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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걸의 有口有言] 중립 좋아하다 국제 미아 될라선의로 포장된 지옥 가는 길
[208호] 2016년 09월 29일 (목) 08:36:44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 귀띔조차 없이 곧바로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엿보인다.[사진=뉴시스]
이탈리아 도시국가 피렌체의 외교관 나콜로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은 동양의 손자병법만큼이나 유명한 리더십 고전으로 꼽힌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소련 공산주의 혁명가 레닌, 쿠바의 카스트로 등 지도자들이 이 책을 탐독하고 실행에 옮겼다.

‘목적달성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마피아 철학’ 정도로 치부되면서 오랫동안 가톨릭 교회의 금서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숭고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냉혹한 현실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차원 높은 현실론이자 이상론을 담았다.

마키아벨리는 이 책에서 북한 핵 위험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의 현실을 예측이나 한 듯 정곡을 찌르고 있다. 그는 어리석은 지도자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중립을 선택하지만, 중립이야말로 파멸을 부르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경고한다.

어중간한 중립은 결국 양쪽 모두와 멀어지게 되므로 누가 이기든 패자의 원망을 얻고 승자에게 보복을 당하게 된다. 또한 동맹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 설사 동맹국이 패전하는 경우에도 ‘신의를 지켰다’는 평판을 얻고 최소한의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강력한 주변세력간의 분쟁이 벌어질 때 중립보다는 동맹을 선택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대통령 때 제기된 ‘동북아 균형자론’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ㆍ일본ㆍ중국 강대국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 역할을 하면서 실리를 챙기겠다는 발상이었다. 주변 강국과 공동으로 압력을 가하면 북한의 핵을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윤병세 장관은 2004년 3월 “미국과 중국의 러브콜을 받는 우리나라는 딜레마가 아닌 축복”이라고 한술 더 떴다. 한국은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로서 주변 강국을 마음껏 요리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불편한 시선을 뒤로하고 서방에서 유일하게 ‘항일전승절’ 행사에서 참가했다. 중국 시진핑과 함께 천안문 망루에 오른 것은 동맹보다는 중립이 우선이라는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결과는 어떤가. 참담한 실패다. 북한은 제5차 핵실험을 하면서 핵탄두의 소형화ㆍ규격화를 완성해 언제든지 도발을 할 태세이지만, 믿었던 중국은 한국을 철저히 배신했다. 북한 핵 개발을 막으려면 중국이 북한과의 교역 자물쇠를 잠가야 하는데 오히려 무역규모를 늘리고 있다. 방어용 무기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배치까지 극력 반대한다. 천안문 망루는 환상이었고,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이었다. 마치 한마리 양이 사자와 늑대 사이에서 거중조정을 하겠다고 나선 꼴이니 후세에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역시 같은 민족에 대한 연민과 중립에 대한 순진한 기대가 바탕이다. 그는 1994년 5월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햇볕정책의 세 가지 가정을 설명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배를 채워주어야 한다. 둘째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미국과의 대화용이다. 셋째, 일본의 핵무장을 두려워하는 중국이 북한의 핵무장을 반대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서 받은 돈으로 개발한 핵으로 남쪽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하고 있으니 햇볕정책은 현실에 맞게 수정돼야 한다.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동맹국으로 믿을 수 있을까. 지난번 5차 핵실험을 일본은 즉시 알아챘지만 한국은 한발 늦었다. 미국이 일본에는 알려주고 한국에는 알려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올해 오바마 대통령이 원폭 피해지역인 일본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때 지척거리에 있는 한국인 피해자 위령비는 찾지 않았다. 이번에 5차 핵실험 후 북한에 대한 경고용으로 한국을 오기로 했던 미국의 B-1B랜스 전투기는 기상악화를 이유로 예정보다 하루 늦게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내에서 대북 선제타격론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미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 영변 핵시설에 대한 정밀폭격을 검토했다. 하지만 당시 전면전을 우려한 김영삼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미국의 선택이 협상이 될지 군사적 조치가 될지 아직 예단할 수 없다. 그러나 선제타격론이 현실화될 때는 한국에 귀띔조차 없이 곧바로 실행에 옮길 가능성도 엿보인다. 중립 좋아하다가 국제적인 미아가 될까 두렵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의 참화를 막으려면 근거없는 낙관주의를 버려야 한다.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야 어려운 시기를 지날 수 있다.
윤영걸 더스쿠프 부회장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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