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설국열차 ❹

▲ 설국열차의 메시지 전달자는 단연 ‘황일점’ 요나다.
마지막 인류를 태우고 17년째 쉬지 않고 무한정 지구를 도는 ‘설국열차’는 ‘노아의 방주’를 닮았다. ‘방주(Ark)’란 원래 ‘나무 궤짝’을 의미할 뿐 통상적인 배가 아니다. 노아의 방주가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항해 장치를 갖추지 않은 ‘나무상자’에 지나지 않았듯 설국열차 또한 목적지 없이 육상을 맴도는 마지막 인류가 숨은 ‘철제상자’일 뿐이다.

노아의 방주에는 지구상 모든 동물의 암수 서너쌍씩 태웠다고 한다. 그러나 설국열차의 탑승객들 면면을 살펴보면 노아의 방주처럼 세계 인종의 지분(quota)에 맞지 않는다. 백인과 흑인은 보이는데, 전 세계 인구의 60% 약 40억명을 구성하는 황인종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방주의 탑승자를 결정하는 노아의 권한을 지닌 이가 ‘한국인’ 봉준호 감독인데도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황인종은 설국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 그리고 남궁민수의 성냥을 들고튀는 첸 외에는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황인종을 너무 안 태웠다는 섭섭함은 사라진다. 프랑스 원작 만화와는 상관없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의 메시지 전달자는 ‘황일점黃一點’ 요나다.

요나(Jonas)는 창세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예언자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해 풍랑 속 바다에 던져지고 커다란 물고기에 잡아먹혀 3일 만에 물고기 배속에서 살아나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 영화 속 소녀 요나가 어떤 비행이나 범죄를 저질러 아빠 남궁민수와 갇히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 환각제 ‘크로놀’ 중독자인 아빠와 함께 1등칸 부유층의 크로놀을 훔쳐내다 걸린 것으로 추측된다. 이들 부녀의 대단히 불량한 언어구사만 봐도 커다란 물고기 배속 같은 수면구금실에 감금될만한 비행을 저질렀을 것으로 충분히 유추가능하다.

영화 속 요나는 예언자라는 그 이름답게 꼬리칸 혁명군이 엔진칸을 향해 진격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철제문 건너의 상황을 족집게처럼 예언한다. 2030년 엄혹하게 얼어붙었던 기차 밖 세상이 조금씩 녹고 있다는 사실도 순수한 남궁민수의 관찰에 따른 판단이 아니라 요나의 예지력에 기반을 둔 아빠의 관찰결과인 듯하다.

▲ 감독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흑인종과 황인종에게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맡긴다.
영화의 마지막. 남궁민수와 혁명군 지도자 커티스는 인간의 타락을 상징하는 ‘크로놀’을 한데 모아 기차를 폭파하고 지켜야할 다음 세대인 티미(Timmy)와 요나를 품에 안아 보호하면서 최후를 맞는다. 그렇게 흑인 아이 티미와 황인종 요나만 살아남는다. 마지막 인류이자 새로운 인류의 조상인 요나는 티미의 손을 잡고 뒤집히고 파괴된 설국열차를 기어 나와 마치 닐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딛듯 순백의 설원에 첫발을 뗀다. 멀리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는 순백의 백곰은 혹독한 빙하기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린다.

대홍수가 지나고 노아의 세 아들 셈, 야벳, 그리고 함은 각각 유태인과 아랍인, 백인, 그리고 흑인의 조상이 됐다고 한다. 기이하게도 지금 전 인류의 60%를 점하는 황인종의 조상은 없다. 봉준호 감독은 아직도 중동과 유럽에서 ‘사생결단’ 종교전쟁을 벌이는 야벳의 후손들인 백인과 셈의 후손들인 아랍인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조금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온 흑인종(타미)과 황인종(요나)에게 인류의 새로운 시작을 맡긴다.

창세기에서 요나는 이스라엘을 억압하는 니네베의 원수들을 응징하지 않는 하느님을 원망한다. 하느님은 요나가 더위를 피하는 아주까리 잎을 시들게 한다. 요나가 화를 내자 하느님은 그가 아주까리를 동정하는 것과 하느님이 니네베인들을 동정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도록 한다. 요나에게 내린 그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세상이라면 진정한 새로운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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