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살돈시대 ❺

▲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여한 참가자들은 돈에 취해 지방을 키웠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박 강사와 김 실장은 대화를 계속했다. 잘 들리지 않았지만 악마 같은 박 강사의 논리는 결국 살을 찌우기 위해 당 대사를 조절하는 췌장의 베타 세포를 휴식기 없이 돌려야 한다는 거였다. 조금 찝찝했지만 우리도 그를 원망할 순 없다. 돈 1억원에 눈이 멀어 자청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그만두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엄청난 위약금을 물기로 계약을 한 상태다. 따져 보니 우리는 박 강사를 미워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우리 살들은 박 강사의 적극적 노력에 힘입어 눈덩이처럼 불어났기 때문이다.

생리학을 전공한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의 몸에는 모두 500억개의 지방세포가 있는데, 지금처럼 관리를 잘 하면(?) 세포 하나의 크기가 쌀알만큼 커질 수 있다 한다. 그는 우리를 부를 때 성 뒤에 돼지를 붙이곤 했는데 “김 돼지” “안 돼지” 뭐 이런 식이다. 그는 수미에게 “내가 각별히 생각하는 박 돼지의 지방세포만큼은 도토리알 만하게 키워주겠다”며 큰 소리로 웃어대곤 했다. 수미는 고맙다고 해야 하나 헷갈리기도 했다.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떠서 일어나면 생수가 아니라 달달한 모닝커피와 콜라 서너잔으로 하루를 연다. 오늘도 어김없이 박 강사의 “돼지들아! 돼지목살들 마시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말이다. 박 강사는 자판기 커피를 돼지목살이라고 칭하곤 했다. “자판기에 들어가는 커피를 뜯어서 커피 알갱이 한번 세어봐라 내말이 틀리나!” 자판기 커피엔 지방에 설탕덩어리밖에 없으니, 돼지목살보다 더 나쁘다는 게 그의 논리다.

밤늦게 먹고 잤으니 퉁퉁 부은 눈으로 커피잔을 들고 저울에 올라가면 여기저기서 환희의 비명이 넘쳐난다. 곧 이별할 살인데 불어난들 뭐 어떠랴. 목표 달성이 곧 목돈이요, 살이 곧 돈이 되는 살돈 시대를 살아보았는가? 모두가 걱정하는 살덩어리를 즐기듯 키운다. 살 때문에 살맛이 난다. 하루 만에 2㎏, 3㎏, 때론 저울 눈금이 선풍기처럼 돌아갈 정도로 우리의 체중은 급속도로 불어났다. 입고 온 옷들은 이미 작아진 지 오래라 우리는 김 실장이 읍내에서 사 온 신축성 좋은 싸구려 운동복을 입고 살았다. 브래지어도, 팬티도 S에서 M으로, L로, 다시 XL로 등급이 신속하게 올라갔다.

우리는 마치 미쉐린 타이어의 광고 모델을 방불케 했다. 부산에서 올라온 문디 가시나는 입고 온 바지의 지퍼가 터지고 브래지어 끈이 끊어졌다며 웃어 재낀다. 엉덩이에 살이 붙으니 일반 팬티는 T-팬티가 되었고 혜진이는 발바닥과 정수리에 지방이 붙어 키도 커졌다며 낄낄 거렸다. 처음엔 박 강사가 느닷없이 “돼지야!”라고 불러도 아무도 뒤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자가 “돼지야!”라고 부르면 2~3명이 뒤를 돌아다 본다. 그때마다 박 강사는 박장대소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조만간에 다 돌아본다 이것들아!”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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