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오토텍, 롯데홈쇼핑 협력업체는 왜 우나

원청기업이 헛기침을 하면 협력업체는 감기에 걸린다. 왜 감기에 걸리는지, 또 언제 감기를 털어낼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왜 감기 바이러스를 우리에게 전파했냐고 따질 수도 없다. 이유도 모른 채, 미래도 모른 채 그들은 침묵해야 한다. 노사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갑을오토텍의 협력업체, 영업정지 처분으로 사선死線을 오르내리는 롯데홈쇼핑 협력업체의 애환哀歡을 취재했다.

▲ 원청기업의 돌발변수에 휘말린 협력업체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어렵다.[사진=뉴시스]
# 국내 중견건설사인 벽산엔지니어링은 지난 6월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2014년 7월~2015년 12월 하도급업체에 건설공사ㆍ배관설계ㆍ레미콘 제조 등을 위탁하면서 하도급 대금지연이자와 어음대체결제 수수료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기간 협력업체 2곳은 하도급대금 1650만원을 못 받았다. 34곳은 지연이자 1187만원을 지급 받지 못했고, 268곳은 하도급대금 403억3300만원을 어음대체결제수단으로 돌려받았다. 그러면서도 벽산엔지니어링은 대금지급 초과기간에 해당하는 어음대체결제 수수료 4억7257만원은 아예 주지도 않았다.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다.

# 원청기업만 협력업체를 괴롭히는 건 아니다. 규모가 큰 협력업체(1차)가 작은 업체(2차)에 갑질을 해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LG전자의 1차 협력업체인 신영프레시젼은 2010~2012년 4월 2차 협력업체 코스맥에 휴대전화 부품의 도장ㆍ코팅을 제조위탁하면서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인하했다. 주요 품목별 납품단가 인하내역을 보면, 품목당 3~5회에 걸쳐 단가 인하가 이뤄졌고, 누적 인하율은 최고 22.8%에 달했다. 2011년 매출액 36억원, 당기순이익 19억원을 올렸던 코스맥은 경영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2012년 4월 부도처리됐다.

“우리는 개돼지 취급도 못 받고 있다.” 원청기업이 헛기침만 해도 감기에 걸리는 협력업체의 비애悲哀를 읽을 수 있는 한 협력업체 대표의 말이다. 실제로 원청기업에 납품을 해야 하는 협력업체는 태생적으로 을乙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적이 좋으면 단가 후려치기를 걱정해야 하고, 노사갈등으로 원청기업의 생산이 중단되면 하루에도 몇번씩 사선死線을 오르내려야 한다. 시쳇말로 ‘잘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인 셈이다.

지난 7월 26일 충남 아산에 위치한 자동차부품업체 갑을오토텍이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회사의 존속과 시설 보호’를 위한 결정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었다. 하지만 갑을오토텍의 공장은 사실상 7월 8일부터 가동이 멈춘 상태였다. 임금교섭 과정에서 불거진 노사갈등으로 노조가 공장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노사갈등의 부메랑이 협력업체의 폐부肺腑를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애먼 협력업체까지 일손을 놓아야 하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면 다 죽어”

갑을오토텍 협력업체들이 지난 6일 “이대로 가면 모두 죽습니다”라는 호소문을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원청기업(갑을오토텍)의 조업 중단으로 경영 위기를 겪고 있다. 파업을 중단하고 원청기업과 협력업체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 원청기업의 크고 작은 파업 앞에 1만9000명의 협력업체 가족들은 잠 못 이루고 있다.” 이들은 9일 오전 천안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측과 노조에 ‘경영정상화’를 촉구하기도 했다. “일단 파업을 풀고 공장부터 재가동해 달라”는 입장을 호소한 거다.

10여 년 전부터 갑을오토텍에 납품하고 있는 기체펌프 제조업체 ‘제이엠텍’의 김준오 대표는 “앞이 안 보인다”면서 “지금 상황은 탱크만 없지, 마치 ‘전쟁’ 같다”고 말했다. 매출의 70%가 갑을오토텍과의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 회사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7월 매출이 월 평균보다 1억1000만원이나 적은 2000만원에 불과했을 정도다. 김 대표는 “8월 매출은 0원이 될 수도 있다”면서 “지금은 버티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버틸 거고, 어떻게든 직원들 월급도 줄 거다. 그게 기업이 할 일이고 내가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속상하고 답답할 따름이다.”

어렵긴 다른 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공기조화장치 제조업체인 애드테크 역시 손 놓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우리 같은 협력회사들이 무슨 대책이 있겠냐”면서 “노사가 좋은 방향으로 합의를 해 하루빨리 정상화가 되길 바랄 뿐이다”고 밝혔다.

▲ 미래부의 롯데홈쇼핑 영업정지 처분으로 협력업체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사진=뉴시스]
원청기업의 악재가 협력업체를 뒤흔드는 일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유사 사례도 수두룩하다. 롯데홈쇼핑의 영업정지 처분 조치로 관련 협력업체들이 위기에 놓인 건 대표적인 예다. 롯데홈쇼핑은 지난 2월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부정혐의가 있는 임직원을 누락한 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나 ‘9월 28일부터 6개월간 프라임타임 업무 정지’라는 철퇴를 맞았다.

문제는 이 처분으로 롯데홈쇼핑에 제품을 납품하는 170여개 중소 협력업체들이 벼랑에 몰렸다는 점이다. 세양침대는 그중 하나다. 롯데홈쇼핑에만 단독으로 제품을 납품하는 이 회사는 지난해 프라임타임 판매로 24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예정대로 롯데홈쇼핑의 영업이 6개월간 정지되면, 이 회사의 프라임타임 매출은 단순계산으로 반토막이 난다.

“협력업체 배려는 없다”

진정호 세양침대 대표(롯데홈쇼핑 협력사 비상대책위원장)는 “6개월간 납품을 못한다면 버티기 어렵다”면서 “비대위원장 자격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미래부에 몇차례 항의방문도 해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는 “정부나 롯데홈쇼핑이 연쇄 도산 위기에 놓인 우리 협력업체들을 배려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꼬집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제부터다. 협력업체가 경영난에 시달리면, 고용 등 후폭풍의 범위가 넓어진다. 일례로 롯데홈쇼핑의 직간접 고용 인원은 정규직, 보험콜센터, 방송 등을 포함해 약 4000명이다. 여기에 롯데홈쇼핑과 계약된 택배회사의 현장 배송인력 3만2000명과 중소협력업체 8400명까지 더하면 롯데홈쇼핑과 연관이 있는 인력은 4만명을 넘어선다.

고용만이 아니다. 지역경제의 기둥뿌리도 흔들릴 수도 있다. 550여개 협력업체 임직원 7만명의 고용문제가 대두됐던 2014년 팬택 사태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대형 조선업체의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협력업체가 홍역을 앓고 있는 울산과 경남의 경제지표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통계청의 고용동향에 따르면 7월 실업률은 3.5%로 전년 대비 0.2% 포인트 하락했다. 하지만 조선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울산의 실업률은 3.9%로 전년 대비 1.2% 포인트, 경남은 3.6%로 1.0% 포인트 상승했다. 생산과 소비도 저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통계청의 ‘2016년 2분기 시도 서비스업 생산 및 소매판매동향’을 보면, 전국 서비스업 생산은 전년 대비 3.7% 늘었지만 울산과 경남은 각각 1.6%, 3.0%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소매판매 증가율도 전국의 6.0%를 크게 밑도는 2.7%(울산)와 1.2%(경남)를 기록했다. 조선업 위기에 따른 협력업체의 위기가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원청기업의 돌발변수에 휘말린 협력업체는 ‘자구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경영이든 생산이든 마케팅이든 원청기업에 의존도가 심해서다. 그래서 협력업체 CEO들은 먼발치에서 사태가 진정되길 바랄 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털어놓는다. 혹자는 ‘원청기업에 의존하는 협력업체도 문제’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명하지 않은 지적이다.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한 탓에 발생한 한국경제의 ‘모순矛盾’들을 협력업체 보고 해결하라고 꼬집는 것과 다를 바 없어서다. 한국경제의 생태계를 바꾸기 전에 협력업체를 위한 대안이 필요한 이유다.

협력업체 경영난, 민생에 악영향

이영면 한국윤리경영학회 회장(동국대 교수)은 “노사와 협력업체들이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쉬운 길은 아니다. 하지만 노사와 협력업체가 대화를 할 수 있는 형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 형태가 느슨하더라도 정부가 지원만 한다면 원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협력업체의 어려움을 조금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는 노사민정勞使民政 협의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 이 회장은 “‘노사’와 ‘민정’이 함께 걸으면 명분이 아닌 실리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렇다. 큰 칼을 쓰든 작은 칼을 쓰든 협력업체를 괴롭히는 나쁜 생태계를 도려낼 필요가 있다. 협력업체의 눈물, 이젠 닦아줄 때도 됐다.
김미란ㆍ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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