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귀농 왜 증가하나

인생의 동반자와 조용한 시골에 내려가 전원주택 지어놓고 소소하게 텃밭을 일구며 사는 여생.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봤음직한 은퇴 후의 삶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낭만만 좇다가는 농촌생활의 현실에 부딪치기 십상이다. 더러는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 왜일까.

▲ 베이비부터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귀농ㆍ귀촌인구가 해마다 늘고 있다.[사진=뉴시스]
서울에서 택시 운전을 하던 윤수철(가명ㆍ56)씨. 그는 아내ㆍ아들과 함께 몇년 전 충청도의 한 바닷가 마을로 이사를 왔다.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싼값에 동네 빈집을 얻어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모아 놓은 돈으로 텃밭을 사고 작은 배 한척과 어구漁具도 장만했다.

그렇게 시골생활에 잔뜩 신이 난 윤씨, 각박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동네 주민들과 왕래하며 사는 삶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윤씨가 여유에 익숙해지는 사이 그의 가계는 점점 메말라 갔다. 윤씨의 아내는 여름 성수기에 동네 식당에서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윤씨도 3년 만에 배를 팔고 집 짓는 공사 현장에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여전히 윤씨는 시골생활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의 아내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막내아들의 교육비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날들이 늘고 있다.

옆집의 장영우(가명ㆍ62)씨도 아내와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4년째다. 수도권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그는 매장은 매장대로 두고 동네에 LPG가스충전소를 차렸다. 인근에 관광지가 많아 이동 차량이 많은 덕에 벌이도 그럭저럭 괜찮다. 대부분의 시간은 시골집에서 보내고 매장에는 일주일에 한번 별탈이 없는지 가보는 수준이다. 젊은 시절, 돈을 벌겠다고 고향 부산을 떠나 여기저기 많이 다닌 장씨지만 여생은 이곳에서 마무리할 생각이다. 무엇보다 아내가 스트레스 없는 이곳 생활을 마음에 들어 하기 때문이다.

삭막한 도시를 떠나 농촌에 새로운 터전을 일구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귀농 인구는 물론 귀촌ㆍ귀어인구도 증가 추세다. 특히 과거 60대 이상의 은퇴자들이 귀농ㆍ귀촌을 선택했다면 최근에는 40~50대는 물론 30대 이하 귀농ㆍ귀촌 인구도 증가세다. 도시 근교의 특정 지역에 몰리던 귀농이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통계청의 ‘2015년 귀농어ㆍ귀촌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 가구는 전년 대비 11.2% 증가한 1만1959가구로 집계됐다. 귀촌가구와 귀어가구는 각각 6.0%, 8.1% 증가해 31만7409가구, 991가구를 기록했다. 귀농가구의 경우, 시ㆍ도별로는 경북(2221가구), 전남(1868가구), 경남(1612가구)으로의 귀농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귀농과 귀어의 경우 50대가 각각 40.3%, 36.6%로 가장 많았지만 수도권으로의 이동이 많은 귀촌은 가구주의 연령대 중 30대(26.2%)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적응 실패, 역귀농 늘어

‘나홀로’ 귀농도 늘고 있다. 귀농가수원 수 분석에 따르면 귀농가구 중 1인 귀농가구가 전체의 60.0%를 차지했다. 귀촌가구에서도 1인 가구 비중이 70.3%로 가장 많았고, 귀어가구 역시 1인 가구가 70.4%를 차지했다. 가족을 두고 나홀로 농촌생활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이는 실패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역귀농자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귀농ㆍ귀촌 인구가 늘고 있는 이면에는 농촌생활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자’들도 있다. 역귀농의 경우 대부분 ‘소득 부족’ ‘힘든 노동’ ‘지역 주민들과의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과의 갈등’도 귀농ㆍ귀촌의 실패 이유다. 농림수산축산부가 농정연구센터에 의뢰해 조사한 ‘귀농ㆍ귀촌 인구의 정착실태와 관련 정책 발전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귀농ㆍ귀촌에 실패하는 이유 중 가족 갈등, 특히 부부간의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농촌생활 자체에 가치를 두기보다 소득 창출을 목적으로 귀농한 이들이 가족 간의 갈등으로 귀농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자가 귀농을 원치 않는데 한 명이 이를 강행했다가 소득 창출까지 실패하게 되면 농촌생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경우 귀농을 이어갈 수 있는 다른 곳으로 재이주하기보다 아예 귀농을 포기하는 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예전에 거주하던 도시로 역귀농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귀농ㆍ귀촌은 낭만적인 생활이 잠시라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많은 ‘현실’이다. 가족ㆍ지역주민들과의 갈등뿐만 아니라 아예 모르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기 때문에 리스크도 그만큼 많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하 한농연)의 ‘귀농ㆍ귀촌인의 정착실태 장기추적조사’를 보면, 귀농ㆍ귀촌인의 약 60%는 제조업이나 건설ㆍ하수환경ㆍ교육ㆍ출판방송ㆍ금융 등의 분야에서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았거나 관련 전문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경력도 평균 20년이었다. 하지만 현재 농촌생활에서는 도시에서의 전문성을 연계시키지 못한 채 농업 활동에만 종사하고 있었다. 한농연 측은 “귀농ㆍ귀촌인들이 도시에서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서 체계적인 여건을 마련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귀농 후 현실적 문제 지원 필요

점점 빨리지는 은퇴시기 탓에 귀농ㆍ귀촌 인구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촌을 여생을 보낼 공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한농연의 전망에 따르면 2033년에 농촌인구는 950만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근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30대의 비중도 증가하고 있다. 단순히 농촌을 여생을 보낼 공간이 아닌 일생의 주요 활동무대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귀농ㆍ귀촌을 정책적으로 더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도 “준비 및 이주 단계에 집중돼 있는 현재의 귀농ㆍ귀촌 지원 정책도 중요하지만 귀농 이후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귀농을 하긴 했는데 소득이 생활수준을 뒷받침해주지 못하거나, 귀촌을 했는데 일자리가 없다면 낭만은 이내 차가운 현실이 된다. 귀농ㆍ귀촌인구 유치에 열을 홀리는 홍보보다는 성공적으로 농촌생활에 안착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도 세밀한 정부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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