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진짜 괜찮나

2012년 한진중공업은 노사갈등을 슬기롭게 회복한 회사로 손꼽혔다. 309일간의 크레인 농성이 끝난 뒤 등장한 신新노조와 회사가 합심해 수주까지 일궜기 때문이다. 그런데 구舊노조의 속은 썩고 있었다. 다른 예도 있다. 얼마 전까지 한진중공업은 부진한 업황을 뚫고 좋은 실적을 내는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최근 ‘600억~1300억원 손실’을 감춰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 진짜 괜찮은 걸까.

▲ 한진중공업 신노조가 사측과 화합을 강조하던 2012년. 정작 노조 조합원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있다.[사진=뉴시스]

‘분쟁을 극복한 구조조정의 모범생.’ 최근 한진중공업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2010년 12월 사측이 생산직 노동자들에게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실시한 이후 노사 갈등이 극에 달했던 바로 그 회사다. 2009년 완공한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통해 회사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일까.

노사관계부터 짚어보자. 한진중공업 노조는 지난 6월 임금과 단체협상을 회사에 백지위임했다. 1937년 한진중공업이 창립한 지 8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김외욱 노조위원장은 “조선 업종이 세계적인 불황을 겪는 상황에서 수주에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려면 노조와 회사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조선업계가 한진중공업의 사례를 배워야 한다는 논지의 기사들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의 결정을 지지하는 노조원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불만을 내비치는 노조원들도 많았다. 일부 노조원은 이렇게 말했다. “노사가 화합하면 좋다는 걸 누가 모르나. 다만 임단협은 노조가 마땅히 지켜야 할 권리다. 임금을 동결하더라도 임단협을 통해서 해야지 백지위임을 해버리면 그 권리를 포기한 거나 다름없다. 노조원들을 위한 노조인지 의심스럽다.”

이 회사에는 두개의 노조가 있다. 단체교섭권을 갖고 있는 노조는 2012년 5월에 복수노조로 생긴 신新노조다. 조합원은 600여명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노총 산하의 한진중공업지회다. 이전엔 한진중공업지회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지만 정리해고를 둘러싸고 사측과 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와해돼 지금은 200여명의 조합원밖에 남지 않았다.

언뜻 신노조의 조합원들이 더 많으니 조합원의 생각도 신노조에 따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신노조는 설립 때부터 말이 많았다. 사측이 구舊노조에 속한 노조원들을 ‘순환근무(순환휴직)’ 제도를 통해 압박하고, 신노조를 대놓고 지원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정리해고됐다가 재취업해 신노조로 갈아타라는 제안을 받고 노조를 옮긴 한 노조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신노조에 불만이 있다면 구노조로 옮기면 되는 것 아니냐.” 노조원은 건조하게 답했다. “말처럼 쉽지 않다. 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노노갈등 여전, 수빅 실적은 글쎄

어떤 노조가 좋고 어떤 노조가 나쁘냐를 따지는 게 아니다. 복수노조에서 노조원들이 자율적으로 노조를 택하는 데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게 문제다. 노노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노조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될 리 없다. 노사관계가 개선됐다는 건 허울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것 역시 사실일 가능성이 낮다. 최근 한진중공업은 최근 2년간 손실규모가 600억~1300억원 더 늘었다고 공시했다. 금융감독원은 18일 “한진중공업이 1909억원 규모의 손상차손(재무제표상 손실 처리)이 발생했다고 인정한 만큼 하반기 정례점검을 통해 회계 감리 필요성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회계오류’라는 한진중공업의 주장과 달리 금감원은 올해 상반기 대우조선해양에서 대규모 순손실을 발표한 후 회계분식 정황이 드러난 것과 비슷한 사례로 보고 있다.

그렇다면 한진중공업이 손실을 감춘 이유는 뭘까. 시계추를 지난 5월로 돌려보자. 당시 한진중공업은 유동성 위기를 이유로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자율협약 기간 한진중공업은 부동산과 자회사를 일부 파는 방식으로 2조원대의 자구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채권단은 1200억원의 자금을 신규 지원했다. 협약 만료기간인 2018년 12월 말까지 출자전환을 통해 1000억원대의 이자를 감면, 원금상환도 유예했다. 조남호 회장의 경영권도 유지해줬다. 채권단은 별도의 감자계획도 잡지 않았다. 이는 통상적인 자율협약보다 후한 조건으로 평가받았다. 자율협약 기업에 감자와 출자전환이 이뤄지면 대주주의 경영권 상실은 통상적인 수순이라서다.

당시 한진중공업 관계자는 “남은 회사채가 없고, 금융권 채무에 담보가 있다는 점, 수빅조선소의 경쟁력이 높고 노조가 구조조정에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점 등이 자율협약 조건 설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진중공업이 채권단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데 수빅조선소의 실적과 노사관계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한진중공업이 빈 수레를 요란하게 흔들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제2의 대우조선 사태 번지나

더구나 한진중공업의 눈속임은 2010년에도 있었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아무 문제없던 조선부문에서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노조가 반발하면서 한진중공업 사태가 터졌다. 조선부문 수주환경 악화가 이유였지만, 2010년 조선부문은 1762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를 두고 조남호 회장이 손댄 건설부문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조선부문에 손을 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익명의 한 경영컨설팅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명확한 내용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한진중공업 회계부실로 인한 손실 규모는 작아도 행태는 비슷하다는 점에서 제2의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번지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 때문에 정말 단순한 실수였는지 정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꽉 찬 수레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는 법이다. 수레가 요란할 때 주변을 한번 더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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