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말기 할부 판매의 얄팍한 덫

휴대전화를 사는 일은 복잡하다. 소비자는 상담데스크 앞에 쌓이는 서류 중 형광펜으로 미리 표시된 곳을 읽고 사인하는 것만으로 벅차다. 직원은 할부 판매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한다. 보조금뿐만 아니라 사은품도 준다고 현혹한다. 하지만 이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서는 안된다. 할부로 사면 이동통신사들이 이자를 물리기 때문이다.

▲ 이동통신사들이 과거에 자체적으로 부담하던 단말기 할부이자를 소비자에게 부과하고 있다.[사진=뉴시스]

통신업계가 시끄럽다. 이동통신사가 ‘할부판매 이자’로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논란에 불을 붙인 건 정치권이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신용현(국민의당) 의원은 이통3사가 소비자에게 할부수수료를 부담케 해 최근 4년간 1조원 이상의 이자수익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휴대전화 단말기에 붙는 ‘할부수수료’는 보증보험료(통신사가 할부금을 떼일 때를 대비해 드는 보험료ㆍ2.9%대)와 휴대전화 단말기 할부이자(2.0~3.0% 수준)를 합친 금액이다. 이런 할부수수료는 통신사마다 다르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5.9%, KT는 연 환산 6.1%대다.

할부수수료는 애초 소비자가 납부하지 않았다. 2009년 이전 이통3사는 단말기 가격에 따라 1만~4만원씩 보증보험료(일시불)만 받았다. 할부이자는 회사가 부담했다. 하지만 고가 스마트폰이 등장하자 이통3사는 보증보험료를 폐지하고 보험료와 할부이자가 결합된 ‘할부수수료’를 만들어 소비자에게 다달이 할부원금의 5.9%를 청구하기 시작했다.
2009년 SK텔레콤이 스타트를 끊었고, 2012년 KT와 LG유플러스가 뒤따랐다. 문제는 자신들이 납부하던 할부이자를 왜 고객에게 떠넘겼냐는 거다. 통신업계는 피처폰과 스마트폰을 똑같이 봐선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통업계 한 관계자의 말이다. “2009년 이전에는 출고가가 30만원 이하인 피처폰이 대부분이었다. 할부로 단말을 구매하는 고객도 많지 않아 서비스 차원에서 할부이자를 냈다. 그런데 출고가가 최대 100만원대인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할부로 사는 사람이 늘었고 대납해주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제도를 바꾼 것이다.”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고가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이통3사의 실적은 크게 늘어났다. 1대 팔아봤자 30만원에 불과하던 휴대전화 가격이 100만원으로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할부이자를 고객에게 부담시킬 만큼 이동통신 3사가 어려웠던 건 아니라는 얘기다.

신용현 의원은 “미국, 일본 이통사들은 휴대전화 할부 판매시 할부이자를 받지 않는다”면서 “반면 우리나라는 소비자가 내는 할부수수료에 보증보험료와 할부이자가 모두 포함돼 가계통신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할부이자의 존재를 잘 모른다는 점이다. 한국소비자원이 2014년 이후 휴대전화를 할부로 개통한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할부이자가 할부금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31.6%였다. 특히 개통 당시 할부이자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사람은 41.9%나 됐다.

최근 3년간 소비자원에 접수된 휴대전화 단말기 할부이자 관련 상담 사례 45건 중 할부이자 미고지에 불만을 나타낸 이는 전체의 71.1%(32건)에 달했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고가의 제품임에도 유독 휴대전화를 구입하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할부판매 이자를 설명하기는커녕 할부로 구입하면 할인 혜택이 있다는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많다”고 꼬집었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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