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대비용 LED등 안전불감증 등으로 시장서 외면

▲ 우리나라도 지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증명됐지만, 공공기관들이 내진 설계를 본격 도입할지는 미지수다.[사진=뉴시스]
3년 전 내진 LED 매입등기구를 개발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스타트업이 있다. 이름하여 ‘루미티어’. 이미 3년 전 지진에 대비한 제품을 만들었으니, 이 회사는 지금쯤 ‘대박’이 났을 게다. 결과는 그 반대다. 루미티어라는 이름은 사라졌고, 창업자만 홀로 남아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이 회사, 왜 안 됐을까.

“한국의 잡스를 꿈꾸며!” 2013년 이두용 루미티어 대표가 한 일간지에 촉망받는 스타트업 대표로 소개된 기사의 제목이다. 얼마나 대단한 제품을 개발했기에 ‘잡스’까지 갖다 붙였을까 싶지만, 이 대표가 개발한 제품의 시장가치는 그만큼 컸다.

제품은 천장에서 절대 떨어지지 않는 ‘내진 LED 매입등기구(제품명 블루크랩)’였다. 지진에도 끄떡없다는 얘기다. 이전까지 LED 매입등기구는 구조적인 특성상 나사로 고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블루크랩은 조절이 가능한 특별한 걸림쇠를 장착해 나사를 사용하지 않고도 어떤 천장이건 떨어지지 않도록 설치할 수 있었다. 설치시간도 1분이면 충분했다. 루미티어가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창업사관학교으로부터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인정받은 것도, 2014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조명건축전시회에서 해외업체들의 주목을 받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주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면서 최근에야 내진설계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이 대표는 이미 수년 전에 지금과 같은 상황을 대비한 셈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이 대표를 다시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루미티어는 어떻게 됐을까. 4명으로 출발한 이 스타트업에는 현재 이 대표만 남았다. 3년이 넘도록 최저임금으로 버티던 동료들은 지난해부터 급여가 밀리자 회사를 떠났다. 루미티어라는 상호는 사라졌다. 이 대표는 현재 중동 지역 기후에 특성화된 가로등을 개발해 시장을 개척하려는 다른 스타트업과 손잡고, 재기를 위해 준비 중이지만 하루하루가 힘겹다.

전망이 밝았던 스타트업이 허무하게 주저앉은 이유는 크게 4가지다. 먼저 공공기관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이 대표는 로비가 필요한 건설업계보다는 정부에 먼저 납품해 업력을 쌓겠다는 생각으로 공공기관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납품은 쉽지 않았다. 이 대표의 말을 들어보자.

“기존에 없던 제품을 받으려면 그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고, 새로운 기준에 맞춰 납품을 받아야 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내진 LED 매입등기구를 만드는 곳이 루미티어밖에 없으니 매뉴얼 만드는 것 자체가 특혜라고 했다. 조달청, 교육청, 지자체, 심지어 세월호 사고 이후 열린 국민안전처 장관회의에서도 비슷한 답변을 내놨다.” 없던 걸 만들었으니 팔 수 없었다는 건데, 이 논리에 따르면 ‘새로운 걸 발명해서 더 좋은 제품을 쓰기보다는 공공기관의 납품 기준에 맞는 제품만을 만들어야 한다’는 모순에 빠진다.

내진설계 기준 어긴 공공기관들

하지만 이 모순은 궤변이기도 하다. 공공기관은 규정상 내진 LED 매입등기구를 설치해야 했지만 이를 외면했다. 교육청 시설관리규정의 ‘등기구 설치 기준’을 보자. “모든 등기구는 등기구 자중의 3배 이상의 하중을 견딜 수 있고, 등기구 부착면의 진동 또는 충격에도 추락할 염려가 없도록 완전하게 설치돼야 한다.” 다른 공공기관도 비슷한 규정을 두고 있다. 때문에 모든 천장 등기구는 이 기준을 충족해야 했고, 형광등은 이 기준을 충족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정부의 LED 산업 육성과 함께 등기구가 모조리 LED로 교체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당시 내진기준을 충족하는 LED 매입등기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형광등 매입등기구를 LED로 교체하면서 ‘규정을 어긴 시설물’을 설치한 셈이다. 그러면서 정작 규정에 맞는 내진 LED 매입등기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혁신을 막은 꼴이다.

둘째, 민간 건설업체들도 블루크랩을 외면했다. 이 대표는 건축 설계자가 ‘내진 LED 매입등기구’ 사용을 명시하도록 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해 건축사무소들을 찾아가며 영업을 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건설사들은 건축사무소가 내놓는 시방서(공사에 필요한 재료의 종류와 품질, 사용처, 시공 방법 등 설계 도면에 나타내기 어려운 사항들을 규정해 놓은 문서)대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서다. 현실에서 시방서는 종잇장에 불과했다.

셋째, 품질이 통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제품이 좋으면 팔릴 줄 알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면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보였지만 그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든 로비를 하지 않으면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게 정말 힘들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고, 무조건 영업이 최우선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순진했던 창업자는 지금의 시장 구조에 순응해야 할지, 홀로 묵묵히 제 길을 가야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 내진 설계가 안 된 등기구는 지진 발생 시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연줄과 로비 없어 문전박대

블루크랩이 빛을 제대로 보지 못한 마지막 이유는 안전불감증이다. 이 대표는 “블루크랩을 소개하러 갈 때마다 들었던 얘기는 ‘우리나라에서 지진이 나겠느냐’는 질문이었다”면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지금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최근 지진이 일어났다. 이 대표가 아직 사업을 접지 않은 이상, 이번을 기회로 회생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푸념하듯 말했다. “현재 내진설계 기준은 구조물(건물)과 비구조물(설비ㆍ인테리어ㆍ등기구 등)로 나뉘어서 규정돼 있다. 하지만 유독 LED 매입등기구엔 내진설계 기준이 없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LED 매입등기구는 내진설계를 못하는 걸로 못박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지진으로 눈길을 주는 이들은 있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금방 또 잊을 테고, 나는 연줄도 백도 없다. 로비도 할 줄 모른다. 국내 시장은 힘들 거라 본다.” 

국내시장에서 외면당한 이 대표는 블루크랩을 들고 해외시장을 꾸준히 공략했다. 그 결과,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샘플을 납품, 사우디 현지 투자자의 협의를 통해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공공기관도 외면한 내진 혁신제품을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보인 셈이다. 정부도 기업도 창조와 혁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컬한 결과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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