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김방호 오르그닷 대표

친환경 옷을 만드는 사회적기업 오르그닷의 김방호(38) 대표는 IT 업계 출신이다. 명색이 대표인데 10년 전 네이버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적다. “IT 말고 뭔가 손에 잡히는 일을 하고 싶었다”는 그는 마침내 패션에 꽂혔다고 말했다. 오르그닷은 여러 종의 친환경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대중화했다. 권위주의적인 풍토에 익숙한 의류업체답지 않게 사내 소통이 민주적이다.

▲ 김방호 대표는 “의류업계의 생산 및 유통단계를 대폭 축소하면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중간상들 유통 마진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오르그닷은 친환경 옷을 만드는 사회적기업이다.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의 유니폼을 비롯해 삼성, 현대차, LG 등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 친환경 단체복을 납품했다. SK와이번스 유니폼은 전 세계 프로 스포츠팀 최초의 친환경 유니폼이다. 폐페트병으로 만든 원단이 소재인 이 유니폼은 수억원어치가 팔렸다. SK 구단 직원도 입었고 구단을 통해 레플리카 유니폼으로도 팔았다. 친환경 유니폼은 현대 축구단 등으로 확산됐다. 오르그닷은 이밖에도 무가공면 등 여러 종의 친환경 원단을 대중화시켰다.

✚ 오르그닷의 친환경 옷이 가격 경쟁력도 있나요?
“일반 의류보다 30% 이상 값이 비쌉니다. 국내서 만든 원단만을 사용해 원단 값이 상대적으로 고가이기 때문이죠. 티셔츠 한 벌에 3만~5만원 선으로 가격 면에서는 중가 제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티셔츠를 동남아ㆍ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 만들면 3000원이면 되는데 국내산 오르그닷 제품은 봉제 비용만 3000원이에요.”

✚ 임금이 훨씬 비싼 데도 국내 생산을 고수하는 이유가 뭔가요?
“국내 봉제 노동자들에게 일감을 확보해 주기 위해서입니다. 봉제업계는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일감이 계속 줄어드는 실정이죠.”

김 대표는 네이버 출신이다. 창업 멤버 여섯명 중 절반이 IT 업계 출신이다. 오르그닷 초기 투자자 중 한 사람이 이재웅 다음 창업자다. 김 대표는 “IT 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손으로 만져지는 패션업을 하고 싶더라”고 말했다. “일부에서 국내 패션 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고 하지만 국산 의류는 품질이 좋고 뉴욕ㆍ런던ㆍ도쿄 산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있습니다. 네임 밸류가 떨어질 뿐이죠.”

한국은 산업화된 나라치고는 의류업 종사자가 많은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가 자칫 경쟁력을 잃어 자본이 대거 빠져나가면 몇십만명이 단기간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들 종사자가 대부분 서울ㆍ대구ㆍ부산 등 대도시에 몰려 있다. 서울의 동대문은 거대한 옷 시장이자 봉제공장 밀집 지대이다.

오르그닷은 이 점에 주목해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designersnmakers.com)라는 디자이너ㆍ생산자 간 O2O 플랫폼을 만들었다. 의류 디자이너와 생산자인 메이커들이 직거래하는 앱스토어다. 오르그닷 측은 장터만 제공한다. 오르그닷은 이 온라인 장터를 통해 생산되는 옷에 대해 장차 품질 보증을 서려 한다.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 제품처럼 ‘메이드 바이 오르그닷’은 믿을 만하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 주려는 것이다.

유통 플랫폼도 구축 중이다. 온ㆍ오프 몰이다. 이런 식으로 의류업계의 생산 및 유통단계를 대폭 축소하면 부가가치 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중간상들 유통 마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의류업계에 새로운 생태계가 태동 중인 셈이다. 김 대표는 옷 브랜드 내지는 디자이너들이 이 생태계를 이용할 때 비용을 20~3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무엇보다 여기 들어오면 봉제품 생산자를 손쉽게 찾을 수 있어요. 생산자로서는 일감이 늘어나고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이점이 있죠. 옷의 유통구조가 복잡해 옷값이 올라가고 그 돈이 중간상에게 새는 겁니다. 평균 다섯 단계라면 우리 사이트에서는 한 단계로 단축되는 거죠. 예를 들어 단추가 필요하면 여기서 단추 만드는 회사를 찾아 납품하라고 하면 됩니다. 앞으로 이 생태계가 안정되면 봉제 공장 일감이 30%는 늘어날 겁니다.”

✚ 패션 선진국에 비해 네임 밸류가 떨어지는 문제를 시간이 해결해 줄까요?
“그래서 우리가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라는 플랫폼을 만든 겁니다. 프랑스 패션업계 관계자가 ‘한국은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어 잘될 거 같다’고 했어요. 우리나라는 봉제 생산자는 물론 디자이너 브랜드가 많습니다. IT 접근성도 뛰어나죠. IT 업계 출신으로서 마침 다음 단계는 플랫폼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였습니다. 이런 플랫폼의 강점은 글로벌 서비스라는 겁니다.”

그는 중국ㆍ일본 의류 브랜드와도 제휴를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매출액이 1000억원대인 한 중국 업체로부터 한국 디자이너를 모을 수 있느냐는 연락이 온 일도 있다. 한 호주 업체와는 이미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 이 플랫폼이 획기적인가요? 다른 나라에도 유례가 없나요?
“유럽과 미국에 출장 갔을 때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에 대해 소개하면 대단하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자기네들은 이런 사이트를 하고 싶어도 생산자가 부족해 못한다는 거예요.”

봉제 일감 30% 늘릴 수 있어

✚ 모바일 앱도 있나요?
“있습니다. 이 플랫폼은 모바일 서비스가 중요합니다. 봉제 생산자들이 업무 특성상 PC 앞에 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주문자와 카톡을 하느라 휴대전화는 끼고 살거든요.”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는 현재 무료 서비스이다. 오르그닷은 이 사이트를 구축하는 데 10억 원가량 투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수익이 없다. 장차 생산 대행 서비스로 수익을 내려 한다. 생산 경험이 부족한 브랜드를 위한 대행 서비스다.

✚ 서비스를 유료화할 계획이 있나요?
“때가 되면 거래금액의 몇 % 식으로 유료화할 겁니다. 운영비 정도죠. 그런데 벌써 생산자들이 우리가 너무 많이 받을까 봐 걱정입니다. 사회적기업인데 착취야 하겠습니까? 그동안 빼앗겨 보기만 했던 분들이니 이해는 해요.”

▲ 김방호 대표는 “직원들과 ‘계급장’ 떼고 격의 없이 대화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고 말했다.[사진=지정훈 기자]
✚ 친환경 제품으로 B2C 시장을 개척하기는 어려운가요?
“B2C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친환경 옷을 선호하는 일반 소비자는 아직은 소수예요. 일반 소비자는 친환경이라고 소구를 해도 통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품 자체의 품질로 승부를 겨뤄야 합니다. 스타일이 마음에 드는 가방이 눈에 띄어 열어 봤더니 친환경 제품이더라, 이런 식이 돼야 해요. 일례로 폐페트병 원단으로 만든 우리 메쉬백은 가볍고 구김이 안 생길뿐더러 빨아도 형태가 그대로 유지됩니다. 물건을 많이 넣어도 늘어지지 않아요. 그물망형 원단이 야구선수의 슬라이딩을 견디도록 개발돼 300㎏의 무게를 감당하기 때문이죠. 일반 소비자들이 친환경 옷이라는 이유로 구매를 하기까지는 10~20년 걸릴 거예요.”

친환경 옷이 주로 대기업 단체복인 것도 상대적으로 비싼 옷값과 관계가 있다. 다소 비싸지만 사회적ㆍ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회사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 대기업들이 친환경 옷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매주 전 직원 회의를 열어 ‘계급장’ 떼고 대화를 한다. 11명이 격의 없이 대화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고 한다. 회계 담당자가 제품 개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한다. 권위주의적인 패션 업계 풍토에서 이런 식의 사내 소통은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의사결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단점은 있다.

✚ 오르그닷은 무슨 뜻인가요?
“비영리 조직 도메인인 .org를 뒤집은 겁니다. 중의적으로 친환경이라는 지향성을 내포하는 오가닉,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보겠다는 뜻으로 오거니제이션의 의미도 담았습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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