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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의 이름이 천하에 들렸다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29
[206호] 2016년 09월 13일 (화) 08:50:44
이남석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이순신은 문장가였다. 모두가 슬퍼하는 정情과 분개하는 의義를 표현하는 역량과 수완이 대단했다. 한편에선 제갈공명의 출사표 또는 이영백의 진정표에 이순신의 글을 비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이 문장으로 자부하는 일은 그의 일생에 없었다. 도리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다른 사람들의 글이 쏟아졌다.

   
 
임진년 이래 7년 전쟁 동안 이순신에게 지우와 은애를 받은 제장들과 혜택을 입은 군민들이 통영, 여수, 남해를 비롯하여 곳곳마다 사당을 짓고 비를 세우고 위패를 모시고 영정을 받들었다. 후인이 시문을 지어 찬송한 일이 많아서 모두 여기에다 기재할 수가 없으므로 대략 몇 편만을 소개하려 한다.

悼李將軍 — 봉상정奉常正 차천로車天輅  宇宙無雙將 威聲日東
鯨談笑外 熊虎指揮中
此老眞無敵 餘人盡發蒙
誰能鐫美石 偉績動昭瀜

우주에 둘도 없는 장수이니 위엄은 일본을 두렵게 했네.
왜적은 담소거리에 지나지 않아 웅호 같은 군사 지휘하시네.
이 어른이 참으로 적이 없으니 나머지는 몽매함을 깨쳤을 뿐.
누가 아름다운 돌에 새길 것인가 위대한 공적이 소융(제왕의 예지)을 움직였네.

비문碑文 — 영의정 잠곡潛谷 김육金堉 
公料敵如神 卒以取勝 蔽遮江淮 沮其勢 與巡遠同 鞠躬盡 死而後已 與武侯同 功蓋一世 名聞四海 嗚呼偉哉
공은 적을 헤아리기를 귀신과 같이 하여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다. 바다를 덮으며 쳐들어오는 왜적의 형세를 막은 것은 장순이나 허원과 같고, 온 힘을 다해 싸우다가 죽은 뒤에야 그만둔 것은 제갈 무후와도 같다. 공은 온 세상을 덮고 이름은 천하에 들렸다. 아, 위대하다!

▲ 이순신은 잘 때도 허리띠를 풀지 않았고, 여색을 멀리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발跋 — 좌의정 문충공文忠公 소재疎齋 이이명李命 
露梁之役 秀吉新死 諸賊思歸 無鬪志矣 以公百戰之威 掃餘寇如拉朽 何不周防自惜 終以身殉也 世言公自度功高而身危 當矢石不避 嗚呼 或其然乎 蓋公七年戰爭 奇功獨多 然之黨讒而朝議之 一身幾死於桁楊 雖愚人亦能知其不免矣 與其掩昧罹禍 無寧明白立 此敵一退 又無可死之所矣 以公之明 早自審定歟 公之一死報國 固素蓄積 死生禍福 已付之於天

풍신수길이 막 죽고 모든 적이 돌아갈 생각을 할 때 이순신은 백전의 위엄으로 남은 적을 썩은 가지 꺾듯 쓸어 버렸다. 하지만 어찌 두루 방비해서 스스로를 아끼지 않고 끝내 몸이 죽음에 이르렀는가. 세상이 말하기를 공적이 높으면 몸이 위태로워질 것을 스스로 헤아려 시석을 맞으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하니 아아, 혹시 그러한가! … 대개 공이 7년 전쟁에 기이한 공을 홀로 많이 세웠지만 … 붕당의 무리들이 참소하여 조정의 의논이 그를 밀쳐… 일신이 형틀에서 죽게 되었을 때 비록 우매한 사람들까지도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으로만 알았다. 어두운 데서 화를 당하는 건 밝은 데서 목숨을 버리는 것만 못하고 더구나 이 적들이 물러가면 다시 죽을 곳이 없을 것이라. 공의 명민함으로 일찍이 스스로 조사하여 정하였음이라… 공이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한 것은 진실로 평생 쌓아온 것이요. 생사회복을 하늘에 맡김이라….

문文  —  영의정 문정공文貞公 오윤겸吳允謙
公之在閑山也 隱然有虎豹之勢 敵人不敢動 公之去閑山也 將士墮心 保障一毁 覆敗隨之 其去而復來也 承陷沒之後 板蕩之餘 雖使古之良將 當之 實無用武之地而 能收拾補綴 不旬月而大挫方張之寇 及露梁之戰 躬冒凶鋒 誓死先登 破賊虜之膽 丸中於身 餘威所及 諸將戮力 卒成以死走生之棲 軍情向背 唯公一人而已 思九原而不作 悶百身而難贖

공이 한산도에 있을 때는 은연중 호랑이 같은 형세가 있어 적들이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 그런데 공이 한산도를 떠나니 장졸이 낙심하고 보장이 일시에 헐려 패망이 따랐다. 다시 와서 함몰되고 혼란한 뒤를 이어받으니 옛날의 명장이라고 해도 실로 능력을 펼칠 방법이 없었지만 능히 수습하고 보철하여 한 달도 못 되어 한창 일어난 적을 크게 꺾었다. 노량의 전투에서는 몸소 흉한 칼날을 무릅쓰고 죽을 각오로 앞장서서 적의 간담을 깨뜨렸다. 탄환을 몸에 맞았어도 남은 위엄이 미쳐 죽은 몸으로 살아 있는 적을 물리치는 일을 이루었다.

군정의 향배는 오직 공 한 사람에게 달렸었다. 황천에서 다시 일으켜 올 수 없고 100명이라도 대신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순신을 추모하는 승려들

노량의 대승첩이 있은 뒤에 전쟁은 끝이 났다. 전라도 일대에 있는 각 사찰의 승려들이 이순신을 위하여 재를 올리지 아니한 절이 없었다. 그중에도 자운이라는 화상은 일찍부터 승장僧將이 되어 순신의 진중에 오래 있었던 이였다.

순신이 죽은 뒤 각 방면을 돌아다니며 백미 600석을 모아 노량에 와서 수륙제水陸祭를 성대히 지냈는데 삼혜, 의능, 처영, 덕수, 수인의 무리들이 모여들어 경을 읽고 염불을 하였다. 자운은 순천 왜교에 초묘를 짓고 순신의 모습을 손수 그려 봉안하고 일생에 경을 독송하였다. 자운은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었다.

또한 옥동玉洞이라는 중은 순신의 군중에 오래 있어서 순신의 인격을 앙모하는 사람이었다. 순신이 죽은 뒤에 여수 충민사로 와서 일생토록 돌아가지 아니하고 사당 청소를 했다. 산인山人으로서 감화를 받은 보답을 한 것이다. 이순신의 문장저술은 모두가 그 슬퍼하는 정情과 분개하는 의意를 바로 문사에 표현하는 역량과 수완이 있어서 제갈공명의 「출사표」 또는 이영백의 「진정표陳情表」와 견줄만한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의 일생에서 문장으로 자부하는 일은 없었다.

또한 이순신은 어릴 때부터 산을 밀치고 바다를 뛰어넘는 기운을 품어서 거적巨賊 임꺽정林巨正을 한양 큰길에서 굴복시켜 권력과 세력을 가진 간사한 신하들의 기세를 꺾었다.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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