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참에 사회안전망 튼튼하게 구축해야

한국경제가 불황의 터널에서 헤매고 있다. 구조조정 회오리가 갈수록 강해지면서 내수시장은 꽁꽁 얼어붙고 있다. 주력산업의 기술 경쟁력도 약해져 돌파구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안전망’까지 부실해 노동자들이 좌불안석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한국경제는 올 하반기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변수에 시달릴지 모른다. 정부의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 조선·해운산업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사진=뉴시스]


우리나라 경제가 일본형 장기불황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의 경기침체가 경기순환적 둔화가 아니라 한국 주력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에 따른 구조적 경기둔화라는 분석도 나온다. 여기에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중국의 경기둔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슈 등 외부 악재까지 겹쳐,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위기 국면이다. 이런 우려는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의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8%에서 2.7%(상반기 3.0% ㆍ하반기 2.4%)로 0.1%포인트 떨어뜨렸다. 또한 올 상반기 -3.6%까지 추락한 설비투자 증가율은 하반기에도 마이너스 성장(-0.6%)을 보일 전망이다.

 

 

그렇다면 하반기 한국경제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무엇이 있을까. 첫째, 대규모 실업사태를 불러올 조선ㆍ해운산업 등 대형부실기업의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 이슈는 거시적 충격은 물론 사회적 충격까지 몰고올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기도 전에 시작된 조선사 노조의 파업으로 사회적 비용이 더욱 커질 거라는 우려도 등장하고 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대규모 실업사태가 초래할 사회적ㆍ정치적 비용에 있다. 구조조정이 코앞이지만 실업자의 재취업을 지원하고 재취업 전 최저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은 미비하다. 이는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르는 노동자에게는 생존의 위기와 같다. 문제는 정부가 발표한 실직자를 위한 지원책이 체계적인 사회안전망이 아닌 임기응변식 조치라는 데 있다. 이를 알기에 실직을 앞둔 노동자들은 더욱 극단적인 생존투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과잉설비의 영향으로 조선ㆍ해운산업 이외에 구조조정이 요구되는 산업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체계적인 사회 안전망을 갖추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서둘러야 한다. 조선ㆍ해운산업뿐만 아니라 모든 업종에서 발생하는 실업자에게 재취업교육 등의 지원정책을 펴야 한다. 재취업할 때까지 최저생계비를 보장해주는 사회안전망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보장해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만들 것이다. 또한 저소득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내수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사회 안정망의 구축이 구조조정의 선결조건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구조조정이 몰고올 실업사태
 
하반기 경제를 짓누르는 둘째 요인은 전통의 주력산업에서 나타나는 기술적 국제경쟁력 상실이다.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한 자동차ㆍ철강ㆍ반도체ㆍ휴대전화ㆍ전자ㆍ화학ㆍ조선 등 주력산업의 기술경쟁력이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는 거다. 이는 무역통계를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2011년까지 10%대를 크게 웃돌던 수출 증가율은 2012년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8%나 감소했다.
 

이젠 우리를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의 성장세를 두려워해야 할 정도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이 발표한 ‘2014년도 기술수준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국가전략기술 격차는 1.4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중국이 한국보다 앞서는 기술은 18개로, 2012년의 13개보다 5개 증가했다.

한국의 주력산업이 급속하게 경쟁력을 상실한 원인은 정부에 있다. 2000년대 이후 중국을 포함한 미국ㆍ일본ㆍ독일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은 첨단기술 지원정책과 기초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산업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시장원리 중시’라는 허울 좋은 미명 아래 손을 놓고 있었다. 경쟁국에 비해 우리의 산업경쟁력 지원정책이 자유방임상태의 무대책 수준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창조경제’다. 정부의 창조경제는 각 지역별로 중소기업과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할 대기업을 인위적으로 할당해 일방적인 지원을 제공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조경제를 두고 ‘다음 정부가 들어서면 0순위로 없어질 전시행정’이라는 혹평이 쏟아진다. 이는 정부가 할 일을 기업에 강요하는 것과 같다.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대기업에 일방적 지원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 효율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사회안전망 확충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정부는 최근 10조원에 이르는 추경(추가경정예산)의 조기 집행을 논의하고 있다. 문제는 추경을 어디에 쓰느냐다. 추경이 생산적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유동성 증가에 따른 자산가격의 거품만 키운다면 경제의 불균형과 위험요인은 더 심각해질 공산이 크다. 추경과 유동성 확대정책이 자산가격 거품과 빈부격차 확대라는 악순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단기적 경기부양 효과를 노리기보다 장기적 안목의 정책집행이 필요하다.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ㆍ개발(R&D)과 사회안전망을 확대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통해 사회안전망 확대에 따른 노동시장 유연화, 저소득층 소득증대를 통한 내수소비 확대 등의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추경을 진통제로 활용해선 안돼

한국경제는 올 하반기에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대내외적인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위기가 경제의 경쟁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몰락의 서막이 될지는 정부에 달려 있다. 올바른 정책을 얼마나 강력하게 추진하느냐에 한국경제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것이다. 추경과 유동성 확대정책이 정부의 임기응변용 진통제가 돼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김영한 성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kimyh@skku.edu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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