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무서운 전기요금 누진제 폭탄

▲ 국민들은 무더울 때 요금폭탄 걱정 없이 에어컨을 틀 수 있는 환경을 원한다.[사진=뉴시스]
무덥다. 낮에도 그렇지만 밤에도 열대야로 잠을 못 이룰 지경이다. 맘 같아선 시원하게 에어컨을 켜고 싶지만 전기요금이 겁나 엄두를 못 낸다. 무더운 시간대를 골라 하루 서너 시간만 틀어도 평소 월 7만~8만원이던 전기요금이 20만원대로 껑충 뛰며 ‘전기요금 폭탄’을 맞기 십상이다.

뻔한 수입을 이리저리 쪼개 쓰는 많은 가정에서 에어컨은 어느새 실내 장식품화했다. 작동도 못한 채 공간만 차지하는 에어컨을 보고 있노라면 체감온도는 더 높아진다. 그런데 상점들은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출입문까지 열어놓고 장사한다. 에어컨 가동에까지 나타나는 양극화 현상의 주범은 주택용 전기에만 붙는 누진제다.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는 국가가 한국만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유달리 요금이 수직 상승하는 구조다. 전기 사용량이 적은 최저 1단계(㎾h당 60.7원)와 최고 6단계(709.5원)간 요금 차이가 11.7배다. 미국(2단계ㆍ1.1배)이나 일본(3단계ㆍ1.4배)과 비교가 안 된다. 100㎾h 단위로 사용량이 늘어날 때마다 단계가 높아지면서 요금이 급증해 폭염보다 무서운 누진제 폭탄을 투하한다.

이와 달리 자영업자에게 적용되는 일반용(105.7원)과 산업계에 적용되는 산업용(81원) 요금은 누진제가 적용되지 않는다. 가정에서 에어컨을 하루 5시간 정도 틀어 600㎾h를 쓰면 요금이 21만7000원인 데 비해 산업용은 같은 600㎾h를 써도 요금이 6만4000원으로 크게 차이난다.

그 결과, 상대적으로 요금이 싼 산업용은 과소비되는 반면 주택용은 소비를 억압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업용 전력소비량은 국민 1인당 4617㎾h(2011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445㎾h)의 두배에 가깝다. 반면 주택용 전력소비량은 1240㎾h로 OECD 평균(2448㎾h)의 절반 수준이다. 다른 나라의 주택용, 산업용, 일반용 전력소비 비중이 대체로 3대3대3의 비중인 반면 우리나라는 주택용이 13.5%, 산업용 57.1%, 일반용 19.9%로 주택용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다.

전기요금 누진 체계는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겪으며 부족한 전기를 절약해 산업용으로 돌려쓰기 위해 만들었다. 이후 발전설비를 늘려 전력공급에 여유가 생겼다. 2011년 여름 전력예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지며 대규모 정전 사태를 빚기도 했지만, 올해 전력사정은 여유가 있다. 전력 공급량이 9210만㎾h로 최대 전력수요 8170만㎾h를 감안해도 예비율(12.7%)은 두자릿수를 지킬 수 있다.

주택용 전력소비 행태도 변했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며 각종 가전제품 보급률이 높아졌다. 에어컨을 갖춘 가정도 크게 늘었다. 전기는 수도ㆍ가스와 함께 현대사회의 생활필수품이다. 국민은 국가가 공급하는 전기를 마음 놓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정부는 누진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올초 누진제 6단계 중 4단계 요금을 3단계 요금으로 낮춰 전기료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이 거론되다가 꼬리를 감췄다.

최근 몇년 새 국제유가가 하락하며 발전원가가 낮아졌다. 전기를 독점 공급하는 한국전력은 연간 수조원대 이익을 올리고 직원들은 상여금 잔치를 벌인다. 이처럼 저유가가 이어지고 한전이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지금이 누진세를 손볼 적기다. 다른 나라처럼 누진 구조를 현행 6단계에서 3단계 이내로 축소하고, 단계별 요금 차이도 줄여야 마땅하다. 산업용이나 자영업자 등 일반용은 전기 사용이 수익을 올리기 위한 것이지만 가정용은 단순 소비에 불과하다.

폭염에 에어컨 좀 틀고, 한겨울에 온수매트 사용하는 게 과소비로 여겨져선 곤란하다. 국민은 거창한 ‘474(잠재성장률 4%ㆍ고용률 70%ㆍ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비전보다 무더울 때 요금폭탄 걱정 없이 에어컨 틀 수 있는 환경을 더 원한다. 유달리 무더운 올여름 밤, 답답한 국내 정치ㆍ사회 소식을 떨치려고 올림픽 중계 보며 스트레스를 풀려다가 전기요금 폭탄에 더 열을 받아서야 되겠는가. 대한민국 보통 국민이라면 적어도 열대야에는 에어컨 켜고 편안히 잠들 수 있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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