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박찬구 티씨케이텍스타일 회장

박찬구(53) 티씨케이텍스타일 회장은 5년 간 모회사인 도레이케미칼 대표를 지냈다. 그는 남들이 못 만드는 1등 제품을 만들어 유지보수 같은 서비스를 끼워파는 것이 국내 제조업체의 살길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 고객을 제품 및 서비스에 묶어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융합이다.

▲ 박찬구 티씨케이텍스타일 회장은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조직이 좋은 조직이고, 이런 조직이 있어야 경영도 성공한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최고의 경쟁력은 남들이 못 만드는 고유한 제품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려면 연구개발(R&D)을 잘해야죠. 우리 기업이 선진국 기업보다 R&D 투자가 적은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효과적인 집행이 돼야 합니다.” 박찬구 티씨케이텍스타일 회장은 “제조업체들이 혁신적이고 동시에 회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품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근본을 바꾸는 제품을 개발해야죠.”

✚ 제조업의 서진西進 현상으로 우리나라 제조업의 쇠락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얼마 전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ㆍ태평양 담당 국장이 ‘제조업에 기반을 둔 사업 서비스(business service sector based on manufaturing)’를 성장률 유지의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만, 제조업 CEO로서 어떻게 보시나요?
“동감입니다. 엘리베이터 메이커가 유지보수 서비스를 같이 파는 모델이죠. 애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이팟ㆍ아이폰 팔면서 음악을 같이 파는 것도 이 모델이에요. 제조업체가 서비스를 같이 팔려면 제품 자체가 최고 수준이라야 합니다. 1등이 못 되면 물건도 못 팔고 서비스도 끼워팔기 어렵죠. 고객은 그저 그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유지보수 같은 서비스까지 기대하지 않아요. 최고의 제품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팔아야 고객이 제품 및 서비스에 묶이게 되죠. 제조회사는 제품과 브랜드를 함께 팔기도 합니다. ‘인텔 인사이드’나 고어텍스 라벨을 최종 제품에 붙이는 것이 이런 예죠.”

✚ 일부에서 우리나라는 서비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금융을 빼면 경쟁력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몸으로 하는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빠르고 경쟁력도 최고 수준입니다.”

박 회장은 티씨케이텍스타일의 모기업인 화학소재 전문기업 도레이케미칼 대표를 지냈다. 그는 대학을 마친 후 이 회사의 전신인 제일합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었다. 미국 유학을 떠나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를 한 그는 귀국해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다 웅진그룹이 이 회사를 인수할 때 컨설턴트로 참여한다. 그 후 웅진케미칼로 변신한 이 회사에 영입돼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냈다.

올해 초 그는 이 첫 직장에서 입사 30년을 맞았다. “근속 30년은 아니라서 근속 기념품도 근속 휴가도 받지 못했습니다(웃음). 사람 간의 인연뿐 아니라 사람과 조직 간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아요. 첫 직장이 대주주가 바뀌는 어려운 상황을 겪을 때 재입사해 안정을 찾는 과정에서 나름의 역할을 한 셈이죠. Mission Complete!(임무 끝)랄까요?”

✚ CEO 리더십은 다른 리더십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요?
“기업 경영은 때로는 합의(consensus)가 아니라 확신(conviction)입니다. 국가 경영은 확신이 서도 합의를 이루려 양보하기도 하고 차선책을 선택하기도 하죠. CEO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비전을 제시할 수 있고 확신이 있으면 직설적으로 말해 ‘철권 통치’를 할 수 있어요. 경영은 민주주의 하는 거 아닙니다. 물론 양날의 칼이기는 하죠.”

▲ 박찬구 회장은 “한국이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의 영향으로 제조업 침체와 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사장이 바라는 직원상은 어떤 건가요?
“드라마 미생에서 신입사원 장백기가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내가 이 따위 일이나 하려고 회사 들어왔나.’ 그런데 이따위 일이란 없어요. 작은 일, 사소한 업무도 큰 일의 일부죠. 복사 같은 소소한 일에서도 배울 게 있습니다. 기업의 모든 역량은 직원에게 있지 회사에 있는 거 아닙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교육을 좋아합니다. 바쁜 일, 지금 중요한 일에 치이어 앞으로 써먹을 지식을 쌓는 일을 소홀히 하지 마세요. 회사에서 새 프로젝트나 컨설팅이 시작된다면 손 번쩍 들고 끼세요. 성장의 기회입니다. 생산ㆍ영업의 현장 경험이 중요합니다. 재벌 2세가 기획실장을 맡는 건 드라마 속 이야기입니다. CEO로서 저의 콤플렉스도 현장 출신이 아니라는 거예요.”

✚ 나름의 경영론을 소개해 주시죠.
“좋은 조직이 성공적인 경영의 토대입니다. 좋은 조직이란 솔직하게 현실을 직시하는 조직이에요. 잭 웰치가 말하는 candor죠. 용기라고 번역했는데 솔직함이라고 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봅니다. 회사 상황이 좋을 땐 좋은 상황이다, 일을 잘하면 잘한다, 못하면 못한다, 문제가 생기면 문제가 있다고 즉각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는 조직이 좋은 조직입니다.”

성공하는 사람은 교육 좋아해

✚ 글로벌화가 필수인 시대입니다. 글로벌화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글로벌화는 글로벌 스탠더드 따르기가 아닙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허상이고, 미국 위주의 관점이에요. 진정한 글로벌화는 나의 관점을 버리고 그들의 관점, 해당 국가나 지역의 입장에 서는 겁니다. 글로벌 지수는 시장을 보는 관점과 통합니다. 내수 시장만 생각하고 시장이 없다고 말한다면 글로벌 지수가 낮은 거예요.”

✚ 이제 일본 기업의 CEO입니다. 한국이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나요?
“가능성이 있고, 중국의 영향으로 제조업 침체와 같이 올 겁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원인이죠. 우리 제조업체가 물건을 싸게 만드는 건 중국 기업을 당할 수 없습니다. 품질 차별화 정도는 큰 격차가 없는데 가격 격차는 압도적이죠. 어떤 이유에서든 중국이 물건을 만들지 않는 틈새 시장도 있겠지만.”

✚ 대주주 교체를 직접 겪었습니다. 피인수 기업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일해야 하나요?
“피인수 기업 사람들은 인수 주체가 점령군 행세를 하지 않아도 저항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회사가 나아갈 방향은 대주주가 정하는 겁니다. 새 주인이 전략적 투자자든, 재무적 투자자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러고 나서 바꿀 게 있으면 얘기를 해야죠.”

✚ 컨설턴트 출신이신데 컨설팅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요?
“컨설턴트를 업자가 아니라 파트너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컨설턴트가 한 일에 대해 잘못을 지적하고 평가하는 게 컨설팅의 목적이 아닙니다. 평론가 말고 직접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가 돼야죠.”

✚ 와튼 스쿨에서 얻은 게 뭔가요?
“생공돌이가 경영 전반을 훑고 나니 이제 회사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한참 힘들었을 때 한 교수가 그러더군요. 공부 잘하는 동료와 자신을 비교하지 마라. 당신이 다른 학생들에게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해 학교가 입학을 허가한 것이다.”

✚ 젊은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주고 싶나요?
“우선 10년, 20년 후 비전을 세우기보다 5년 후 전략을 짜세요. 책상 머리에 ‘미래의 대통령 아무개’라고 써 붙여 대통령 된 사람은 고 김영삼 대통령밖에 없습니다. 목표 지점에 점을 찍고 직선거리로 달려가는 거 생각만큼 잘 안 됩니다. 공연히 좌절할 수도 있어요. 둘째 큰돈을 벌거나 신분 상승을 이뤄 팔자 고칠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하면서 즐거울 일이 뭔지, 진짜 놀고 싶은 물이 어딘지 탐색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그냥 한번 살아 봐요.”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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