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중식이 중식이밴드 보컬

중식이밴드 보컬 중식이(32ㆍ본명 정중식)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일부 가사의 문제점을 인정했지만 여혐 밴드 논란에 대해서는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여혐보다 1%의 부 독점으로 인한 양극화가 핫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그와 만났다.

▲ 중식이밴드의 보컬 중식이는 “지금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이 사회의 1%가 부의 99%를 갖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흙수저 밴드’. 중식이밴드에 붙은 별명이다. 슈퍼스타K에 출연해 부른 ‘아기를 낳고 싶다니’ 같은 노래는 출산을 포기한 청년 세대를 대변하는 듯했다. 지난봄 그동안 부른 노래의 일부 성차별적인 가사로 인해 이들은 ‘여혐 밴드’ 논란에 휩싸였다. 4ㆍ13 총선을 앞두고 정의당과 공식 테마송 협약을 맺은 직후였다. 8월 22일 만난 중식이밴드의 보컬 중식이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성 차별 혐의를 받은 ‘야동을 보다가’를 그는 자신의 대표곡으로 꼽았다. 서울 연남동 16㎡(약 5평) 규모 지하 합주실(연습실)에서 그와 마주앉았다.

✚ 여혐 밴드라는 사회 일각의 ‘규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요즘 페미니스트 눈으로 보면 전체의 25%가 그렇게 해석될 수 있는 노래입니다. 여성 혐오라기보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내용이죠. 이래저래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 좀 했는데, 저는 대한민국 남자들이 다 페미니즘 공부를 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남자로서의 과중한 짐도 덜어야 돼요.”

이들의 개성적인 노래에 등장하는 남자는 하나같이 ‘찌질이’다. 그는 찌질한 남자야말로 보통 사람이라고 말했다. “채플린의 영화에 나오는 부랑자처럼, 취업도 못하고 때때로 야동도 보는 남자입니다. 그래도 슬퍼하지 말라고, 자살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찌질해도 괜찮다, 이런 세상에선 찌질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 여혐 시비가 중식이밴드가 성장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성장을 하는 데는 표현의 자유도 필요합니다. 포기하는 표현들이 적지 않아요. 그동안 20대에 만들어 놓은 노래들을 발표했는데 아무래도 자기검열을 하게 되죠. 과거와 달리 여혐 여부를 자꾸 의식하게 되지만 그런 관점에서 다시 점검해 보되 결국 소신대로 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입니다.”

✚ 자전적인 노래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표현하려는 게 뭔가요?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죠. 말하자면 우리 방식으로 기성세대에 대드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 제기, 딱 거기까지인 거 같습니다. 대안까지 나아가지는 못해요.”

✚ 중식이밴드의 등장에 사람들이 왜 열광했다고 생각하나요?
“옛날 맛이랄까요? 걸그룹과 아이돌이 대세인 시장에 그동안 못 보던 떡볶이 같은 밴드가 나왔기 때문이겠죠. 떡볶이는 우리밖에 파는 사람이 없다 보니 맛은 없지만 사 먹는 거예요.”

▲ 중식이는 자전적인 노래를 하는 이유를 “이 사회에 대한 일종의 반항, 우리 방식으로 기성세대에 대드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그는 만일 한국전력 같은 전기 공급자가 하나 더 있다면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벌써 바뀌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중식이의 심한 곱슬머리는 자연산이다.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지 않는 한 파마비가 들지 않는다. 그는 연습실서 자전거로 5분 거리의 집에서 불테리어종 개 두 마리와 산다.

2년 전 그가 몹시 우울했을 때의 일이다. ‘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때마침 여자친구와도 헤어지네 마네 했다. 이러다 자칫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무렵 어느 날 퇴계로 애견가게 거리를 찾았다. 그가 아는 가장 가까운 ‘동물원’이다. (그는 “범근이 형(드럼을 치는 장범근)도 너무 힘들면 동물을 보러 간다”고 말했다.)

두번째 가게에서 지금 키우는 ‘춘배’와 마주쳤다. 특이하게 생긴 강아지는 그가 시선을 돌리자 다른 데 보지 말라는 듯이 칭얼거렸다. 거리를 다 둘러보도록 그 강아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달음에 그 집으로 뛰어가 65만원 주고 춘배를 샀다. 순식간에 통장 잔고가 5만원으로 줄었다. 그는 춘배를 안고 택시에 올라 연습실로 향했다. (다른 불테리어 한 마리는 레이지본 밴드 멤버가 키우던 강아지다.) “저에겐 복덩이예요. 춘배 덕에 집에 가면 힐링이 됩니다.”

✚ 한국 사회 내지는 한국 대중문화 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중식이밴드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보나요?
“사회를 고발하는 노래를 불렀는데 (사법당국이)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고 정치에 관여했지만 정치적 보복을 당하지도 않은 첫 케이스랄까요? 그래서 ‘우리도 한번 저 친구들처럼 해 보자’고 하는 사람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말하자면 문화의 판, 어떤 의미에선 지경을 넓혔다는 건가요?
“솔직히 우리가 정의당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콜라보를 했다면 여혐 논란에 휩쓸리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 뜻에서 어쩌면 정치적 보복이 있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정의당과 지난 총선 당시 ‘공식 테마송 협약’을 맺기 전 이 당은 여성 정당, 청년당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협약식 후 여혐 밴드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 타이밍이 공교로워요. 그 시점에 사람들이 중식이밴드의 여혐 문제를 이슈화한 배경에, 정의당에 타격을 입히려는 모종의 음모가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는 엘리베이터 이론을 폈다. 내용은 이렇다. 엘리베이터에 고위층만 탈 수 있게 하면 사람들은 계급제도를 욕한다. 그러나 고위층과 더불어 노약자를 타게 하면 이번엔 노약자를 비난한다. “나이가 무슨 벼슬이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여기 여성을 태우면 이번엔 성차별이라고 항의하며 남녀가 서로 싸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SNS는 그 세대 전쟁, 성 대결의 무대이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건 하나의 거대한 음모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이 사회의 1%가 부의 99%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돈이 고여 있어 나라가 마비 상태예요.”

그는 20대 전반 막노동, 배달, 동대문 지게꾼 일을 해 봤다. 어려서의 꿈 중 하나가 요리사라고 했다. 그가 ‘노가다’로 일할 때 목격한 일. 요리사가 되겠다고 레스토랑에 취직해 3년간 설거지만 했다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식재료를 만들 수 있게 되자 어느 날 수셰프가 셰프의 친인척으로 바뀌었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것이다. 연줄 없이는 요리도 제대로 배우기 힘든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합주 연습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금요일 오후에 만나 서너 시간씩 한다. 멤버 중 두 사람은 악기 레슨을 하고 한명은 공장에 다닌다고 했다. 그는 다른 멤버들보다 형편이 낫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일이 전보다 줄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행사 섭외를 위한 문의가 별로 없습니다. 정의당 관련 활동 탓일 거예요.”

✚ 그동안 만든 노래 말고, 밴드로서 노래 실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자평하나요?
“형편없죠. 먹고살기 바빠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하고 멤버 간에도 연습량에 차이가 있어요. 다른 멤버들은 독학한 저와 달리 실용음악 실력을 갖춰 악기 레슨을 할 수 있는 반면 지향하는 음악은 서로 달라요. 지금까지는 이미 만들어 놓은 노래로 먹고살았는데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봅니다.”

중식이밴드의 주수입원은 저작권료와 공연 수입이다. 수입은 네 명의 밴드 멤버에, 매니저인 김석현 과장까지 다섯 사람이 똑같이 나눈다고 한다. “한 시대에 인상적인 활동을 했던 밴드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음악만으로 먹고살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자면 팔리는 음악을 해야 하는 제약이 있어요. 이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우리의 수명이 달렸다고 봅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