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국 불명예 못 벗는 이유

▲ 우리나라는 2001년 초저출산국에 진입한 후 15년째 합계출산율이 OECD 평균을 밑돌고 있다.[사진=뉴시스]
결혼 3년차 부부인 강성민ㆍ이윤희(가명)씨는 아직 자녀 계획이 없다. 집을 장만하면서 집값의 60% 이상을 대출로 마련해 원리금 갚기도 벅차기 때문이다. 한숨은 강씨 부부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자니 누구 하나 회사를 그만둬야 하고, 맞벌이를 하자니 보육시설을 믿을 수가 없다. 출산율, 낮을 수밖에 없다.

“저출산 문제는 국가의 미래와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자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당면현안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지난 8월 11일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저출산 극복을 위한 현장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황 총리는 이날 “저출산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고 다음 세대들에게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취업준비생, 비혼자, 신혼부부, 만혼자, 난임가정, 남성육아 휴직자 등 정책수요자 16명과 손숙미 인구협회장, 김상호 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이수연 워킹맘연구소장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 경험한 생생한 경험들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20대 대학원생 고모씨는 “취업이 가장 큰 문제다보니 결혼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게 사실”이라며 청년고용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사용 중인 김모(남)씨는 “육아휴직을 신청할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일ㆍ가정 양립 분위기 조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책수요자들의 목소리를 청취한 황 총리는 “앞으로 젊은 세대들이 자유롭게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행복하게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며 저출산 문제 극복에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나라는 2001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초저출산국(합계출산율 1.30명 이하)에 진입한 후 15년째 초저출산국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다.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의 수가 채 두명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1983년 2.01명이던 합계출산율이 이듬해 1.74명으로 무너진 뒤로는 하락세다. 문제는 앞으로도 합계출산율이 상승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성장잠재력 갉아먹는 저출산

▲ 정부가 저출산 극복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사진=뉴시스]
정부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2006년부터 ‘저출산ㆍ고령사회 기본계획’을 수립ㆍ추진해오고 있다. 제1차(2006~20 10년) 기본계획은 ‘출산ㆍ양육에 유리한 환경 조성 및 고령사회 대응 기반 구축’이라는 목표로, 2011~2015년 제2차 기본계획은 ‘점진적 출산율 회복 및 고령사회 대응체계 공고화’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해 12월에는 일자리ㆍ주거ㆍ교육 등 구조적 문제에 초점을 둔 제3차 기본계획을 마련해 현재 추진 중이다. 정부는 “현상적으로 드러난 보육 중심 대책만으로는 출산율 제고에 한계가 있다”고 인정하면서 ‘청년 일자리ㆍ주거대책 강화’ ‘난임 등 출생에 대한 사회책임 실현’ ‘맞춤형 돌봄 확대ㆍ교육 개혁’ ‘일ㆍ가정 양립 사각지대 해소’ 등을 추진 전략으로 내놨다. 이를 통해 2020년까지 합계출산율을 1.5명으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결혼ㆍ출산ㆍ육아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정책의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7월 4~11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전국 직장인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의 3.8%가 저출산 정책이 자녀 계획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지원수준이 비현실적(68.9%)’이고 ‘가짓수만 많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게 별로 없다(41.6%)’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미혼 직장인 여성의 38.3%는 “결혼 후 자녀를 낳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계획이 있다고 하더라도 한 명(평균 1.1명)만 낳겠다고 했다. 20~30대 기혼 직장인 여성의 현재 자녀 수도 일맥상통했다. 평균 1.5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계획하고 있는 자녀의 수는 0.3명으로 나타났다. 현재 한 두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앞으로는 더 낳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설문에 응한 여성들이 자녀를 한 명만 낳겠다고 답한 이유는 ‘양육’ 문제에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 여성은 부모(아이의 조부모)에게 자녀 양육을 도움 받고 있다. 특히 자녀가 어린 20~30대는 그 의존도가 더 크다. 20대는 50.0%, 30대는 48.6%가 부모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20대 50.0%, 30대 29.7%)에 맡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를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으면 일ㆍ가정 어느 하나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일ㆍ가정 양립 문화 확산(51.4%)’ ‘양육ㆍ주거비 비용 지원(41.6%)’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저출산 정책으로 꼽는 이유다.

허울만 좋은 유연근무제

육아휴직이나 유연근무제가 있다 하더라도 마음 편하게 쓰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다수의 직장인 여성은 회사ㆍ동료 눈치가 보여 아예 회사를 그만 둔다. 남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남성육아휴직제가 있지만 유명무실하다. 모 대기업에 다니던 박모(36ㆍ남)씨는 지난 1월부터 육아휴직 중이다.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맞벌이를 하다 보니 자꾸 아이에게 소홀해진다는 생각에 과감히 육아휴직 신청서를 냈다. 1년 육아휴직 기간 동안 가계 경제는 금융권에 종사하는 아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요즘 박씨는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수년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을 정비 중이다. 때때로 재택 아르바이트로 용돈벌이도 한다. “육아휴직은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에는 변함 없는 박씨지만 그도 불안감을 떨칠 순 없다. 1년 후 다시 복직은 되겠지만 앞으로 진급할 때 보이지 않는 장애가 될 거란 걸 그는 알고 있다.

송원근 전경련 경제본부장은 “정부가 저출산 관련 제도를 마련하고 기업들도 많이 도입을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이래저래 눈치 보느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업은 일ㆍ가정 양립 문화가 확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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