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사외이사들은 충견이었나

▲ 대우조선해양 사태는 경영진의 독주를 막지 못한 사외이사들의 책임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사진=뉴시스]
대우조선해양의 내부 비리가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전현직 CEO는 물론 경영 행위를 감시하는 사외이사도 비리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영진의 ‘거수기’ 역할만 했기 때문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대우조선해양의 2010년 1월~2016년 3월 이사회 안건 271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가결률은 사실상 100%였다.

“낙하산 사외이사가 대우조선해양을 망쳤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진 비리가 검찰 수사로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나온 지적이다. 이는 지난해 김기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정감사를 통해 “2008년 3월 이후 임명된 사외이사 18명 중 10명이 ‘정피아(정치권 마피아)’라고 주장하면서 공론화됐다.

일부에선 “명확하게 드러나는 이들만 10명일 뿐 사외이사 대부분이 낙하산 인사로 정ㆍ관피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실제로 2010년을 기점으로 대우조선해양을 거쳐간 사외이사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약 70%가 정치권 혹은 관官 출신 인사들이다. 대우조선해양의 사업과 연관된 지식을 갖춘 이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김영일 사외이사(당시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ㆍ2012년)는 2006년 김문수 경기지사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한 바 있고, 윤창중 사외이사(당시 통일연구원 고문ㆍ2012년)는 임기 중에 18대 대통령직인수위 수석대변인과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실 대변인을 맡으면서 퇴사했다. 이영배 사외이사(2015년)는 유정복 인천시장(전 안행부 장관)의 보좌관 출신이며, 이종구 사외이사(2015년)는 17ㆍ18대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학 교수라 하더라도 정ㆍ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김영(2010년) 부경대 초빙교수는 17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부산시당 선거대책본부 고문을 한 경력이 있다. 신광식(2013~2014년) 연세대 교수는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 위원을 맡았다. 뉴라이트 정책위원장이기도 한 안세영(2010~2011년) 서강대 교수는 전 산업자원부 국외연수국장 출신이고, 조전혁(2013~2015년) 명지대 교수는 18대 한나라당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경택(2012~ 2015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전 국토해양부 기술안전정책관 출신이다.

감시시스템 전혀 작동하지 않아

물론 사외이사의 이력을 문제 삼을 순 없다. 이력이 어떻든 전문성이 있으면 되고,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내면 그만이다. 그렇다고 사외이사의 역할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사회에 참여해 대주주의 독단경영과 전횡을 막기만 하면 된다. 이를테면 ‘감시견(watchdog)’ 역할이다. 힘과 권한도 있다. 업무집행결정권과 이사의 직무집행 감독권을 갖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법률상  상근이사와 동일한 권한과 책임을 갖는다.

문제는 낙하산 사외이사들이 대우조선해양의 거수기 노릇만 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선 2010년 1월(2010년 3월 제외)부터 2016년 3월까지 매월 정기이사회(총 74회)가 열렸고, 10회의 임시이사회가 열렸다. 그 기간,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만 해도 총 271건이다. 그 가운데 가결은 269건, 비율은 99.3%에 이른다. 나머지 2건은 부결이 아니라 ‘유보’였는데, 이 안건들은 이후 이사회에 재상정돼 가결됐다. 75개월 동안 모든 안건이 100% 가결된 셈이다.

안건을 가결하기 전 토론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도 아니다. 같은 기간, 이사회에선 1244건의 의견이 제기됐다. 그 가운데 유보 의견은 14건(1.1%), 반대 의견은 12건(0.9%)에 불과했다.

특히 이사회에 매년 상정되는 ‘재무제표, 연결재무제표, 영업보고서 승인의 건’은 사외이사가 가장 세심하게 챙겨야 할 안건이지만, 단 한건의 문제제기도 없었다. 그러면서 사외이사들은 매년 평균 6600만원의 연봉을 꼬박꼬박 받아 챙겼다. “사외이사들이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과 함께 사외이사제도를 다른 제도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술한 감시체계 개선해야

전성인 홍익대(경제학)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사외이사제도는 낙하산 인사로 인해 완벽하게 실패했다”면서 “사외이사 가운데 일부는 금융당국이 정ㆍ관계 낙하산 인사들에게 제공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로 인식돼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사외이사제도에 의존하기보다는 집단소송과 같은 제도를 정비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김보원 카이스트(경영학) 교수는 “대주주 혹은 오너가 자신들의 우군으로서 사외이사를 영입, 악순환을 겪고 있다”면서 “객관적이고 투명하며 능력 있는 사외이사를 기업이 선임하도록 하는 장치를 법제화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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