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이순신공세가 130

“명의 군대는 믿기 어렵다.” “일본은 조선 침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를 시기하는 이들이 반간계를 쓸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왜란 중에 남긴 글을 보면 수많은 예측이 담겨 있고, 이들은 대부분 적중했다. 결국 선조대왕이 성웅을 제대로 쓰지 못해 난亂을 피하지 못한 셈이다.

이순신의 정情과 의意를 문사에 표현하는 역량은 상당했다. 여기 이순신의 유묵遺墨(생전에 남긴 글씨나 그림)이 있다. 제갈공명의 출사표와 어깨를 나란히 할만한 글이다.

上體察使右議政完平府院君李元翼書
伏以事有不已之勢 情有莫急之形 以莫急之情 而値不已之事則 寧得罪於忘家之義 而勢或屈於爲親之私矣 舜臣有老母 今年八十有一 當壬辰之初 怯於俱焚 遂以一家 浮海而南 寓於順天之境 于是之時 以母子相見爲榮 而不暇計其他矣 越明年癸巳 皇威掃蕩 醜類逃遁 此正流民懷土之時也 然第以虜多詐 變謀百出 一隅聚屯 夫豈徒然 更若豕突則 是遺其親於餓虎之口 是以不能歸而式至于今日矣 雖然舜臣以庸才 承重寄 事有靡之責 身無自由之路 徒增陟岵之瞻 莫慰嗟季之心 朝出不還 尙有倚閭之望 何不見 已垂三載乎 頃因家 代人寄書曰 老病日甚 餘生無幾 願於未死 再見汝面 嗚呼使他人聞之 想欲淚下 爲其子者乎 自見此語 方寸益亂 而更無關心之事也 舜臣往在癸未之歲 爲咸鏡道乾原權管 而舜臣之父死焉 舜臣千里奔喪 生不能侍藥 死不得永訣 而常以爲終天之慟 今者母年已高於艾 堂日且迫於西山 若又一朝而忽有風樹之悲則 是舜臣再爲不孝之子 而母亦不能瞑目於泉下矣 舜臣竊自惟念 敵人之請成 是所謂無故之和也 皇朝之使節已下 而無渡海之形[謂李宗城楊方亨爲講和使留釜山三年] 前頭之禍恐有甚於往日[果有丁酉再亂之禍] 不以是冬歸寧於母 而春防又及則 不可離陣 閤下幸察寸草之情 給以數日之暇則 乘舟一覲 而老母之心 庶可少慰矣 設有緩急則 豈以閤下之命而敢誤機事者耶

체찰사 우의정 완평부원군 이원익 공께 드리는 글.
엎드려 살피건대, 일에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고, 정에는 막급할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막급한 정으로써 부득이한 일을 만나면 차라리 집안의 의리를 잊는 죄를 얻을지라도 형세가 혹 어버이를 위하는 사심에 더 끌리는 수도 있는 듯합니다.
제게는 노모가 계신데 올해 여든살이시며, 임진년 초에 돌아가시지나 않을까 두려웠나이다. 구차히 보전하고자 일가를 배에 싣고 남쪽 순천의 경계에 옮겨 사시게 했습니다.

이때는 저희 모자가 서로 만나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누리는 것이라 여기며, 다른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음해 계사년에는 황제의 군사들이 적을 소탕하니, 적들이 도망하여 숨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떠돌던 백성들이 모두 제 고장을 그리워하게 되었나이다. 허나 적들은 속이는 일이 많고 온갖 꾀를 다 내니, 한구석에 진치고 있는 것이 어찌 헛된 일이라 하겠나이까.

▲ 선조는 이순신 장군의 공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만약 저들이 다시 쳐들어온다 하면 제 어미를 굶주린 범의 입에 보내는 꼴이 되겠기로, 얼른 돌아가지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나이다. 저는 본래 용렬한 사람으로 무거운 소임을 욕되이 맡아, 일에 있어서는 허술히 해서는 안 될 책임이 있고, 몸은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어 부질없이 어버이를 그리는 정만 더할 뿐입니다. 자식 걱정하시는 그 마음을 위로해 드리지 못하는바 아침에 나가 미처 돌아오지 않아도 어버이는 문밖에 서서 바라본다 하거늘, 하물며 못 본 지 3년이나 되옵니다.

얼마 전 집안시동에게 글을 보내셨는데, “늙은 몸의 병이 날로 더해 가니 앞날인들 얼마나 되겠느냐! 죽기 전에 네 얼굴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남이 듣더라도 눈물이 날 말씀인데 하물며 그 어미의 자식이야 어떠하겠습니까! 그 기별을 듣고서는 가슴이 더욱 산란할 뿐, 다른 일에 마음을 둘 수가 없습니다.

제가 지난 계미년에 건원보 권관으로 있을 때 선친께서 돌아가시어 천리를 달려와 분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살아계실 때는 약 한첩 못 달여 드리고, 돌아가셨을 때는 영결조차 하지 못하여 항상 그것이 죽을 때까지 한이 되었습니다.
이제 또 어머니께서 고희를 넘기시어 해가 서산에 닿은 듯하온데, 만일 또 하루아침에 갑자기 부모는 돌아가시고 효행을 다하지 못하는 슬픔이 있게 된다면, 이는 제가 또 한 번 불효한 자식이 될 뿐 아니라, 어머님께서도 지하에서도 눈을 감지 못하실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왜적이 화친을 청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고, 황제의 사신이 내려온 날도 벌써 한참인데, 아직도 적들은 바다를 건너갈 기미가 없으니, 앞으로 닥쳐올 화는 지난 때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겨울에 어머님을 돌아가 뵙지 못하면, 봄이 되어 방비에 또한 바쁘게 되어 도저히 진을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합하께서는 이 애틋한 정을 살피시어 며칠간의 여유를 주신다면 한 번 가 뵘으로 늙으신 어머님 마음이 무릇 적게나마 위안이 될 듯합니다. 만일 그 사이 위급한 일이 생긴다면 어찌 대감의 허락이 있다하여 감히 중대한 일을 그르치는 잘못을 하겠습니까.

祭死亡軍卒文
親上事長 爾盡其職 投疽 我乏其德 招魂同榻 設奠共享

죽은 군졸을 제사하는 글.
윗사람을 따르고 섬기는 일, 그대들은 그 직책을 다하였건만, 아랫사람을 아끼고 보살피는 일, 나는 그런 덕이 모자랐도다. 혼을 한자리에 부르노니 차려놓은 제물을 함께 받으시라.[※ 참고: 이 글은 이순신 장군이 을미년 사이에 죽은 군졸을 위해 지은 제문이다. 아쉽게도 그 전체는 없어지고 단지 이 부분만 남았다.]

이순신 장군의 이 두 글은 효심이 지극한 정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면 자연히 사람으로 하여금 감개무량한 마음을 일으킨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글에는 명의 장수 이여송의 군사를 믿기 어렵다는 뜻이 포함돼 있고, 풍신수길의 봉왕사절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며 왜란이 또다시 일어날 조짐이 있다는 뜻도 포함되었다. 이원익인들 어찌 알아보았으리요. 그 옛날 제갈공명이 초려에서 천하가 삼분될 것을 짐작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이순신 장군의 선견지명은 대단했다. 이광악이 가져온 송운일기를 보고 장차 반간계가 행해질 줄 알았으며, 요시라와 김응서, 권율의 세 사람 사이에 재화災禍의 기운이 자라나 삼도 수군이 낭패를 볼 것이라는 것을 선각하고 탄식했다. 아, 선조대왕이여, 와룡 같은 성웅을 얻고도 쓰지를 못하였으니 탄식할 일이요, 애석한 일이로다.
정리 | 이남석 더스쿠프 발행인 겸 대표 cvo@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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