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왜 못 막나

재발 총수의 친족기업은 불황에도 ‘잘나간다’. 재벌 대기업들이 계열사를 활용해 일감을 팍팍 밀어주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는 천민 자본주의의 민낯”이라면서 강력한 규제를 시사했지만 별반 달라진 건 없다. 일감 몰아주기를 규제하는 법에 빈틈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빈틈을 취재했다.

▲ 정부는 일감 몰아주기로 총수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몰아줄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리기로 했다. 하지만 법 적용이 촘촘하지 못한 탓에 대기업들은 처벌을 피해가고 있다.[사진=뉴시스]

“사회 곳곳에서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격차가 개선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과의 약속의 일환으로 경제 민주화를 발표했는데, 그 실천의 근간이 될 정책(일감 몰아주기 규제)을 두고 기대가 크다.”

2012년 초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이 대기업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의제로 올리면서 내뱉은 말이다. 이후 일감 몰아주기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국정과제 중 하나로 꼽혔다. 2013년 8월 관련법이 개정됐고, 지난해 2월 본격적으로 시행에 나섰다. 최근에는 첫 처벌 사례도 나왔다.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총수인 현정은 회장 일가가 보유한 회사에 일감을 부당하게 몰아줬다며 과징금 총 12억8500만원을 부과한 것이다.

재계는 이 과정에서 앓는 소리를 냈다. 일감 몰아주기가 기업의 ‘정당한 전략’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일감 몰아주기는 우리나라 대기업의 고속성장 비결로 꼽힌다. 계열사끼리 원료 공급, 부품소재 납품, 완제품 생산 등으로 수직 계열화를 이루면서 효율성과 경쟁력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주목할 만한 통계가 있다. 지난해 대기업집단의 내부거래 현황에 따르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20.0% 미만일 때 내부거래 비중은 13.7%에 그쳤다. 반면 총수 일가 지분율이 50.0%를 넘으면 이 비중이 42.1%으로 높아졌다. 총수 2세 지분율이 50% 이상일 경우엔 내부거래 비중이 55.0%로 치솟았다. 총수 일가의 지분율과 내부거래 비율 사이의 높은 상관관계를 ‘정당한 거래’로 미화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은 이유다. 경제검찰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일감을 몰아준 현대그룹을 단죄한 이유도, 정부가 이를 국정과제로 삼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에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세가지나 숨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주주가치 훼손이다. 일감 몰아주기의 수혜를 받는 회사는 총수 일가가 만든 개인회사가 대부분이다. 반면 일감을 주는 회사는 대기업이다. 대기업과 개인회사가 거래하는데, 의사결정은 같은 사람 혹은 친족이 한다. 이 과정에서 일감을 주는 회사는 손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여지가 충분하다는 얘기다.

재계는 왜 앓는 소리만 내나

둘째는 공정 경쟁의 저해다. 대기업이 총수일가 회사와 거래하면 기존에 거래하던 중소기업은 거래가 끊기거나 더 낮은 단계의 하청기업이 된다. 이는 중소기업을 경쟁에서 배제하는 행위다. 대기업의 자금이 내부에서만 돈다면 중소기업 생태계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 셋째는 일감 몰아주기의 과실이 총수 일가에게만 돌아간다는 점이다. 총수 일가가 가진 수혜회사는 초기 사업의 리스크를 부담하지 않고 시장을 장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당한 내부거래가 모두 공정위의 감시에 포함되는 건 아니다. 법을 적용하려면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연 매출 5조원 이상의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일 것’ ‘총수 일가의 지분이 30% 이상인 계열회사(비상장사 20%)와의 거래일 것’ ‘거래 금액이 계열회사 매출 비중의 12%를 넘거나 200억원을 넘을 것’ 등이다. 이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기업의 효율성ㆍ보안성ㆍ긴급성 등 불가피한 사유가 인정되면 법 적용에서 벗어난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이 기준을 벗어날 수 있는 또다른 ‘출구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상기업을 합병하거나 사업부를 분할 매각해 내부거래 비율을 줄이는 건 대표적 사례다. 일부러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떨어뜨린 기업도 있다. 지분을 통째로 매각한 후 그 지분을 매각한 자회사를 다시 합병하는 방식으로도 규제를 피하는 경우도 있다.

계열사만 아니면 규제 피해

매출은 대기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만 계열사가 아니라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받지도 않는다. 공정위가 독립경영 인정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항목이 임원 겸임, 채무보증 여부 등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대기업의 매출 비중이 99%라도 두 회사간 임원이 다르고 채무보증 등으로 엮여 있지 않다면 일감을 몰아준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매출 기준 국내 상위 30개 그룹의 내부거래는 줄었다. 30대 그룹의 지난해 내부거래 금액을 합치면 134조8000억원.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시행되기 전인 2012년 보다 11%(16조7000억원) 줄었다. 이 가운데 공정거래법의 내부거래 규제 대상에 해당하는 계열사의 내부거래 금액은 6조5000억원으로 2012년에 견줘 57.7%(88억9600만원)나 감소했다.

문제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내부거래를 줄인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규제 대상 기업이 75곳에서 48곳으로 줄었는데, 이들 중 내부거래를 줄여 규제에서 벗어난 경우는 7곳뿐이었다. 결국 대기업의 내부거래와 사주 일가의 특혜를 줄이겠다는 법 제정 취지가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팀장은 “현행법으로는 일감 몰아주기를 제대로 규제할 수 없다”면서 “정부가 그물망을 쳐 놓은들 기업이 빈틈을 찾아 피해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규제나 처벌, 민사적인 책임의 강도를 높일 수 있도록 법을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약간의 지분 조정만 하면 규제를 회피할 수 있는데 어떤 기업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법을 두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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