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도전

▲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을 재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사진=뉴시스]
현대그룹이 주력계열사인 현대상선을 최근 빚쟁이에게 넘겨줬다. 재계 순위 20위권의 현대그룹이 중견그룹 수준으로 쪼그라드는 것은 물론 현대그룹 적통嫡統기업으로써의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됐다. 그 중심에는 명가名家 현대그룹 재건을 기치로 내걸고 13년 동안 경영권을 행사했던 현정은(61) 회장이 있다. 그의 명성도 치명상을 입었다.

지난 7월 15일 서울 연지동 현대그룹빌딩에서 열린 현대상선 임시 주주총회. 이날 오전 9시에 시작돼 정확하게 12분 만에 끝난 임시 주총은 현대그룹 역사에 또 하나의 변곡점을 제공했다. 대주주 및 특수 관계인의 지분을 7대1 비율로 차등 감자減資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것. 이로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현대엘리베이터 등 현대그룹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율은 20.93%에서 3.63%로 쪼그라들었다. 이는 현대그룹 주력사 역할을 했던 현대상선 경영권을 40년 만에 빚쟁이(채권단)에게 넘겨준다는 공식적인 결정이었다.

7월 중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채권을 주식으로 바꾸는 소위 ‘출자전환’을 실시하면 현대그룹 측 지분율은 0.5% 미만으로 더 떨어진다. 이어 8월 5일 예정대로 신주가 상장되면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약 40%의 지분을 확보하게 돼 현대상선은 사실상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40년 역사의 현대상선이 우여곡절 끝에 새 주인 산은 밑에서 고난의 항해를 계속하게 된 것이다.

이번 주총 결정은 그동안 한국 재계의 명가名家 현대그룹 재건을 기치로 내걸며 비교적 선전했던 현정은 회장의 명성에도 치명상을 입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한국 재계의 여장부’ ‘현다르크’ ‘뚝심의 승부사’ ‘아시아 파워 여성 기업인’ 등으로 불리며 칭송을 받았다.

유례 없는 불황 파고 못 넘어

하지만 최근에는 13년 전 전업주부였던 그가 채 준비도 안 된 상황에서 급하게 재벌 총수 자리에 오른 게 아니냐는 지적을 듣게 됐다. 이런 평가가 다소 억울하게 들리겠지만 기업경영이란 게 원래 그 결과를 놓고 냉혹하게 평가하는 것이고 보면 어쩔 수 없는 일로도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현 회장(당시 48세)은 2003년 8월 4일 남편 정몽헌(당시 54세) 회장의 타계 3개월 후인 10월 21일 현대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정 회장은 대북 불법송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유명을 달리했다. 2녀1남의 자녀를 키우는 전업주부였던 현 회장은 주위의 우려에도 현대그룹 선장 자리를 맡았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출신으로 결혼 전 사업가의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인지 현대가의 며느리로만 머무르지 않고 당시 사태를 직접 몸으로 부딪치려 했다.

그는 고故 현영원 전 현대상선 회장과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의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가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였다. 이런 배경을 가졌던 그는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과 선대회장 정몽헌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현대그룹의 역사와 전통을 지속적으로 계승ㆍ발전시키는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섰다.

정주영 회장의 8남1녀 중 5남이던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회장 말년에 신임을 크게 받아 후계자 소리를 들었다. 2000년 3월 소위 ‘왕자의 난’을 계기로 정주영의 현대그룹은 2세 체제로 재편돼 현대그룹(정몽헌), 현대자동차그룹(정몽구), 현대중공업그룹(정몽준) 등 크게 3줄기로 분화됐다. 정몽헌 회장이 적통인 현대그룹을 이어받았으나 불과 몇년 후에 그 바통이 아내 현 회장에게 넘어가고 만 셈이다.

현 회장은 취임 초기 시숙부(정상영), 시동생(정몽준) 등과 치열한 경영권 쟁탈전을 벌인 끝에 무사히 그룹을 지킬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현 회장은 현대상선, 현대증권,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아산, 현대택배 등을 주요 계열사로 거느린 채 그룹 재건에 매진할 수 있었다. 재계와 국민들로부터 야무지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으며, 2009년 8월에는 방북해 북한 김정일과 면담하기도 했다. 

현대상선은 현 회장에게는 각별한 회사였다. 그룹 매출의 절반 정도(많을 때는 70% 상당)를 차지하는 주력사 이상의 의미를 지닌 회사였다. 무엇보다 시아버지 정주영 회장과 부군 정몽헌 회장의 꿈이 서려 있는 회사이기도 했다. 금강산관광 사업 등 대북사업이 현대상선을 통해 그 기초를 닦았기 때문. 선친인 현대상선 현영원 전 회장이 상당 기간 최고경영자로 일했고, 그가 창업한 신한해운을 1985년 사돈기업인 현대상선에 합병시켜 사세를 키운 인연도 깔려 있다.

현 회장이 시댁과 친정의 합작품인 현대상선을 갖은 노력을 다해 살려보려 한 이유가 이런데도 있었던 것 같다. 모친과 함께 사재 30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스스로 대주주를 포기한 이번 주총 전에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던 국제 용선료 인하 협상과 사채권자 채무조정, 글로벌 해운동맹 가입 등을 모두 해결해 낸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현대상선에 애착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파산이나 법정관리를 피하고 빚쟁이에게 넘겨주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아 올 날을 기약하고 싶었을 것이다.

현대상선은 1976년 아세아상선이라는 이름으로 출범해 한때 세계 8위 해운선사로 맹활약했다. 하지만 외환위기와 그룹 유동성 위기, 해운 불황 등이 겹치면서 2011~2015년 적자가 계속돼 누적 손실만 1조7000억원대로 불어났다. 현대증권, 현대로지스틱스 등 굵직한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면서 광범위한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현대로지스틱스ㆍ현대증권에 이어 현대상선까지 떨어져나가면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는 12조원 대에서 수조원대로 급격히 쪼그라들 것으로 예측된다. 그럴 경우 재계 순위 20위권을 유지했던 현대그룹 위상은 중견그룹 수준으로 여지없이 추락하게 된다. 연내에 현대상선이 계열 분리되면 현대그룹은 공정위가 지정ㆍ관리하는 30대 대기업집단에서도 빠지게 된다.

현대그룹은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 현대유엔아이, 현대경제연구원, 현대글로벌 등으로 꾸려진다. 정주영 생존 시 삼성과 함께 재계 순위 1ㆍ2위를 다투었던 현대그룹이 분화과정을 거치면서 정몽헌 가계로 넘어와 엄청나게 위축되는 수모를 겪게 된 셈이다. ‘명가 현대 재건’을 내걸었던 현 회장에게는 뼈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굵직한 계열사 매각했지만 결국…

현대상선 포기 이후에도 현 회장에게 숙제는 더 남아 있다. 어떻게 보면 첩첩산중이요 고난의 연속이다. 당장 지주회사 현대엘리베이터 앞에 큰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과거 현대엘리베이터 2대 주주였던 쉰들러아게홀딩스가 2014년 당시 경영진을 상대로 제기한 7180억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 1심 판결이 8월 24일 열린다. 소송에서 질 경우 현 회장 등 당시 경영진들은 7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자금을 현대엘리베이터에 투입해야만 한다.

8년째 표류하고 있는 금강산관광사업의 재개 여부도 큰 숙제다. 개성공단 사업이 중단되고 최근 사드 배치 문제까지 겹쳐 사업 재개를 통한 현대아산의 적자 탈피는 그만큼 힘들어졌다. 현 회장이 오매불망 ‘열려라 금강산’을 외치고 있지만 상황은 악화일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명가 현대 재건’이란 숙제를 다시 풀고 추락한 명성도 되찾을지 궁금하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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