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희의 살돈시대 (끝)

▲ 생활습관을 바꾸는 게 다이어트의 지름길이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주위에선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를 날씬하게 만들어 데려가야 할 김 실장이 며칠째 보이지 않았다. 거의 매일 전화를 걸어 체중 증가를 점검하던 회사 대표는 체중 감량 기간에는 전화조차 없다. 심지어 살을 빼는 특효약이라면서 광고를 했던 자신들의 발명품 ‘팻-bye’는 아예 나눠주지도 않았다. 산속에 덩그러니 위치한 합숙소에는 우리와 박 강사,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의문들만 남았다.

하지만 이런 의문들이 풀리는 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느 날 인터넷을 들여다보던 혜진이의 입에서 “어머나 이게 뭐야?”라는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왔다. 우르르 몰려들어 작은 PC화면을 들여다보던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날씬한 모습으로 환호하며 걷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혜진이는 모든 것을 눈치챈 듯 울부짖었다. “우리가 속았다. 이 바보들아. 흑흑.”  밖에서 우리의 행동을 문틈으로 지켜보던  박 강사 역시 다리가 풀려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화면 속의 날씬한 우리는 두달 전 오디션에서 연기를 펼치던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문제는 다음 화면이었다. 마약 성분을 감량제라고 속여 수백억원 어치를 팔고 불과 며칠 사이에 해외로 내뺀 회사 대표와 김 실장 등의 얼굴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동시에 이들에게 속아 행방이 묘연한 여성 5명과 다이어트 강사를 찾고 있다는 자막이 화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빠르게 지나갔다.

우리는 비명을 지르며 어두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최전방에 위치한 강원도 산골짜기는 공포에 질린 우리들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우리는 박 강사를 소리쳐 찾기 시작했으며 잠시 후 어둠 속 공중에 매달려 있는 박 강사의 모습을 발견했다.

자살을 시도한 그를 우리는 흐느끼며 끌어내렸다. 의식이 없는 그의 주머니에서 우리의 체중을 빼주기로 하고 받은 1억원짜리 계약서와 무수히 많은 카드빚 독촉장이 쏟아져 나왔다. 평소에 보고 싶다던 쌍둥이들에게 주려 했을까? 바닥에는 한 움큼의 치킨 쿠폰이 뒹굴고 있었다.

말할 수 없이 무섭고 비참한 공포가 몰려왔다. 그런데도 혈당이 떨어진 우리는 배가 고팠다. 우리는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결심했다. 우리 다섯은 박 강사를 버려둔 채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합숙소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죽어가는 박 강사의 마지막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처음으로 돼지가 아닌 수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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