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상헌 보다폰 IoT 사업 부문 대표

무인차, 택배를 배송하는 드론, 몸 상태를 체크하고 식단을 추천하는 냉장고…. 사물인터넷(IoT)이 그리는 청사진이다. 여전히 먼 미래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하지만 글로벌 시장은 이 청사진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IoT를 아이디어 단계로 받아들이는 우리와 크게 다른 행보다. 이상헌 한국 보다폰 IoT 사업 부문 대표를 만나 ‘우리가 모르는 IoT의 동향’을 물었다.

▲ 이상헌 보다폰 한국 대표는 "우리나라 IoT 산업은 하드웨어 분야에만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글로벌 기업의 경우, IoT에 많이 투자한 곳일수록 투자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IoT를 아직 ‘아이디어 단계’로 보는 우리 입장에선 뜻밖의 결과다.
“IoT의 진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5년 전만 해도 IoT 얘기를 꺼내면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머릿속에 IoT 개념을 잡고 있다. 덕분에 IoT 산업을 둘러싼 각국의 전쟁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경쟁에서 패배의 쓴맛을 봤던 유럽은 이 산업을 선도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ICT 분야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있나.

“기업들이 IoT를 활용하는 방법과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를 통해 설비운영 비용을 절감하는 것부터 새로운 커넥티드(Connected) 제품을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것까지 다양하다. 센서가 사무실에 사람이 없다는 걸 인식하고 컴퓨터 전원을 끄거나 전등을 끄는 일을 생각해보자.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네덜란드의 ABS 은행은 전체 지점에 이 시스템을 적용해 전체 에너지 소비량을 20% 넘게 줄였다.”

✚ 우리나라도 건축물 에너지를 절감하는 시스템은 갖추고 있지 않나.
“IT 강국인 우리나라도 스마트홈, 스마트 팩토리를 활용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IoT의 성장 가능성은 얕잡고 있는 듯하다. 이 점에선 우리나라 산업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

이상헌 보다폰 IoT 한국 대표는 자타공인 IoT 전문가다. 13년 동안 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그는 “IoT가 우리 눈앞에 와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우리가 체감하는 IoT의 영향력은 다르다. IoT가 진짜 세상을 바꿔놓을지 의문을 갖는 이들이 많다. 기존 홈네트워크랑 다른 게 뭐냐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온다. 이상헌 대표는 “우리나라 기업이 IoT에 그만큼 소극적이라는 방증”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주요국이 IoT 산업을 두고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IoT 도입 여부만 두고 고민하고 있다. IoT를 바라보는 관점도, 방향도 틀렸다.”

✚ 우리 산업계에 아쉬운 점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하드웨어만 강조하는 우리나라의 제조업 특성이 IoT에 반영되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쉽게 말해, IoT를 직접 만지거나 팔에 차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IoT의 영역은 그렇게 좁지 않다. IoT의 진정한 힘은 서비스에 있다.”

하드웨어에서 벗어나라

✚ 예를 들어 설명한다면….
“보다폰을 통해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을 예로 들겠다.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인 이큐브랩은 쓰레기를 압축하는 쓰레기통인 클린큐브를 개발했다. 여기에 통신 서비스를 더했다.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얼마나 차 있는지를 관리부서에 알려주는 식이다. 차지도 않은 쓰레기 수거를 위해 수거차가 방문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무척 혁신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래를 보면 관점이 달라진다. 이 쓰레기통은 하드웨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제품이지만 이걸 세계 시장에 100원에 내다 판다 한들, 1년 뒤면 중국에서 50원짜리 카피캣을 만들어 낼 게 뻔하다. 그때는 시장에서 밀려날 것이다.”

✚ 이큐브랩이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했나.
“이큐브랩은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도 판다. 클린큐브를 통해 공공기관이 폐기물 수거를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지역에 있는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더 자주 차는지, 쓰레기 수거차의 이동 동선을 어떻게 짜야 유류비를 절감할 수 있는지 등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거다. IoT의 진짜 힘은 이런 서비스에서 나온다.”

 
✚ 해킹이나 전자기기 오류와 같은 리스크도 있지 않은가.
“인프라를 해킹하려는 시도는 통신 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꾸준히 발생했던 일이다. IoT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그보다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고가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나쁜 영향력을 줄이려는 기업의 노력이 필요하다.”

✚ 단점에 얽매이지 말고 장점을 극대화하라는 이야기인가.
“해킹 등 리스크가 IoT의 발목을 잡기엔 IoT가 가진 장점이 너무 크다. IoT는 급격한 도시화가 낳은 각종 부작용을 막을 수 있는 훌륭한 솔루션이다.”

✚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그 청사진을 믿기 어려운 점도 있다.
“자동차 업계는 무인차 시대가 2020년에 온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벌써 4년 뒤다. 그때 도로위에 무인차만 달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관련법이 개정될 것으로 본다. 변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전세계 기업들은 ‘설마 그런 미래가 오겠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그런 미래를 만들어 가고 있다.”

✚ 그럼에도 우리나라 기업은 IoT 투자를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IoT의 편견이 너무 강하다. ‘IoT에는 막대한 자본이 들어간다’는 식이다. 하지만 IoT는 자본이 필요한 게 아니다. 특히 스타트업에는 블루오션이나 다름없다. 이큐브랩의 예를 다시 들어보자. 혁신 쓰레기통에는 많은 자본이 투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제품을 통해 쓰레기를 수거하는 수거차량의 운행 횟수가 10% 줄면 연간 약 1000t의 이산화탄소가 감소하고, 서울시 전체 쓰레기통을 클린큐브로 바꾸면 나무 15만 그루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낼 수 있다. 쓰레기통이 얼마나 차있는지를 알려줬을 뿐인데, 얼마나 대단한 효과들인가.”

IoT가 그리는 청사진

✚ 도입을 망설이는 기업에 조언을 한다면.

“망설일 때가 아니다. 앞으로 2년 이내, 대부분의 기업은 작은 요소라도 IoT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제는 단순한 IoT 도입만으로 차별화 요소를 만들어낼 수 없다. IoT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최선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 우리나라도 IoT 강국이 될 수 있을까.
“IoT가 급부상한 것은 네트워크 진화가 빠르게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람보다 훨씬 많은 사물이 서로 소통하려면 넓고 빠른 인터넷망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가 갖춘 방대한 통신 인프라는 확실한 강점이다. 우리나라는 4G LTE가 대중화됐고 5G를 개발하면서 IoT가 만개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정부 지원도 활발한 편이다. IoT를 적용하는 기업이 늘수록 과거 IT강국의 저력을 발휘해 IoT 강국으로 거듭날 것으로 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