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약속 ‘투명 롯데’ 얼마나 지켜졌나

지난해 롯데그룹은 격렬한 경영권 분쟁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재벌가家의 지리멸렬한 다툼에 국민들은 치를 떨었다. 분쟁에서 승기를 잡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투명한 롯데’를 약속하면서 이를 수행할 TF팀까지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이 흐른 지금, 신동빈 회장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면서 발족한 롯데그룹의 TF팀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번 태스크포스(TF)팀 구성은 롯데그룹의 경영투명성 강화를 위한 변화와 혁신의 첫걸음이다. 겸허한 마음으로 착실히 준비해 롯데를 사랑해 주시는 국민 여러분의 신뢰와 기대를 회복해 나가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인 2015년 8월 26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TF팀을 발족했다. 중점 추진 과제는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순환출자 해소, 지주회사 전환, 경영투명성 제고 등 총 4가지. 그룹 실세로 통하는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팀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당시 롯데그룹은 경영권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후계분쟁 흐름이 신동주ㆍ동빈 형제의 난에서 신격호ㆍ동빈 부자 갈등으로 치달았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8월 17일)에서 신동빈 회장이 승기를 잡으면서 분쟁은 일단락됐지만 문제가 남았다. 다름 아닌 ‘반反 롯데’ 정서로, 당시 롯데그룹과 신동빈 회장을 향한 부정적인 여론은 극으로 치달았다.

신 회장은 이를 해결할 열쇠로 ‘투명 경영’을 꼽았다. 폐쇄적인 지배구조를 통해 이른바 ‘황제경영’을 해왔던 신격호 총괄회장과는 다른 노선을 걷기로 한 셈이다. ‘신 회장이 특유의 정면 돌파 리더십이 발휘됐다’ ‘폐쇄적이던 롯데의 환골탈태가 시작됐다’ 등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TF팀을 발족한 지 1년, 신 회장의 ‘투명한 롯데 만들기’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을까. 우선 신 회장은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위해 “순환 출자를 2015년 말까지 80.0% 해소하고, 중장기적으로 그룹 지주사로 전환해 순환출자를 완전히 해소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순환출자는 그룹 총수나 오너가 적은 지분으로 많은 계열사를 지배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공정위는 법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늘리거나 강화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올해 7월 현재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는 1년 새 416개에서 67개로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롯데그룹의 순환출자 고리 67개는 대기업집단 중에서 가장 많다. 대기업집단의 전체 순환출자 고리(94개)의 71.3%에 이르는 수준이다. 아직 갈길이 멀다는 얘기다.

TF팀 과제의 방점이나 다름없는 ‘호텔롯데의 일본 계열회사 지분 비율 축소 및 기업공개 상장’의 추진은 기약 없이 밀려났다. 당시 신 회장은 호텔롯데의 상장을 통해 일본계 지분을 98.0%에서 65.0%로 낮춰 ‘일본으로의 국부 유출’ 꼬리표를 떼어내고자 했다.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호텔롯데의 일본발 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신 회장이 호텔롯데의 상장(IPO)을 추진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호텔롯데는 ‘하반기 IPO시장의 최대어’로 불리며 투자자들의 눈을 자극했다.

지배구조 개선 TF팀의 4대 과제

하지만 올해 6월 시작된 검찰의 롯데그룹 비자금 수사의 여파로 물거품이 됐다. 신 회장은 “호텔롯데 상장은 국회에서 국민과 약속한 사항이므로 꼭 지키겠다”면서 재추진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의 시선은 다르다. 연내 상장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게 중론. 당장 검찰 수사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이나 횡령ㆍ배임 등의 혐의가 입증돼 호텔롯데가 회계처리 기준 위반으로 검찰이 고발하면 3년 동안 상장예비심사 신청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이다.

 
사법 처리를 면한다 하더라도 거래소 측에서 투자자 보호를 명분으로 상장을 거부할 공산도 크다.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호텔롯데 상장’이 해결되지 않으면 세번째 추진과제인 지주사 전환도 불가능하다. 일반 지주회사가 금융계열사를 소유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금산분리법도 롯데 지주사 전환의 여전한 걸림돌이다.

자산규모 3000억원 이상의 모든 계열사에 사외이사를 두기로 한 경영투명성 제고책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현행법은 경영진ㆍ지배주주의 독단적 의사결정을 견제할 목적으로 상장사와 금융회사에만 의무적으로 사외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 측은 비상장사에도 사외이사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그 결과 올해 사외이사를 둔 계열사는 26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11월(14곳)의 약 두배가 된 셈이다. 사외이사 숫자만 총 61명이다.

하지만 지난해 롯데그룹 사외 이사의 안건 찬성률이 평균 99.4%였음을 감안하면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롯데 상장사 사외이사 중 관료 출신의 비중은 최근 4년간 꾸준히 50.0% 이상을 유지해 왔다는 점도 문제다. 지난해에는 전체 29명 중 15명으로 51.7%를 기록했다. 2014년에는 29명 가운데 19명이, 2013년에는 29명 중 17명이 관료 출신이었다.

약속 못 지켰나 안 지켰나

무엇보다 형제간 경영권 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올해 6월 열린 일본 롯데홀딩스의 3번째 임시주주총회 표대결에서도 신 회장에게 밀렸지만,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무한주총’을 선언했다.

롯데가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되면서 신 전 부회장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한국에 비해 일본이 기업범죄를 더욱 엄격하게 다루고 있는 만큼, 신 전 부회장은 무한주총을 통해 싸움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신동빈 회장의 ‘투명한 롯데그룹’은 그렇게 멀어지고 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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