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止의 현명한 경제학

▲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도도한 세월 속에서도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사진=아이클릭아트]
1년여 진행되고 있는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한마디로 인간의 오만傲慢이 원인이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자식들이 회갑이 지난 나이인데도 후계상속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올해 95세인 그는 어느 임원이 “회장님 100세까지 장수하십시오”라고 인사하자, “120세는 끄떡없는데 무슨 말이냐”며 크게 화를 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그는 영원히 사는 불사조를 꿈꿨다. 언젠가는 소멸해야 할 인간의 숙명을 생각하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어야 했다.

높은 탑은 오만을 상징한다. 롯데그룹이 짓고 있는 123층짜리 롯데월드타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영토에서 가장 높은 높이 555m를 자랑한다. 구약성경 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이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고 하자 창조주가 내려와 “이제 그들은 무엇이든 하고자 할 것이다”며 벌을 내렸다고 적혀있다. 기독교는 이는 인간의 탐욕과 오만에 대한 경계로 풀이한다. 높이 쌓아야 할 것은 탑이 아니라 겸손과 자비라고 신神은 가르친다. 검찰의 칼끝은 신 회장 부자와 그의 가족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내년쯤 완공되면 준공 기념식에 신 회장과 두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지 이제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재계에서 퇴출되거나 위기를 맞고 있는 기업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대부분 그 원인은 오만이다. 수많은 기업들이 화려한 사옥을 짓는 와중에 회사가 부도를 맞았다. 회사의 가용자원을 새로운 수익원 창출을 위한 투자에 투입해야 하는데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옥을 번지르르하게 짓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창업 초기의 헝그리 정신은 이미 사라지고 막대한 재원은 사옥건설에 투입된다. 화려한 사옥을 갖는다는 뿌듯함은 오만으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회장이 외부 강연회에 연사로 출연하는 횟수가 늘어나고,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면 위기의 신호일 가능성이 높다. CEO가 권력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ㆍ국세청ㆍ검찰청을 거쳐 정부기관 중에서도 신중하기로 소문난 감사원에 연사로 초청되면 반드시 망한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남에게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자랑하는 순간, 자신의 회사는 이미 기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걸음을 멈춰야 길이 보인다

회사 내에 대주주 가족의 출입이 잦고, 최고경영자가 특정 직원 몇몇과 문 닫고 얘기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이미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조직의 생리상 회장과 자주 독대하는 특정인에게 권력이 쏠리기 마련이다. 회장 주위에는 ‘인人의 장막’이 쳐져 음모와 모략과 배신의 씨앗이 잉태되고, 정작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홍콩의 대부호 이가성은 ‘멈춤을 안다’는 뜻의 ‘지지知止’라는 두 글자를 사무실의 눈에 띄는 곳에 걸어뒀다고 한다. 무리한 욕심을 경계하고, 절대로 오만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멈춤의 ‘지止’와 멈추지 않는 ‘부지不止’의 사이가 성공과 실패의 분수령이자 큰일을 이루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과의 경계선이다. 위기에 처한 사람은 포기하지 말고 버텨야 하며, 잘나가는 사람은 멈출 생각을 해야 한다. 시간은 승자에게는 겸손함을 요구하고, 패자에게는 희망을 준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멈춤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를 노래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처럼 여름의 끝자락이다. 새벽녘 코끝을 스치는 선선한 바람은 욕망을 조절하고 반성하라는 신의 전령이다. 가을엔 잠깐이라도 좋으니 가던 길을 멈추어 보자. 참선이나 묵상을 해도 좋고, 홀로 여행을 떠나 철지난 휴양지를 거닐어도 좋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인데 우리는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 보자. 인생이라는 보따리에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다시 담아야 한다. 너무 급히 떠난다고 여행가방을 놓고 떠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미국을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이자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인간은 신의 사자使者인 동시에 피조물인 양면성을 갖고 태어난 존재인데, 이런 사실을 잊기 때문에 교만에 빠진다고 갈파했다. 그는 유명한 ‘평온함을 위한 기도문’을 남겼다. “주여,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평온함을, 제가 변화시킬 수 있는 일들을 변화시키는 용기를,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제게 허락하소서.”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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