점

 

▲ 일러스트=남동윤 화백 backgama1@naver.com

# 숫자의 맹점 = 0부터 1까지의 숫자로 표현되는 ‘지니계수’. 소득 불평등을 논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지표다. 소득 분포와 인구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데, 부유층의 소득 점유율이 높을수록 1에 가까워진다. 쉽게 말해, ‘0’은 완전 균등, ‘1’은 완전 불균등 상태다.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지니계수는 0.336(이하 OECD·2013년 기준). 영국(0.527), 미국(0.513), 심지어 북유럽 국가인 핀란드(0.495)보다 수치가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인 0.476과 비교해도 돋보이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단면일 뿐이다. 세금을 뗀 지니계수를 보면 얘기가 180도 달라진다. 영국과 미국의 세후稅後 지니계수는 각각 0.527에서 0.358, 0.513에서 0.396으로 뚝 떨어진다. 세전稅前 지니계수가 0.495였던 핀란드의 세후 지니계수는 0.262에 불과하다. 부유층의 소득이 세금을 통해 효율적으로 재배분되고 있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나라의 세후 지니계수는 0.302로, 세전 수치(0.336)와 별 차이가 없다. 국내 조세제도가 ‘부富’의 불균형을 막는 데 사실상 실패했다는 거다. 숫자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안면顔面이 달라진다. 숫자의 ‘맹점’이다.

# 숫자의 허점 = ‘사실상 도산기업’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고용노동부가 ‘시한부 선고’를 내린 기업을 말하는데, 근로자에게 임금을 주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곳을 뜻한다. ‘그런 기업이 얼마나 되겠냐’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2011~2015년 사실상 도산기업으로 판정 받은 기업은 1만1419곳에 이른다. 같은 기간 법적 도산기업 수(5149곳)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정부의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빈껍데기 회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통계의 이면에는 이렇게 무서운 진실이 도사리고 있다. 숫자의 ‘허점’이다.

숫자는 무미건조하다. 그래서 객관성을 입증해야 할 때 우리는 버릇처럼 ‘숫자’를 제시한다. 국제금융시장에서 국내총생산(GDP), 고용률, 실업률 등 경제 지표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숫자는 완전무결하지 않다. 로데이터(기초자료)나 기준만 살짝 바꿔도 금세 거짓을 품는다. 숫자의 맹점과 허점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숫자의 거짓말’을 냉정하게 짚어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숫자가 바뀌면 정책이 달라지고, 정책이 변경되면 우리 삶도 변하기 때문이다. 숫자, 그 무서운 경제학을 풀어봤다. 
이윤찬·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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