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삼성전자 덕 봤나

시가총액 규모 1위인 삼성전자는 우리나라 증시의 대장주다. 당연히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도 가장 클 수밖에 없다. 최근 삼성전자 주식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투자자들은 지루한 박스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의 주가와 코스피지수는 같은 궤적을 그리지 않았다. 왜일까.

▲ 증권가는 "삼성전자 사상 최고치 경신에 환호를 보낼 수만은 없다"고 꼬집고 있다.[사진=뉴시스]

8월 19일, 30대 직장인 이주현씨는 삼성전자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는 소식에 들떴다. 주가 상승의 기대감 때문이다. 박스권에 갇혀있던 증시를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끌어줄 것이라 믿었다. 더군다나 이씨가 투자한 종목은 삼성전자와 같은 IT 업계. 하지만 주식계좌를 열어본 그는 크게 실망했다. 이씨의 주식이 형편없이 깨져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주식 시장의 빅이슈는 삼성전자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100만원선에서 움직이던 이 회사 주가는 어느덧 170만원 턱밑까지 올랐다. 8월 12일부터 상승세를 탄 삼성전자 주가는 18일 ‘마의 벽’으로 불리던 160만원을 돌파하면서 최고가 경신 랠리를 시작했다. 삼성전자 주가의 역대 최고가는 2013년 1월 3일 장중 기록한 158만4000원이다. 이후 최고가 23일 168만7000원을 기록하고는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 주가상승의 원동력은 실적 개선이다. 2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2% 증가한 8조1400억원. 이 회사가 8조원대 영업이익을 기록한 것은 2014년 1분기(8조4900억원) 이후 무려 9분기 만이다.

모든 사업 부문의 실적이 개선됐으며, 특히 반도체와 무선 사업부가 좋은 성적을 거뒀다. 4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무선사업부는 ‘갤럭시S7’ 판매 호조와 중저가 스마트폰의 수익 안정성이 강화되면서 마진율이 크게 높아졌다. 2조60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반도체 부문은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가 늘면서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 3분기 전망도 밝다. 최근 출시된 ‘갤럭시 노트7’이 흥행몰이에 성공하면서다.

 
국내 증시의 ‘대장주’인 삼성전자가 역사적인 상승세를 기록하면서 코스피도 덩달아 호조를 띠었다. 18일 코스피지수는 무려 11.72포인트가 오르며 연중 최고치인 2055선에 안착했다. 삼성전자의 앞으로의 전망도 밝으니, 이씨와 같은 투자자들은 박스권을 돌파할 거란 기대감을 키웠다.

그런데 증권가의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삼성전자의 최고가 랠리를 마냥 반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과거에도 코스피지수와 삼성전자가 서로 엇갈린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스피지수가 1000포인트 저항선에 갇혀 있던 1990~2005년 삼성전자 주가는 30배 넘게 폭등했다. 반대로 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2000선을 뚫었던 2007년 삼성전자 주가는 오히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후 2012년부터 코스피가 지루한 박스권에 갇혀 있던 지난 5년간 삼성전자 주가는 250%나 급등하면서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증시와 삼성전자의 주가가 엇갈린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삼성전자에만 수급이 몰리고 하락 종목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코스피의 상승 동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투자자들은 대장주가 주도하는 시장왜곡을 경계해야 한다.” 삼성전자로의 쏠림이 심화되면서 하락종목수가 많아졌다는 주장이다. 이 애널리스트는 그 증거로 등락비율(ADR)의 하락을 꼽았다.

‘마의 160만원’을 깨다

ADR이란 상승종목에서 하락종목을 단순하게 나눈 수치다. 가령 ADR이 100%보다 낮다는 것은 오른 종목보다 내린 종목이 더 많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삼성전자 주가가 160만원을 돌파한 18일, ADR 지수는 92.94%로 전 거래일보다 0.89%포인트 하락했다. 주가가 오른 종목은 329개였지만, 반대로 하락한 종목은 474개나 됐다. 하락종목 수만 따지면 지난 3일 556개 이후 가장 많았다. 심지어 24일에는 전체 896개 종목 중 647개가 하락했다. 오른 종목은 187개 뿐이었다.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을 살펴보면 요즘 주식시장의 쏠림현상이 더 뚜렷해진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최근 4주간 코스피 시장에서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은 한 주에 평균 17개로 전체 종목 중 1.8%에 그쳤다. 이는 2005년 대세 상승 초입기의 10%대나 지난해 단기 상승 구간의 5%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지수는 오르는데, 주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투자자는 보기 어려운 이유다.

실제로 ‘삼성전자 효과’를 걷어 내면 시장을 상승무드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코스피의 전체 시가총액은 올해 초 1214조원에서 24일 1303조원으로 7.2% 불어났다. 그러나 이 기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빼고 보면 3.1% 증가하는 데 그친다. 코스피 상승폭의 절반 이상은 오롯이 삼성전자가 끌어올렸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8월부터 금융당국은 30분 거래시간을 연장했다. 몇 년째 4조원대로 정체된 일평균 거래대금을 올리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여전히 24일 기준 거래대금은 4조1442억원에 불과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의 독주는 주식 시장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펀드 시장도 혼란에 빠졌다. 삼성전자에 따라 펀드 운용 수익률이 좌우되고 있어서다. 펀드매니저들이 삼성전자 편입 비중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편입해놓은 다른 종목을 파는 식이다. 시장이 잘나갈 땐 신규유입 자금으로 삼성전자를 매수하면 되지만, 지금처럼 펀드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는 삼성전자를 사기 위해 기존 보유종목들을 팔아야 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23일 기준 국내 주식형펀드에서 17거래일 연속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삼성전자에만 쏠린 투자자의 눈

결국 지금의 지수 상승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손뼉을 치고만 있을 일은 아니라는 거다. 동시에 외국인ㆍ기관 투자자들이 자칫 삼성전자 차익실현에 나설 경우, 코스피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경민 애널리스트는 “과거에도 삼성전자의 독주로 하락종목이 늘어갈 때 증시는 하락세를 탔다”며 “삼성전자 독주의 모순을 경계해야 할 때”라고 꼬집었다. 대장주가 잘나가는 데도 시장이 코스피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이유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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