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뜨는 한강 라인

우리나라의 1%는 부촌에 산다. 이들은 자신만의 공간에서 비슷한 수준의 사람끼리 모여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위치는 시대에 따라 달랐다. 전통 부촌인 성북, 한남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 초반에는 압구정동이 신흥 부촌으로 떠올랐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대치, 도곡동 일대에 부유층이 몰렸다. 최근에는 한강 주변으로 부자들의 집이 몰리고 있다. 한강 조망이 우리나라 부촌 지도를 바꾸고 있다는 얘기다.

▲ 우리나라 부촌의 역사는 강북에서 한강으로, 그리고 강남으로 남하하는 흐름을 보였다.[사진=뉴시스]

살고 있는 것만으로 ‘부자’가 되는 방법이 있다. 거주지를 성북동, 평창동, 한남동, 압구정동, 도곡동 등으로 말하면 된다. 이들은 대표적인 우리나라의 부촌富村이다. 이곳에 입성하는 것은 동시대의 서민들로부터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는 일이었다. 덕분에 부촌의 존재는 중산층 가정의 ‘부자되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자극해왔다. 중산층 가정은 항상 대한민국 대표 부촌들이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를 따졌다. 허리띠를 졸라매 돈을 모아 부자동네에 입성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부촌은 어떤 특성을 갖고 있을까. 무조건 집값이 비싸다고 부촌이 되는 건 아니다. 부촌을 결정짓는 변수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비싼 집값에 교육ㆍ문화 등 주변 인프라, 이웃의 수준 등 여러 요소가 ‘삼위일체’가 돼야 ‘한국의 베벌리힐스’라는 명성이 붙는다. 입주민들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폐쇄성’도 필수다. 초기 부유층들이 몰려 집값이 급등한 뒤 점차 가격이 안정되고 높은 집값을 감당할 수 있는 계층 위주로 주민들이 구성된다는 특징도 있다. 이 때문에 잠깐 집값이 반짝 상승했다 다시 떨어지는 지역은 부촌이 될 수 없다.

이 특성에 따라 우리나라 부촌 흐름을 살펴보자. 사실 우리나라 부촌의 역사는 그리 길지는 않다. 현대적인 주거 단지가 조성된 1960년대부터 50여년 동안 부촌의 흐름은 강북에서 한강으로, 그리고 강남으로 남하했다. 부유층마다 선호하는 지역도 달랐다. 해방 직후 세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전통 부촌이 강북권에 밀집했다. 서울시 성북동, 평창동이 대표적이다.

 
재벌 2세와 신흥 갑부는 주로 강남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소위 ‘강남 시대’가 형성된 건 이때다. 본격적인 강남 개발이 이뤄지던 1970년대 후반, 해방 전 한강변 농지였던 압구정동에 현대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부촌 시대가 열렸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첫 분양 때부터 고위 공직자들에 대한 특혜분양 시비에 휘말렸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지금도 압구정동은 여전히 부촌 대열에 꼽히지만 어느새 강력한 경쟁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2000년대 초 입시학원 메카인 대치동과 타워팰리스 등 초고층 주상복합 밀집지인 도곡동이 부상하면서다.

하지만 최근에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자립형 사립고가 줄줄이 들어서고 내신이 강화되면서 ‘강남 8학군’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고령사회로 접어들면서 교육 중심지 집값이 급등하는 현상은 사라질 공산이 크다. 정부의 사교육 차단 노력과 함께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자리를 잡는다면 이런 현상은 가속화할 게 분명하다. 결국 대치ㆍ도곡이 이끌던 부촌 수요는 새로운 지역으로 옮겨갔다. 바로 ‘한강’이다. 한강 조망권이 그만큼 부촌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부촌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

초고가 아파트 단지가 한강 주변에서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지난 6월 분양전환에 들어가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고급 임대주택 ‘한남더힐’은 3.3㎡(약 1평)당 분양가가 평균 7000만원을 넘었다. 대림산업이 이르면 연내에 선을 보일 ‘서울숲아크로빌’도 3.3㎡당 분양가가 5000만원 안팎에 책정될 것으로 보이며 송파구 잠실 롯데월드타워 42~71층에 들어서는 레지던스 분양가는 3.3㎡당 1억원을 넘어설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한강 조망권의 가치는 같은 평수라도 최대 10억원 차이가 난다는 게 업계의 견해다. 공급이 제한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망권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더 커질 공산이 크다. 이들의 ‘한강 사랑’은 “집은 남향이어야 한다”는 전통적 집 사고관도 바꿨다. 강남에서 한강을 조망하려면 집 방향이 북향이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남향을 포기하는 대신 한강 조망권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어서다.

강남구 청담동에 위치한 ‘청담 래미안 로이뷰’는 같은 단지라도 북동향 아파트 가격이 남동향보다 1억원가량 비싸다. 한강 조망이 되는 전용 110㎡(약 33평) 북동향 아파트는 16억~17억원, 남동향은 14억~15억원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아예 남향이 없는 아파트도 있다. 청담동 ‘청담 자이’는 총 708가구 모두를 애초부터 한강 조망을 즐길 수 있게 북동향으로 설계했다.

강북으로 올라가도 한강 조망 프리미엄은 상당하다. 용산구 이촌동 한강변에 위치한 한강을 바로 바라볼 수 있는 ‘래미안이촌첼리투스(전용 124㎡ㆍ약 37평)’. 한강이 잘 보이는 동은 20억~26억원까지 거래되는 반면 뒤에 있는 동은 18억원 수준이다. 한강 조망 가능 여부에 따라 동 간 가격 차이가 최대 7억~8억원가량 벌어졌다.

한강에 인접한 압구정 아파트 단지도 재건축에 들어가면 다시 한 번 최고 부촌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강북의 경우 한강을 낀 한남, 이촌 등 전통 부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세다. 여기에 한강과 인접한 뚝섬이나 용산, 수도권으로 눈을 돌리면 하남 미사지구 등 한강변 주거지가 인기를 모으고 있다.

부촌도 한강따라 간다

물론 한강 조망권 단지라고 해도 ‘묻지마 투자’는 금물이다. 아무리 한강 조망이 좋아도 지하철역과 한참 떨어져 교통이 불편하거나 학군이 취약하면 부촌이 될 수 없다.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에 인접한 단지는 외부 소음, 매연에 시달리는 것도 단점이다. 부촌이 됐다고 좋은 점만 있는 것도 아니다. 가격변동이 심하지 않아 부동산 대세상승기에 높은 수익률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것은 부촌의 약점으로 꼽힌다. 1999년부터 시작된 부동산 랠리 때 재건축 단지들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보인 반면 전통 부촌인 서초동 일대 등은 상대적으로 소외를 받았었다.
장경철 부동산일번가 이사 2002cta@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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