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설국열차 ❻

▲ 메이슨 총리는 “모두의 생존공간을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질서뿐”이라고 말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설국열차’의 지도부는 윌포드와 메이슨 총리로 대표된다. 지도부는 총부리를 앞세운 근위병들을 꼬리칸으로 보내 기차의 부품으로 사용할 ‘가장 작은 아이’를 차출한다. 체구가 가장 작은 아이를 둔 타냐와 앤드류는 당연히 극렬하게 저항한다. 그래 봤자 타냐가 할 수 있는 건 발버둥뿐이고, 앤드류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근위병들을 향해 신고 있던 구두짝을 투척하는 것뿐이다. 최루탄을 발사하는 장갑차를 향해 고작 욕설과 돌멩이로 저항하는 꼴이지만 구두짝 투척사건은 곧바로 ‘폭동’으로 명명된다.

아들을 빼앗기고 낡은 구두짝을 투척한 앤드류는 꼬리칸 승객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설국열차 밖으로 7분 동안 맨살의 팔을 내놓는 생체실험형 처벌을 받는다.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를 노린 지도부의 처사다. 집행관은 일제시대 생체실험으로 악명 높은 731부대의 일본군 헌병을 연상시키는 아시안이 담당한다. 앤드류의 팔이 완전히 냉동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7분. 그동안 메이슨 총리는 직접 나서서 짧고 강렬한 ‘신발의 철학’을 강론한다. “이것은 신발이 아니라 사이즈 10짜리 무질서이며 혼란이며 죽음이다.” 앤드류의 낡은 구두를 치켜든 메이슨 총리는 “모두의 생존공간을 지켜주는 것은 오로지 질서뿐이며 따라서 무질서는 곧 죽음”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인다.

메이슨 총리가 말하는 질서란 ‘신발은 발에 신는 것이며 모자는 머리에 쓰는 것’이다. 발에 해당하는 꼬리칸 승객이 머리에 해당하는 앞칸의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넘보는 것은 머리에 신발을 얹어 놓는 꼴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곧 혼란과 죽음이다. 꼬리칸 승객들은 찍소리 말고 본래 정해진 자신의 자리인 꼬리칸에 머물며 머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설국열차라는 생존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질서가 필수적이며, 질서란 각자에게 주어진 제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얼핏 공자의 대표적인 ‘정명正名’ 사상을 연상케 하는 강론이다. 정명은 때때로 신분질서를 지칭하는 이름과 그 자리에 걸맞은 각 주체의 역할과 행위가 실현돼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의도적인 오역誤譯일지도 모르나 공자가 말한 정명은 그런 뜻이 아니다. 신하가 신하답기 위해서는 충忠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자식이 자식답게 되기 위해서는 효孝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결국 정명사상의 요체는 제자리 지키기가 아닌 ‘다움’의 사상인 거다.

▲ 아이를 빼앗긴 꼬리칸의 앤드류가 할 수 있는 건 구두짝을 투척하는 것뿐이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메이슨 총리의 일장훈시는 ‘정명’의 핵심인 ‘다움’을 교묘하게 삭제한 채 ‘제자리 지키기’라는 껍데기만 남긴 궤변에 불과하다. ‘다움’이란 어느 한 자리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리에 요구되는 것이다. 질서가 공동체 유지의 핵심이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각자의 제자리에서 자기‘답게’ 행동하는 것이지 단순히 ‘제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다고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선장과 선원들은 갑판 아래에서 공포에 질린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했다. ‘제자리’를 지키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승객답게’ 선장의 지시에 따랐지만 선장은 선장답지 못하게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그것이 세월호의 비극이다. 선장과 선원들은 그 이름과 자리에 걸맞은 그들다운 역할과 행위를 하지 않았다.

유난히 ‘국민다움’이 강조되는 시대다. 하지만 관료와 정치인, 언론인, 기업인 등의 ‘그들답지 못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지도층이 지도층답지 못하다고 앤드류처럼 구두짝 하나라도 투척하면 가혹한 응징이 기다린다. 국민이 아무리 국민다워도 지도층이 지도층답지 않으면 공동체는 유지되기 어렵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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