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계부채 심각한 이유

▲ 원리금이 가계를 압박하는 순간 지갑이 닫힌다.[사진=아이클릭아트]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 일본보다는 높지만 미국, 영국보단 되레 낮다. 하지만 가처분소득으로 기준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ㆍ영국ㆍ일본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질質이 나쁘다는 거다. 민생경제와 연결된 가계부채가 나쁜 나비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

“가계부채의 증가세는 바람직하지 않다. 감독 당국이 가계부채의 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여러 조치를 내놨지만 가시화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이같이 우려를 표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갈수록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는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한국은행이 가계신용 통계치를 내놓기 시작한 2002년 이후로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한해도 빠짐없이 증가세를 보였다. 사실 해외 선진국도 가계부채 규모는 작지 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1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는 우리나라(89.5%)가 미국(89.9%)과 영국(100.8%)보다 낮고, 일본(82.1%)보다는 조금 높은 수준이었다. 한편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비율이 양호한데 호들갑을 떠는 경향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를 따져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011년 미국ㆍ영국ㆍ일본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는 각각 120.1%, 160.4%, 131.7%였다. 우리나라는 162.9%로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민생과 직결되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가 다른 해외국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꼬집은 자료는 또 있다. 선대인경제연구소가 분석한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의 2013년 순자산 대비 가계부채는 20.3%로 미국(19.2%), 영국(20.3%), 일본(16.4%)과 비슷했다. 그런데 금융자산 대비 가계부채는 미국(22.9%), 영국(34.0%), 일본(23.8%)보다 훨씬 높은 66.9%까지 치솟았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문제를 소홀하게 다뤄선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실 소득만 따라준다면 가계부채는 별 문제가 아닐 수 있다”면서 “문제는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채가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대출을 억제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빠르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2차ㆍ3차 문제를 야기할 공산이 크다.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가계부채 탓에 내수경제가 더욱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홍준표 연구위원은 “가계부채는 늘어만 가는데 소득과 가처분소득은 크게 늘지 않으니 소비가 줄어드는 것”이라면서 “결국 기업 입장에선 실적이 악화되고 내수경제가 위축되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15년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소비지출은 전년 대비 0.2%가량 감소했다. 평균소비성향(소비지출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수치)은 1%포인트 줄었다. 올해도 소비성향이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올 2분기 소비지출은 1분기에 비해 7.1% 감소했고, 평균소비성향은 1.2%포인트 낮아졌다. 소비지출 항목을 살펴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내수경제와 연관된 식료품ㆍ음료ㆍ주류ㆍ담배ㆍ의류ㆍ기타서비스 등의 지출은 크게 감소한 반면 주거ㆍ수도ㆍ보건ㆍ교통비 등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박완규 중앙대(경제학) 교수는 “부채증가로 인한 소비 위축으로 우리나라 경제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라면서 말을 이었다. “소비 감소로 인한 기업 실적 악화가 기업의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다. 이후 고용감소와 경제성장률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매우 크다.” 부채증가→소비 위축→기업 실적 악화→투자 감소→고용 악화→가계소득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박 교수는 “가계부채 증가가 금융권의 신용경색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가계부채가 불러올 또다른 문제를 지적했다. 가계부채 증가와 그로 인한 소비위축은 ‘돈맥경화 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특히 가계대출 용도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부동산인 만큼 돈맥경화가 시작되면 부동산 시장도 얼어붙을 공산이 크고, 그렇다면 은행권 부실 가능성도 점쳐봐야 한다. 가계부채의 나쁜 나비효과가 한국경제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경고음이 계속해서 울리는 이유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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