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살돈시대 ❽

▲ 골격근이 거의 없는 우리의 몸은 지방 덩어리에 불과했다.[사진=아이클릭아트]
지금까지는 살을 찌워야 했다면 이제부턴 살을 뺄 일만 남았다. 체중 감량 기간을 단축하고 보너스를 받기로 계약을 갱신한 우리는 조급해졌다. 처음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 산속을 걷던 우리는 불과 몇 분 만에 초주검이 됐다. 체지방률이 60%에 육박하는 우리의 몸은 골격근이 거의 없는 상태이니 간신히 구르는 지방 덩어리에 불과했다.
 
두달여 풍요를 경험한 우리의 몸은 기름지고 에너지 밀도 높은 음식을 간절히 요구했다. 근육이 없으니 열량이 낮은 음식은 에너지로 쓰이지 않고 몸에 축적됐다. 무엇을 먹더라도 지방세포에서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고형화된 중성 지방으로 저장했다.

하루 한끼의 식사에도 살은 빠지지 않았고 배고픔은 극에 달했다. 며칠 후에 늘씬하고 아름다운 모습이 돼야 할 우리는 조바심이 났다. 심약한 혜진이는 계약서를 들여다보며 우는 일이 잦아졌고 문디 가시나는 수시로 사탕을 찾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우리의 주위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를 날씬하게 만들어 데려가야 할 김 실장이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체중 증가를 점검하던 회사 대표는 체중 감량 기간에는 전화조차 없다. 살을 빼서 다시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우리를 모두가 소홀하게 대하는 낯선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던 거다.

그러고 보니 박 강사는 우리에게 그들의 발명품인 ‘팻-bye’를 주지 않았다. 살을 빼야 하는데 왜 제품을 주지 않느냐며 거칠게 대들어도 박 강사는 제품을 주기는커녕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산속에 덩그러니 위치한 합숙소에는 우리와 박 강사,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의문들만 남았다.

그러나 그 의문들이 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날 인터넷을 들여다보던 혜진이의 입에서 “어머나 이게 뭐야?”라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우르르 몰려들어 작은 PC 화면을 들여다보던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날씬한 모습으로 환호하며 걷는 우리의 모습이 인터넷을 타고 생중계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는 아직도 충분히 뚱뚱한데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저 늘씬하고 예쁜 우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할 말을 잊은 채 서로서로 얼굴과 컴퓨터 화면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혜진이는 모든 것을 눈치챈 듯 울부짖었다. “우리가 속았다. 이 바보들아. 흑흑.” 밖에서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던 박 강사 역시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화면 속의 날씬한 우리는 두달 전 오디션에서 연기를 펼치던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이 왜 그토록 우리를 연기에 열중하게 했는지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오디션 당시의 연기 화면을 비만 여성들의 감량 후 모습으로 감쪽같이 둔갑시킨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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