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설립한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

▲ 2014한중창조문화대전 ‘동방지혜東方智慧’ 발대식에 참석한 조창걸 회장이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사진=뉴시스]
조창걸(77) 한샘 대표이사 명예회장은 한국 재계에서 좀 독특한 기업인으로 통한다. 좀체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분명한 자기 목소리와 철학을 갖고 사업을 하고 그것이 주변에 울림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판版 브루킹스 연구소’를 표방하며 최근 출범한 공익연구재단 ‘여시재與時齋(Future Consensus Institute)’는 사업가 조창걸의 그 같은 면모를 가장 결정적으로 보여준 케이스다.

지난 8월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여시재란 싱크탱크 출범을 알리는 행사가 있었다.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의 46년 사업 역정이 또 다른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연구재단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소위 ‘물주物主’인 자신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여시재 발족을 위해 지난해 3월 4400억원 상당(당시 한샘 보유 주식의 절반인 260만주 평가액)의 통 큰 기부를 약속하고 이를 이행해 오면서도 이사 등 모든 직함을 갖지 않았다.

대개 이럴 경우 가슴에 꽃을 달고 상석上席에 앉아 있기 마련인 우리네 풍속도를 감안하면 특이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기업 오너들이 이런저런 기부를 많이 하지만 조 회장의 기부는 이처럼 뭔가 다르다. 그가 31세 때인 1970년 한샘을 창업하면서부터 줄곧 가슴에 ‘한국의 대표적 싱크탱크 운영’이란 꿈을 품고 살아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도무지 여시재란 곳이 무엇 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주목을 받는 걸까. ‘여시재’란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란 뜻을 갖고 있다. 서양의 물질문명과 동양의 정신문명이 조화된 신문명 사회를 추구하는 독자적인 민간연구소를 표방하고 출범했다. 국가 차원의 미래 전략을 연구하겠다는 포부 아래 지난 연말 비영리 공익법인으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정부나 특정 기업, 재단 주인, 학교 등의 눈치를 봐가며 연구 결과물을 내놓기 일쑤인 많은 연구기관과는 차별화하겠다는 생각이다. 뭔가 거창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헌재(72) 전 경제부총리의 출사표를 들어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와 닿는다. “오늘날 한국의 모습에서 19세기 구한말이 연상된다. 한국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세계를 설득해 변화의 주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도록 하겠다.” 여시재는 앞으로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질서 ▲통일한국 ▲도시의 시대 등 크게 3개 분야에 걸쳐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조 회장도 기부에 즈음해 “한일합병, 남북 분단, 한국전쟁 등은 우리가 미래 변화를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도 하지 못해 일어난 비극”이라며 “한국은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이들과 함께, 그리고 이들을 조정하면서 미래를 준비해야 하므로 싱크탱크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국내의 쟁쟁한 인재들이 퇴직하면 로펌이나 기업 등으로 가서 소시민화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여시재 창립을 준비해 나갔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여시재에 참여한 멤버들 중 보수적인 성향을 띤 인물들이 많아 요즘처럼 이념 갈등이 심한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제대로 짚어낼 수 있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조 회장은 경영에서도 독특한 관점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제시하며 한샘을 국내 1위의 종합인테리어업체로 키워놓았다. 대표적인 게 20년 전부터 미국 굴지의 다국적 가구업체 이케아의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사업전략을 짜고 그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는 사실이다. 실제 이케아가 한국 영업에 나섰던 지난해 조 회장은 미국 뉴욕으로 전 임원과 주요 팀장들을 불러 모아 현지 전략회의를 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비록 기업 규모는 다르지만 이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임직원들을 불러 놓고 신경영 선언을 한 것에 비유된다.

평생의 꿈 ‘여시재’ 출범     

이같은 준비 덕분에 한샘은 2014년 말 이케아가 한국에 진출한 후에도 성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그래픽 참조). 2013년 1조69억원으로 1조원을 돌파한 한샘 매출은 2014년 1조3250억원, 2015년 1조7105억원으로 늘어났다. 이케아와 직접 경쟁했던 2015년 매출이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29% 상당 증가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런 가운데 올 상반기 매출(8832억원) 증가율이 작년 상반기 대비 약 10%로 둔화돼 올 하반기 실적이 주목되고 있긴 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조 회장은 한샘을 한국의 3대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방배동 한샘 본사에서 “2020년까지 대한민국 3대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그리고 한샘”이라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46년 동안 종합 인테리어업체로 성장해오면서 키워낸 한샘의 ‘브랜드 파워’를 더욱 강화하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 주방 디자인에서 공간 디자인으로, 나아가 라이프 디자인을 설계하는 3단계 디자인 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샘은 주방가구 등 가구 단품을 파는 데 머물지 않고 거실ㆍ침실 등 고객이 원하는 공간의 디자인 자체를 통째로 판매하는 전략으로 성공했다. 종국에는 도시 디자인으로 승부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조 회장이 재계 인사들보다 건축가, 미술가 등과 더 많이 교류해 온 것도 이런 비전 추구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조 회장의 남다른 점은 또 있다. 20년이 넘도록 전문경영인 최양하(67) 대표이사 회장과 CEO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며 역할 분담을 해 왔다는 사실이다. 한샘 경쟁력의 원천이 오너십과 전문경영의 조화에 있다는 얘기다. 최 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오너 일가와 분명한 역할분담이 있었다. 한샘의 미래를 위한 일은 조 회장이 맡고, 나는 현업을 통해 돈을 벌고 경쟁력을 키우며 회사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맡았다. 역할 분담이 잘 돼 한샘이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조 회장은 언론 등에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고 사업 등을 통해서만 자신의 면모를 나타내는 스타일의 소유자다. 굳이 말하자면 ‘은둔형 오너 CEO’에 속한다. 심지어 2012년 미래의 2세 승계자로 여겨졌던 외아들 사망 사실마저도 2~3년 후에 주위가 알도록 했을 정도다.

46년 사업 역정 새 결실

현재 장년의 세 딸을 두고 있는데 그들의 한샘 지분율은 각각 1% 안팎(0.72~1.32%)이다. 지난해 가을 주식을 물려받은 두 손자(지분율 각 0.16%)도 아직 10대여서 23세 승계 움직임은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재계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한샘이 조 회장과 전문경영인이 연합경영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이런 가운데 전문경영인들이 상당 정도 지분을 가진 게 주목된다. 최양하 대표이사 회장이 4.38%, 강승수(50) 부회장이 0.65%, 이영식(57) 사장이 0.25% 등을 보유하고 있다.

황해도 출생으로 대광고와 서울대 건축공학과를 나온 그가 인생 후반부에 40이 넘은 외아들을 잃은 충격이 컸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때문인지 사업 반세기를 앞두고 평생 숙원이었던 싱크탱크 ‘여시재’를 세상에 보란 듯이 출범시킨 그를 생각하면 왠지 숙연한 느낌이 든다.
성태원 더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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