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창업지원금의 비밀

지난해 예비 창업자를 위해 책정된 지원예산은 1조원을 훌쩍 넘었다. 놀랍게도 올해는 그 지원금이 22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만 하면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에 사활을 건 듯하다. 문제는 창업자들 가운데 정부 지원금을 받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창업자들의 볼멘소리가 아니다. 더스쿠프(The SCOOP)와 프랜차이즈산업연구원이 예비 창업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다.

▲ 정부가 매년 창업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22조2263억7700만원. MB정부의 4대강 본 사업비와 맞먹는 자금이 올해 ‘창업 지원’을 위해 책정됐다. 중소기업청과 미래창조과학부가 예비 창업자와 창업 기업의 성공을 돕겠다는 취지에서 만든 ‘2016년도 창업지원사업 계획’의 지원 내역이다.

창업교육, 창업시설ㆍ공간, 멘토링ㆍ컨설팅, 사업화, 정책금융, 연구개발(R&D), 판로ㆍ해외진출, 행사ㆍ네트워크 등 8개 부문에 걸친 지원 프로그램 수만 총 70개. 창업기업이 금융회사에 부담하는 채무를 정부가 보증하는 프로그램에만 12조원이 책정됐다.

지난해 1조5393조원에 불과했던 이 사업이 대폭 강화된 이유는 간단하다. 노동 시장이 워낙 불안정해서다. 장기 불황에 굴지의 대기업마저 인력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실업자가 쏟아지고 있다. 구직이 어려운 청년들은 매달 역대 최고치의 청년 실업률을 갈아치운다. 이를 타개할 해결책으로 꺼내든 게 ‘창업 독려’다. 취업이 어려우니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는 얘기다.

정부가 ‘돈키호테식 도전’을 유도하는 건 아니다. 실제로 창업 환경이 그리 나쁘지 않다. 지금은 기업들이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통한 혁신서비스로 경쟁우위를 점할 수 있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풍부한 상상력, 두뇌의 창의성, 유연한 사고만 있으면 얼마든지 새 시장을 열어젖힐 수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융합기술, 사물인터넷(IoT), 핀테크, 인공지능과 같은 혁신 기술이 핵심인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兆 단위’의 지원금이 정부 차원에서 쏟아지고 있으니, 액면만 보면 예비창업자들에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있다. ‘정부 지원금으로 창업을 했다’고 말하는 이를 찾기 어렵다. 되레 ‘정부 지원금을 받는 게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는 말이 더 많이 들린다. 창업자들의 볼멘소리가 아니다. 통계 자료가 이를 뒷받침한다.

더스쿠프(The SCOOP)와 프랜차이즈산업연구원이 공동으로 2015년 각종 창업박람회에 방문한 예비창업자 15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창업 자금 조달 방법으로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꼽은 사람은 14.3%에 불과했다. 자금 조달 방법 1위와 2위는 각각 ‘본인 부담(41.8%)’ ‘대출(38.0%)’이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36.6%)와 30대(44.2%) 모두 창업 자금 조달 방법으로 ‘자금 대출’을 가장 많이 꼽았다. 미취업자의 ‘자금 대출’ 비중 역시 40.5%로 높았다.

조 단위 지원금 어디로…

그렇다고 예비창업자가 많은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전체의 32.8%는 ‘5000만원 이상~1억원 미만’이라고 답했다. ‘5000만원 이하’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응답자는 30.9%에 달했다. 창업시 평균 소요자금인 2억3000만원(중소기업청 자료)을 보유한 예비창업자는 9.1%(2억원 이상)에 불과했다.

특히 청년 세대인 20대의 경우 5000만원 이하의 창업 자금을 보유한 비율이 55.7%로 가장 높게 조사됐다. 창업 자금도 넉넉지 않은데, 지원금마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창업 기업인은 “창업을 준비할 때, 정부에서 지원금을 준다는 소식에 관련 부처를 열 곳도 넘게 방문했다”며 “이제 시작하는 기업에 업력을 요구하는 등 황당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어쨌든 준비하라는 대로 서류를 갖춰 지원금을 준다는 곳에 모두 제출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하지만 그 어떤 지원금도 통장에 들어오지 않아 그냥 대출을 받아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물론 정부의 지원금이 순수하게 자금에만 쏠려 있는 건 아니다. 창업 교육과 홍보비로도 책정된다. 그렇다면 창업에 도전하는 이들은 관련 프로그램을 이수하거나, 창업 정보를 얻는 일이 수월해야 한다.

하지만 1500명의 예비 창업자 중 ‘창업 교육을 받아본 경험이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35.0%뿐이었다. 게다가 “창업 프로그램을 이수한 게 도움이 됐다”는 응답률은 67.8%로 2014년 조사(77.3%)보다 9.5%포인트나 감소했다. 교육을 많이 받지도 않았을뿐더러 받았다고 하더라도 창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거다.


정부의 지원금이 홍보에 효율적으로 쓰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비 창업자의 창업 정보 수집 경로 중 ‘공공지원기관 통해서 받는 경우’는 5.0%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서(64.0%)’ 창업 정보를 얻고 있었다. 고령인 50대 이상의 예비 창업자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비중이 50.0%나 됐다.

스타트업 기업의 컨설팅을 담당하고 있는 김택형 마켓트렌드 대표는 “우리나라 창업 교육은 단순히 이론적 지식을 습득하거나 탁상공론식의 사업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교육이 실제 창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창의적 혁신을 이룬 기업가나 경영자들로부터 실제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곁눈질로 창업을 배운 경영학 교수보다 창업경험을 가진 실무교수가 더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덧붙였다.

청년 창업을 돕고 있는 기관의 한 관계자는 “정부 지원금에는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데도 제대로 된 감시가 이뤄지지 않아 ‘눈먼 돈’이 되고 있다”며 “성과 측정 지표가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은데다 단기적 성과 위주의 지원금 기준도 불분명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결국 창업이 절실한 이가 아닌 엉뚱한 사람에게 자금이 흘러가기 일쑤”라고 꼬집었다. 결국 창업 시장에 막대한 정부 지원금이 풀렸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결국 창업 시장에 막대한 정부 지원금이 풀렸음에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예산만 크게 잡은 창업 지원책의 문제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예산을 집행하는 기관의 인식 차이가 너무 크다. 정부는 구글이나 애플처럼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지식 서비스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벤처기업이 탄생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정작 창업지원금을 집행하는 기관들은 리스크 부담을 덜 수 있는 제조업을 선호한다. 정부 지원금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혁신적인 솔루션 기업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조경제를 콘셉트로 내세운 정부 스스로 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떠안는 창업지원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는 셈이다.

김택형 대표는 “우리나라는 1년 안에 벤처 기업 몇개에 투자해야 한다든지 하는 ‘양量 채우기’식 지원이 많은데, 그렇다 보니 계약 금액이나 성과 등이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무원들도 이런 문제를 다 알고 있지만 대안이 없다고들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지원금의 달콤한 과실만 따먹고 창업을 하지 않는 ‘창업 헌터’까지 등장해 기승을 부린다. 창업할 의사가 없음에도 정부가 개최한 창업 공모전에 참가해 지원금을 사냥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시장에 창업 예산이 많이 풀린 점을 노리고 팀 혹은 점 조직 단위로 활동하며 유관기관들의 창업지원금을 노린다. 한 아이템으로 복수의 창업 공모전에 참가해 상금을 타는 일도 부지기수다.

수상 경력이 취업 또는 경력 관리의 일환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박제천 인하대(정보통신대학원)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창업지원은 중소기업청, 미래창조과학부, 교육부 등 여러 군데에서 산발적으로 이뤄져 중복지원도 많을뿐더러 지원에 대한 평가도 제대로 취합되지 않고 있다”며 “창업과 관련해 창구를 일원화하고 사업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 단위’의 창업 지원금이 알찬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건 큰 문제다.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돈이 없어 창업을 못하는 사례가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창업자는 대부분 생계형이다.

생계유지가 창업 동기

더스쿠프와 프랜차이즈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예비 창업자들의 창업 동기 1위, 2위는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24.1%)’ ‘생계유지(20.9%)’였다. 특히 50대는 ‘생계유지(25.6%)’ ‘조기퇴직의 불안감(13.2%)’ 때문에 창업시장에 뛰어들었다. 해마다 질質이 나빠지는 노동시장 앞에서 좌절하느니 다양한 지원 방책이 있는 창업시장에 출사표를 던지는 게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막대한 창업지원금은 제대로 돌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돈이 어떤 성과를 내는지도 알 수 없다. 정초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연구원은 “지금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은 낭떠러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저기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좋다면서 어서 날아오라고 손짓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면서 “이상만 좇아 덜컥 날아올랐다가 힘이 없어 바닥으로 떨어질 경우,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 대책이 너무 빈약하다”고 꼬집었다. 창업지원금 22조원에 숨은 불편한 진실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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