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 연금술 | 국민행복기금의 제도적 한계

국민행복기금이라는 게 있다. 현 정부가 만든 서민금융지원정책으로, 채무불이행자를 돕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제도적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이 기금을 운영하는 주체 중 한곳이 신용정보회사다. 국민행복기금에 신청한 채무자가 또다시 신용정보회사의 전화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 채무불이행자의 신용회복을 돕기 위한 정책 프로그램이 운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허점이 많다는 지적 일고 있다.[사진=뉴시스]

빚이 있으면 약탈행위가 있다. 밀린 빚을 억지로 받아내는 과정에서 편ㆍ불법 행위가 자행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가계부채 1300조원 시대. 많은 서민이 빚에 허덕이고 있고, 이를 틈타 약탈적 금융시스템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민단체가 소멸채권 소각운동과 함께 주빌리은행(장기 연체자들의 채무를 탐강해주는 은행)을 설립해 지속적으로 부실채권을 매입ㆍ소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채무불이행자가 쏟아지기 시작한 건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다. 당시 실업, 사업실패, 연대보증 등으로 한순간에 무너진 가계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2000년대 초반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부실 채권을 담당부서를 통해 해결했다. 그러다 추심 업무를 채권추심업체에 위임하기 시작했다. 채권의 회수율과 회수액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는 채권추심업체는 당연히 무리하게 추심을 했고, 이는 사회적 문제로 등장했다.

채무불이행자를 돕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신용회복위원회, 개인회생 프로그램, 개인파산, 워크아웃 등 정책 프로그램을 시행해왔다. 최근에는 국민행복기금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채무불이행행자의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정부 정책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다. 일례로 신용회복위원회의 협약 기관은 2012년 기준으로 221곳에 불과했다. 금융회사와 채권추심업체, 대부업체 등을 모두 포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협약 대상인 업체의 채권만 신용회복지원이 가능해 일부 채권은 계속해서 추심을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현 정부가 마련한 국민행복기금도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행복기금은 기존 신용회복기금을 전환해 출범한 서민금융지원 정책이다. 신청자의 상환능력이 부족한 경우 채무자 연령, 연체기간, 소득 등을 고려해 부채의 30~50%(특수채무자는 60~70%)의 채무를 감면해준다. 또한 채무를 최장 10년까지 분할상환할 수 있게 돕고 있다.

취지는 좋지만 제도적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 이 기금의 운영주체 중 하나가 신용정보회사다. 국민행복기금이 금융회사로부터 일괄 매입한 부실채권을 여러 신용정보회사가 위탁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채권추심에 시달리던 채무자를 또다시 채권추심업체에 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행복기금을 신청한 한 채무자는 “◯◯◯신용정보회사입니다’는 전화를 받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다”면서 “행복기금의 운영주체를 왜 신용정보회사로 정했는지 알 수가 없다”고 꼬집었다.

제도적 결함 많은 국민행복기금

국민행복기금이 금융회사의 배만 불린다는 비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은 정부의 공적자금이 없이 금융회사의 출자로 만들어진 주식회사다. 회수 실적에 따라 수익이 나면 금융회사에 전액 배분하는 사후정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국민행복기금이 금융회사의 배를 불리는 ‘은행행복기금’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강기정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013년 국정감사에서 2018년 말까지 국민행복기금 사업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가 총 9000억원에 이르는 수익을 챙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행복기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비영리사단법인인 신용회복위원회의 제도와 범위를 정비해 채무자의 불편함이나 금전적 비용을 덜어주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제도권이 이러하니 제도권 밖 상황이 복잡한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무엇보다 채권추심과 채권상환을 받을 수 있는 회사가 얼마나 되는지는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대부업 협회에서 관리를 하고 있지만 협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 은행ㆍ저축은행ㆍ캐피털 등의 금융회사가 상각 처리하거나 시효가 소멸된 채권을 ‘땡 처리’하듯 팔아넘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효 소멸채권은 금융회사가 빌려준 채권이 별다른 법률적 행위 없이 5년이라는 기간이 경과돼 채권으로서의 시효가 사라진 것이다. 법률적으로 채무자가 갚을 의무가 사라졌고 채권자가 받을 권리도 사라진 빚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하지만 이런 채권이 원금의 3~5%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렇게 매입한 소멸채권을 대부업체나 추심업체에서 채무사실 획인이나 채권이전 안내라는 방식으로 통지한다. 채무자와 연락이 되면 원금의 50% 내외에서 합의하는 방식으로 돈을 뜯어낸다. 채무자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법원에 사건을 제출하고 공시송달 등의 절차를 통해 민사사건을 접수한다.

금융회사 배불리는 국민행복기금

공시송달은 수취인의 주소 등이 잘못되거나 수령이 되지 않았을 때 법원이 일방 게시해 수취인이 받은 것으로 인정하는 법률적 제도다. 채무자가 내용도 모르고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채무가 되살아나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2주 이내에 채무 부존재, 시효소멸채권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5년이라는 채권 시효가 다시 발생하고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공식적인 채무자가 돼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국민행복기금도 채권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지급명령 소송을 제기해 논란을 일으켰다.

채무불이행자를 둘러싼 문제는 채무자의 과소비, 도덕적 해이에서 시작된 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비판을 십분 수용하더라도 그 이면에 제도적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도 부인하기 어렵다. 채무에 허덕이는 많은 사람을 사회의 안정적인 구성원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선 약탈적 금융시스템이 정비돼야 한다. 이것이 가계부채 문제 해결의 시작점일 수도 있다.
류창훈 한국경제교육원 대표연구원 lch9106@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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