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5개월 맞은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

▲ 격식보단 실리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정원 회장(왼쪽에서 두번째) 앞에는 수많은 과제가 놓여 있다.[사진=뉴시스]
박정원(54) 두산그룹 회장이 재계의 큰 관심 속에 두산호號 선장을 맡은 지 5개월째다. 2분기 그룹 경영 실적이 호전되는 등 취임 초기 항행航行 성적표는 일단 합격점이다. 지난해 큰 적자 속에 유동성 위기와 이미지 실추라는 대형 파도를 만났던 두산호號가 선장 교체 이후 순항 코스로 접어든 분위기다. 오너 4세로 재계 순위 11위의 두산호 선장자리에 오른 그의 항해솜씨가 시험대에 올라 있다.

“두산밥캣의 기업공개(IPO)는 3분기 중 추진할 예정입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다른 곳에서 이야기합시다.” 지난 12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박정원 회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자리를 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모친(고 강태영 여사) 빈소라는 다소 의외의 장소에서 기자들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평소 언론 노출을 꺼려온 은둔형 CEO로 알려진 만큼 기자들이 그를 본 김에 두산의 최대 현안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자들 입장에서는 별 성과를 얻지 못했다. 지난 3월 28일 회장 취임식 당일에도 그는 취재 나온 기자들을 만나지 않고 자리를 뜬 것으로 알려졌다.

오너 4세로서 두산그룹에 입사(1985년)해 31년간 밑바닥에서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던 그는 준비된 4세 총수로 여겨졌다. 회장 취임 이전부터 그룹 내부에서 핵심 의사결정에 간여해왔고, 두산베어스 구단주로서도 손색없는 대외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언론과의 소통에는 아직 자신이 없는 듯하다. 이런 점은 삼촌이자 전임 회장이었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는 크게 차이가 난다.

8월 1일 창립 120년을 넘긴 장수기업이자 재계 순위 10위권인 두산에 대한 국민들의 궁금증과 관심은 좋든 싫든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재계 처음으로 4세가 총수를 맡아 국내에 ‘총수 4세 시대’의 문을 열었으니 더욱 그러하다. 소탈하고 과묵한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진 박 회장이지만 이제 총수가 된 만큼 언론 소통 방식에도 변화가 있었으면 하고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두산밥캣의 기업공개(IPO)가 왜 주요 관심사일까. 두산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에 핵심 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간 두산은 두산인프라코어ㆍ두산건설 등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선제적 구조조정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그룹 당기순적자가 1조7008억원에 이르자 그간의 노력이 무색해졌고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는 얘기마저 듣게 됐다.

올 상반기 들어 실적 개선으로 악화일로였던 재무구조가 개선 모드로 돌아서긴 했다. 여기에 3분기 중 두산밥캣 상장이 성공하면 조달한 자금을 차입금 상환에 쓸 계획이어서 11조원 상당의 차입금 규모도 8조원 상당으로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두산이 2007년 약 5조원(49억달러)에 인수한 두산밥캣은 북미시장에서 굴삭기 등 소형 건설장비 부문 시장점유율 1위 기업이다.

인수 이듬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2년간 1조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하며 인수합병(M&A) 실패작이란 얘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북미지역 건설 경기가 살아나면서 실적이 회복세를 타고 있다. 올 하반기 국내 상장시장에서 두산밥캣은 대어로 꼽히고 있다. 16일 한국거래소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예비심사도 통과했다. 상장되면 시총 5조원 규모의 대형 상장사로 자리를 잡을 전망이다.

은둔형 CEO 이미지 털어낼까

두산그룹의 하반기 주요 현안으로는 두산밥캣의 상장과 차입금 상환, 면세점(동대문 두타면세점) 그랜드 오픈(10월 예상), 연료전지장비생산 로봇 등 미래 먹거리 사업 추진 등이 꼽히고 있다. 4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던 실적이 올 상반기 턴어라운드(실적 및 주가 반등)를 한 게 상당한 힘이 되고 있다. 박 회장 취임 후 첫 분기 실적인 올 2분기 실적이 지난해 2분기보다 개선된 것도 호재다.

몇 년 동안 계속된 구조조정 및 재무개선 노력과 신임 박 회장에 대한 기대가 시너지 효과를 낸 것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이 반짝 성과일지 아닐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것 같다.
두산그룹은 올 2분기 4조2514억원의 매출과 306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3.2%나 증가했다. 상반기 영업이익은 5579억원으로 작년 상반기 대비 51%나 늘었다.

가장 큰 실적 개선을 보인 계열사는 두산인프라코어다. 영업이익이 1735억원으로 전년 동기 765억원 대비 126.9% 증가했다. 당기순이익은 2237억원으로 전년 동기 95억원 대비 무려 2246.5%가 늘어났다. 지주회사인 ㈜두산의 자체 실적도 개선됐다. 영업이익이 514억원으로 전년 동기(402억원) 대비 26.9% 늘었다. 두산건설도 영업이익이 103억원으로 전년 동기(17억원) 대비 515.6%나 증가했다.

두산그룹 전체 당기순이익은 2012년 2015억원, 2013년 1302억원, 2014년 332억원으로 계속 감소하다가 2015년엔 1조7008억원 적자로 최악을 기록했다[그래픽 참조]. 중국 건설경기 악화와 글로벌 경기 침체 탓으로 지난해까지 주요 계열사들이 적자를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두산가家는 지난 3월 28일 4세 박정원 회장을 회장직에 올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나선 것이다.  

박 회장은 취임 5개월 동안 ‘공격 경영과 현장 중시 경영’을 내세우며 ‘정중동靜中動’의 움직임을 보여 왔다. 재무구조와 실적 개선, 신사업 구축 등에 힘쓰는 한편 현장 곳곳을 다니며 120년간 이어 내려온 두산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다. 8월 1일 창립 120주년 기념사를 통해 그 같은 의지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最古 기업인 두산의 역사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또 한 번의 힘찬 도약을 위해 힘을 모으자”고 역설했다.

박 회장은 “올 상반기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거뒀고, 재무구조 개선 작업도 사실상 마무리 지어 한층 단단해진 기반을 마련했다”며 “하반기에는 영업성과를 높이는데 주력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120년 역사에서 이보다 더한 고비도 수없이 많았으나 두산은 계속 성장하고 세계로 무대를 넓혔다. 이것이 두산의 저력”이라고 강조했다.

추락한 그룹 이미지 개선도 숙제

평소 조용하며 격식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회장 앞에는 아직도 숱한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실적과 재무구조 개선이 무엇보다 급하지만 추락한 그룹 이미지 개선, 미래 먹거리 창출, 오너 4세간의 ‘사촌경영 안정’ 등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들이다. 구조조정 중 불거진 악재 수습도 시급한 일이다.

20대 신입사원 명퇴 논란(두산인프라코어)과 면벽 근무 논란(두산모트롤)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연말, 연초에 생긴 이들 사건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고 그룹 이미지까지 훼손시켰다. 자신들이 평소 내세우던 ‘사람이 미래’라는 슬로건마저 무색하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큰 손실인가. 사업에 관한 한 결정적인 승부에 강하다는 박 회장의 솜씨가 기대되는 대목이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i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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