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셀러는 누구인가

▲ 최근 리셀러의 독점행위가 증가하면서 실수요자가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사진=뉴시스]
초기에 리셀러는 소비자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갖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제품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리셀러는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한정판 등 인기 제품을 독점적으로 구매해 덤터기를 씌워 되팔고 있어서다. 하지만 투기 행위와 다름없는 리셀 행위를 막을 법적 근거가 없다.

#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 정진우(가명ㆍ30)씨는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는 브랜드의 신발을 사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직장인이 되면 좀더 편하게 취미생활이 즐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반대다. 토요일 아침, 원하던 제품의 발매날. 정씨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서지만 매장 앞은 이미 새벽부터 줄을 서 있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결국 허탕을 쳤지만 꼭 사고 싶었던 제품이라 리셀러를 찾기로 한다. 발매한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리셀러가 부른 가격은 정식발매가의 두배를 훌쩍 넘었다.

# 김종명(가명ㆍ32)씨는 최근 리셀러를 통한 구매행위에 푹 빠져있다. 국내에는 발매되지 않는 해외제품을 살 수 있어서다. 심지어 몇몇 리셀러는 원하는 제품을 말하면 직접 구해다주기까지 한다. 비록 웃돈을 얹어서 사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에 나가는 비용과 시간을 고려하면 서로에게 좋은 거라며 큰 만족을 느끼고 있다.

지난해 11월 서울의 명동 에이치앤엠(H&M) 매장 앞에 긴 캠핑(특정 제품을 사기 위해 발매 전부터 자리를 잡고 대기하는 행위) 행렬이 이어졌다. 스웨덴 SPA브랜드 H&M과 프랑스의 명품 의류 브랜드 발망(Balmain)이 합작해 만든 한정제품이 발매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하지만 발매 전부터 며칠 밤을 새우며 캠핑을 하던 이들이 실수요자가 아닌 리셀러(Resellerㆍ인기있는 상품을 산 뒤 웃돈을 받고 되파는 사람)라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후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리셀러에 대한 거부반응에 리셀가격이 급락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리셀의 세계를 보다 널리 알리게 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사실 리셀 행위를 통해 물건을 사고팔기 시작한 건 근래의 일이 아니다. 중고거래 사이트, 플리마켓, 친구간의 거래 등 크게 보면 모두 리셀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과거에는 친목 커뮤니티 등에서 작은 단위로 이뤄지던 것에 반해 최근엔 그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실제로 리셀을 전문으로 하는 쇼핑몰이 하나둘 급증하고 있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는 전문 리셀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단순히 규모만 커진 것은 아니다. 리셀러가 취급하는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먼저 리셀의 대상이 되려면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적어야 한다. 그 때문에 과거엔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유명 브랜드의 의류 제품, 특히 나이키의 조던 운동화나 슈프림 의류 등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최근엔 의류와 더불어 인형과 장난감, 주방식기, 심지어는 식료품까지 리셀되고 있다.

특히 몇몇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특정 요식업체가 무료로 제공하는 사은품을 돈을 받고 파는 사례까지 등장했고, 어떤 리셀러는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이 한창 인기를 끌 당시 반쯤 먹다만 제품을 판매상품으로 내놓기도 했다. 최근 리셀 행위가 도를 지나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명동에 늘어선 캠핑 행렬

사실 처음부터 리셀 행위가 골칫거리였던 것은 아니다. 리셀러의 원형은 구매대행업자(여건상 살 수 없는 제품을 대신 구매해주는 사람)라고 볼 수 있는데, 김종명씨의 사례처럼 처음에 이들은 소비자에게 큰 만족감을 줬다. 문제는 리셀의 규모가 무분별하게 커지면서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준영 상명대(소비자학) 교수는 “리셀러가 취급하는 품목은 대부분 한정판인데, 이는 원래 소수 마니아층을 위해 기업이 발매한 제품”이라면서 “하지만 리셀러들이 해당 상품을 투기의 목적으로 독점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된 리셀 행위가 규모가 커지면서 유통질서와 기존 취지를 왜곡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다. 리셀러의 인기품목인 ‘조던 시리즈’의 경우 모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정식발매가격에서 두배정도는 기본으로 뛴다. 조던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조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이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 미국의 유명 가수 카니예 웨스트가 나이키, 아디다스 등과 협력해 만든 신발 ‘레드옥토버’와 ‘이지부스트 시리즈’는 20만~40만원대로 발매됐지만 현재는 리셀러를 통해 각각 500만~600만원대, 100만~300만원대의 거금을 줘야 살 수 있다. 그나마도 물량이 있어야 구매가 가능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를 유명 브랜드에서만의 예외적인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 압구정동에 한개의 매장과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어느 한 의류업체는 수작업으로 작업한 모자를 한정된 수량만 만들어 판매한다. 연예인들이 쓰고나와 인기몰이에 성공한 이 제품은 현재 리셀러를 통해 구입하려면 두배가량 웃돈을 줘야 한다.

리셀러가 급증하고 실수요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 데는 기업도 책임을 회피할 순 없다는 지적이다. 이준영 교수는 “리셀러에 의해 가격이 배로 뛰고 구매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을 띠면 기업으로선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서 “결국 마케팅의 일부분으로 한정품 발매를 이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피해를 보는 것을 알면서도 웃돈을 주고 사는 소비자의 심리는 무엇일까. 이 교수는 수량 희소성과 시간 희소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수량이 적은 데다 지금이 아니면 살 수 없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사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기성품에 싫증을 느끼고 개성과 차별화를 추구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리셀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만원이 600만원으로 껑충

수요가 있다고 해서 문제점이 없다고 볼 수 있을까. 리셀 행위는 독점 행위로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주고 거품이 잔뜩 낀 가격으로 돈을 버는 투기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제재할만한 근거와 대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 교수는 “리셀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기업에서 1인당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등의 자체적인 제재수단을 마련하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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