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주 넥슨 창업자의 그림자

김정주 NXC 회장이 넥슨의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진경준 검사장과의 뇌물 스캔들 때문이다. 김 회장은 벤처 사업가의 신화다. 김 회장이 직접 문을 연 넥슨은 10여년 만에 매출을 200배 수준으로 불렸다. 덩달아 그도 우리나라 자산가 순위 6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제 파티는 끝났다.

▲ 벤처 성공 신화를 썼던 김정주 NXC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재계는 넥슨을 두고 게임계의 ‘삼성’이라고 부른다. 해외 게임을 빼면 우리나라에서 서비스되는 대다수의 게임이 넥슨이 대주주거나 소유하고 있는 회사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게임 대기업의 주인은 김정준 NXC 회장이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NXC의 지분을 김 대표와 그의 아내가 96.9%를 보유하고 있다. NXC는 그룹의 본사인 넥슨재팬의 지분 57.0%를 소유하고 있고 또 넥슨재팬이 넥슨코리아를 100%로 보유하는 수직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

실속은 오히려 삼성보다 낫다는 평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 32.7%를 달성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회사는 놀라운 성장 스토리를 갖고 있다. 2000년 124억원에 불과했던 넥슨의 매출은 지난해 1903억엔(약 1조809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는 2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15년 만에 200배에 가까운 성장을 기록한 셈이다. 경쟁사인 NC소프트(8383억원)에 비해서도 배가 넘는 실적이다. 여기에 힘입어 김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자산가가 됐다. 포브스에 따르면 그의 자산은 약 2조1000억원, 국내 기업인 가운데 여섯번째 부자다.

흥미로운 건 넥슨이 단순히 게임을 잘 만들어서 성장한 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회사의 고공성장 배경에는 인수ㆍ합병(M&A)이 있다. 김 회장이 넥슨을 창업한 1994년으로 시계추를 돌려보자. 넥슨은 문을 열고 2년 후인 1996년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 RPG) ‘바람의 나라’를 내놓고 선풍적 인기를 얻는다. 당시 PC게임 일변도였던 시장에 등장한 이 게임은 시장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바람의 나라’가 인기만큼 큰 수익을 낸 것은 아니다. 2년 뒤인 1998년 NC소프트의 ‘리지니’가 등장하면서 인기가 한풀 꺾였기 때문이다.

넥슨이 본격적 게임 회사로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2001년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가 서비스되면서 부터다. 또 그 후 3년 뒤인 2004년 ‘크레이지레이싱 카트라이더’가 자리 잡았다. 이 게임들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으로 김 회장은 M&A에 나섰다. 신호탄은 2004년 12월에 인수한 게임 개발사 위젯이다. 이 회사가 개발한 ‘메이플스토리’는 소위 대박이 났다.

넥슨은 이후 왕성한 M&A를 통해 폭주기관차처럼 빠르게 성장한다. 히트작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을 2008년 사들이고 ‘서든어택’으로 1인칭 총격게임(FPS) 성공기를 쓴 게임하이를 2010년 인수한 김 회장의 결정은 넥슨이 게임계 삼성이 될 수 있는 ‘신神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의 모바일 게임사 빅휴즈게임즈와 일본 모바일게임사 글룹스 등 해외 업체들도 잇따라 인수했다.

은둔의 경영자 베일 벗겨보니

김 회장의 장바구니에 담긴 기업은 게임 분야뿐만이 아니었다. 김 회장은 NXC의 투자전문 자회사 NXMH를 통해 온라인 레고 거래사이트 ‘브릭링크(Bricklink)’, 세계적인 유아용품 업체 ‘스토케(Stokke)’ 등을 인수했다. 달 탐사 전문 민간업체 ‘문익스프레스(Moon Express)’에도 1250만 달러를 투자했다. 덕분에 지난해 기준 NXC의 몸집(자산총액)은 5조1257억원을 돌파했다.

문제는 넥슨이 성장하는 동안 단 한번도 제동이 걸린 적이 없다는 점이다. ‘친구 커넥션’ 의혹이 일고 있는 진경준 검사장의 힘이 배경이었던 게 아니냐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진 검사장은 김 회장이 무상으로 제공한 주식으로 100억원대 이상의 시세차익을 누렸는데, 그 대가로 넥슨은 사법적 비호를 받은 게 아니냐는 거다.


넥슨은 ‘진 검사장 스캔들’의 외부 악재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표적인 게 ‘돈슨’ 논란이다. 넥슨은 국내 게임시장에 부분 유료화 모델을 가장 처음 도입한 회사다. 동시에 게임 콘텐트 개발은 뒷전으로 하고 지나치게 돈벌이에 집착한다고 해서 ‘돈슨’이라는 악명을 얻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부족한 부분을 M&A로 채워가는 방식이 꼭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넥슨이 M&A로 시장을 잠식하는 과정과 수익에만 집착하는 게임 운영 방식은 건전한 게임 생태계 발전 측면에서 보면 우려할 만한 것이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M&A를 통한 성장, 후유증 없을까

최근 잇단 신작의 흥행 실패는 이런 넥슨의 리스크를 잘 대변해준다. 넥슨은 7월 6일 대표게임인 서든어택의 후속작 ‘서든어택2’를 시장에 내놨다. 하지만 막상 게임이 출시되고 난 뒤 시장 반응은 싸늘했다. 서든어택2는 출시 첫날 5위를 기록했지만 일주일 만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다 출시 23일 만에 서비스를 종료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이런 경영 방식이 진 검사장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는 ‘벤처의 신화’로 포장돼 있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김 회장은 오랫동안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회사에 잘 나오지 않아서 경비원이 그를 못 알아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경영스타일 역시 실무진들과 소통을 좀처럼 하지 않는 방식을 고수했다. 검찰 수사 당시에도 김 회장의 발언은 “성실하게 검찰에 밝히겠다”가 전부다.

문제는 이런 대처로 넥슨이 쌓은 신뢰도와 이미지가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거다. STX의 강덕수가 그랬고, 팬택의 박병엽이 그랬다. 이들이 무너진 사연과 기업이 처한 환경은 각각 다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스스로 창업해서 기업을 키워가다 좌초했다는 점이다. 김정주 회장 역시 ‘벤처 신화의 몰락’의 역사에 남게 될지도 모른 일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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