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동력 잃은 한국 경제, 위기 극복할 수 있을까

바람이 약하고 스콜과 뇌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 이름하여 ‘적도무풍대’. 성장동력을 잃은 대한민국호號가 적도무풍대에서 표류하고 있다. 글로벌 불황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경제가 이곳을 언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런 위기를 극복할 만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 경기회복을 위해 소득주의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사진=아이클릭아트]


“…어젯밤에 우리 배는 적도무풍대에 들어갔다. 변덕스러운 바람, 폭우, 간헐적인 고요, 삼각파도로 인해 제멋대로 흔들리는 배…. 다른 지역에서도 가끔씩 일어나지만 적도무풍대에서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 「19세기 세계 일주」 중 일부분인데, 여기서 한국경제의 현주소를 정확하게 짚어낸 단어가 있다. ‘적도무풍대’다. 적도무풍대는 적도 부근의 바람이 약하고 스콜(대류성 강우)과 뇌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이다.

올 하반기 한국경제와 증시의 모습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적도무풍대’에 표류한 배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며 제자리를 맴도는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내부요인과 외부요인은 모두 불확실성에 싸여 있다. 글로벌 경제는 단기간에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어려운 정체 국면에 들어서 있다.

 

 

내부적으로는 우리 경제를 옥죄는 구조적인 문제 역시 해결되기보다는 악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확실성을 자극하는 이슈들은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이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위험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음에도 안심하긴 이르다. 이는 정책 기대가 작용한 단기적인 ‘안도랠리’일 뿐 추세적인 흐름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 하반기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2011년 이후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건 1990년대 이후 성장동력으로 작용한 글로벌 분업화(Global Value Chain)로 형성된 교역구조가 깨졌기 때문이다. 교역구조의 붕괴 원인은 수요와 공급의 측면으로 나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소비 수요가 위축됐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생산기지의 비용과 기술이 높아지면서 생산기지로서의 이점을 잃은 게 공급에 타격을 줬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1980년 이후 세계경제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 기조가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2011년 이후 글로벌 교역이 빠르게 블록화하고 보호무역이 강화되고 있는 것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국제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브렉시트’의 본질 역시 보호무역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성장에 허덕이는 글로벌 경제

문제는 보호무역주의가 올해 말 미국 대선이나 내년 상반기 프랑스 대선 등 정치적 일정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보호무역주의는 아울러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성장동력을 교체하지 못한 중국의 성장을 제약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교역 관계를 형성한 다른 국가들은 저성장이라는 홍역을 앓을 것이다. 중국과 인접하고 교역 규모가 클수록 부정적인 영향은 크게 나타날 게 뻔하다. 한국 경제가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2000년대 ‘버블 시대’의 유산인 부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장기로 접어들었다. 이 상태가 장기화하면 금융사와 기업의 부실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다. 최근 은행발 금융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탈리아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탈리아는 현재 은행의 부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들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고 부실채권의 비율과 규모는 급증했다. 부실채권 비율은 16.9%에 달해 스페인 6.8%, 프랑스 4.2% 등의 3배 수준이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총 3600억 유로의 부실채권 중 2000억원을 ‘악성부채’로 분류하고 있다.

▲ 세계 각국의 보호무역주의가 글로벌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사진=뉴시스]


이탈리아의 부채 문제는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세계 각국을 전염시킬 수도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 정부와 통화당국은 무리한 정책을 펼 공산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양적완화나 마이너스 금리와 같은 금융정책들이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장기적으로 불확실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정책 의존도가 증가하고 가격 변수의 변동성이 높아져 실물 부문이 왜곡될 수 있어서다.

자! 이제 우리나라의 상황을 살펴볼 차례다. 대외 여건은 이렇게 불안하지만 우리 정부의 대응은 부진해 보인다. 물론 대외 변수를 우리가 좌지우지하긴 어렵지만 그 영향력을 완화하는 한편 내부적으로 성장동력을 확충하는 정책은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통화정책은 여전히 소극적이고 정부는 일시적인 소비세 인하나 건설경기에 기댄 재정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체된 대외 수요와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에 기인한 환율 충격을 줄이려면 선제적인 금리인하책이 필요하다.

 

단기 처방이 불확실성 키워

정부 역시 시간이 걸리더라도 소비 여력이 확충될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 성장률 방어를 위한 단기적인 정책은 부가가치가 없다. 가계소득의 비중을 높이고 소득주도 성장을 꾀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할 때라는 얘기다. 그래야 양극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통화정책과 정부의 하반기 경제운영에선 이런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하반기 한국경제를 ‘적도무풍대’에 들어섰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 상무 ytjeong0815@ibks.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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