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은 왜 은행을 공격하나

▲ 국내 시중은행도 자신들 내부에 문제점이 없는지 자성해봐야 할 때다.[사진=뉴시스]
시중은행이 들썩인다. 성과연봉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시중은행 안팎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은행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이 표적이라면 성과연봉제를 이미 도입한 다른 금융업계는 뭐냐는 거다. 시중은행도 구태를 벗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지난 7월 20일(수요일)과 26일(화요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두차례에 걸쳐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었다. 1차는 은행연합회 1층 로비, 2차는 KB국민은행 서여의도영업부 앞에서 진행했다. 9월 23일로 예정된 금융노조의 총파업 쟁의행위를 앞두고 결의를 다지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금융노조는 한발 더 나아가 총파업 전까지 추가적인 결의대회를 열 것이라고 예고했다.

금융업계가 한바탕 요동 치고 있다. 성과연봉제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올 상반기 금융공공기관에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시중은행에까지 확대 적용할 방침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7월 22일 은행연합회가 ‘민간 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을 공개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한껏 커졌다.

금융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해고가 쉬워진 게 아니냐는 우려에서다. ‘평가 등급 수는 5개 이상으로 한다. 등급별 인원 비율은 특정 등급 인원이 최소 5% 이상이 되도록 구성해야 한다’는 민간은행 성과연봉제 도입 가이드라인의 규정이 근거다. 이에 따르면 최하위 등급에 속하는 인원이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어 추후 ‘쉬운 해고’의 근거가 된다는 게 금융노조의 설명이다.

금융노조 측은 “법적으로 정확한 개념이 없어 제한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면서 “이런 이유를 들어 저성과자를 해고한 몇몇 판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행연합회 측의 의견은 180도 다르다. 한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개인의 능력 평가와 임금 지불에 대한 개선사항이지 해고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면서 “게다가 고용노동부의 공정인사지침에는 ‘상대평가 결과를 근거로 해고를 결정하는 것은 정당성에 어긋난다’고 적시돼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금융노조가 발끈하고 나선 이유는 그뿐만이 아니다. 노조 측은 ‘관치금융의 흔적이 민간은행의 자율성을 해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지섭 금융노조 홍보부장의 말을 들어보자. “금융회사는 금융 공공성 때문에 정부의 감독권한이 강한 편이다. 여기에 관치금융까지 더해 민간은행의 자율성이 제한받고 있다. 정부가 은행에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일 수 있는 것도 결국 낙하산 인사에 따른 통제와 압박이 수월하기 때문이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은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통한 관치금융은 금융업계의 고질병이나 다름없다. 2014년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 행장간의 갈등 문제로 터진 KB금융사태의 진원지도 사실 ‘외부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렇다고 은행업계에 문제가 없다는 건 아니다. 관치금융이든 그렇지 않든 은행업계가 자성할 문제는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 은행원의 높은 임금과 호봉제 문제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지적돼온 문제다. 2009년 MB정부 땐 은행원의 초임이 높다며 삭감을 시도했던 사례까지 있다.

그럼에도 생산성은 무척 약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2015년 국내 시중은행 4곳의 순이익은 하락세를 그린 반면 연간 임금 총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2010년 1조1086억원이었던 당기순이익이 2015년 1조753억원으로 3.0%가량 줄었다. 같은 기간 연간 임금 총액은 8994억원에서 1조2338억원으로 37.2%나 증가했다.

신한은행도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9.7% 줄고 연간 임금 총액은 58.6% 늘었다. KB국민은행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특히 가장 격차가 컸던 건 하나은행이다. 같은 기간 당기순이익은 1조215억원에서 4330억원으로 57.6% 감소한 반면 연간 임금 총액은 4427억원에서 1조3037억원으로 194.5% 증가했다.

성과연봉제, 쉬운 해고로 이어질까

이를 두고 시중은행 측은 “저금리 기조 때문에 은행의 순이자 마진율이 줄어든 것”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저금리 탓에 순이익이 감소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기준금리가 3.00~3.25%였던 2011년 순이자 마진율은 2.3%, 총이익 대비 임금은 18.1%였다. 반면 기준금리가 2.00~2.25%였던 2010년 순이자 마진율과 총이익 대비 임금은 각각 2.3%, 16.9%였다. 금리 수준과 순이자 마진율, 총이익 대비 임금이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통계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업계의 한 전문가는 “일반기업뿐만 아니라 보험사와 증권사 등 다른 금융업계도 성과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현재 은행의 생산성이 임금에 비해 1.4배가량 낮은데도 연공서열에 따른 호봉제를 고집하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핀테크와 인터넷 은행 도입 등으로 시장 상황이 변하고 있는데 지금 상황을 유지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되레 더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성과연봉제와 무관하게 시중은행도 자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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