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판매점이 통신비 떨어뜨린 비결

복잡하기 짝이 없는 스마트폰의 ‘가격 테이블’. 대형 이동통신사는 자신들만의 ‘가격 테이블’로 소비자를 유치한다. 문제는 통신요금의 거품이 ‘가격 테이블’에서 시작된다는 점이다. ‘가격 테이블’만 소비자 중심으로 바꿔도 우리는 ‘통신요금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인천의 작은 매장에서 벌어지는 ‘가격 테이블 혁신 운동’을 취재했다.

▲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불합리한 구조가 비싼 통신요금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사진=뉴시스]

‘48만1212원.’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이 1년에 사용하는 평균 통신요금(올해 1분기 이동통신3사 평균 기준)이다. 4인 가구로 환산하면 200만원(192만4848원)에 육박한다. 통신요금 부담 때문에 서민들이 절절 매는 이유다. 전기료ㆍ가스비ㆍ관리비 등도 만만치 않지만, 사람들은 이동통신비의 비중이 늘어나는 걸 유독 잘 체감한다. 웬만한 가정에서는 부모자식 할 것 없이 모두가 값비싼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있어서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부단히 “통신 요금을 내려달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통신요금은 왜 이렇게 비싼 걸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통신산업의 불합리한 구조가 비싼 통신요금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대형 통신사들이 단말기 할부금과 통신요금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독점 구조이기 때문이다.

 
SK텔레콤ㆍKTㆍ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3사는 삼성전자ㆍLG전자 등 단말기 제조사로부터 휴대전화 단말기를 구매한다. 이 단말기에 자신들이 설계한 통신요금을 넣어 소비자에게 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통3사는 소비자들이 쉽게 다가갈 수 없게끔 통신비를 복잡하게 구성한다. 우리가 내는 통신비는 통신 서비스 이용 금액(월정액 통신요금+가입비+유심비+부가서비스 비용)에 단말기 값(단말기 할부금+단말기 할부이자)으로 이뤄져 있다. 이 항목들을 모두 더한 뒤 통신요금의 종류에 따른 약정할인 금액을 뺀 비용을 소비자가 월별로 부담하는 식이다.

문제는 소비자들이 어떤 상품, 어떤 서비스에 얼마만큼의 비용을 치르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통신비 항목에 익숙지 않은 일반 소비자들로선 선택권이 많지 않다. 결국 이동통신사 판매점 직원이 권유하는 통신요금제를 선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서민 짓누르는 통신비

이통3사가 요금제도를 음성통화, 문자, 데이터를 포함한 패키지 형태로 구성한 점도 문제다. SK텔레콤의 ‘band 데이터 6.5G’를 예로 살펴보자. 이 요금제는 ‘데이터 6.5GB+음성통화 무제한+문자 무제한’으로 패키지가 꾸려져 있다. 데이터를 주로 이용하는 젊은층 소비자의 경우 음성통화 시간이나 문자 건수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다. 이들이 6.5GB의 데이터를 이용하기 위해 이 요금제를 선택하면 자연히 음성통화 시간이나 문자 건수는 남아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가 사용하지 않은 음성통화와 문자는 고스란히 이동통신사의 ‘낙전 수입’이 되는 셈이다.

물론 요금제를 선택하는 것은 순전히 소비자에 달렸다. 하지만 “요금제를 낮출 경우 보조금 혜택 등이 감소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통신비 수준은 비슷하다”는 판매 직원의 설명을 들으면 소비자로선 혹할 수밖에 없다. 요금제를 속속들이 파악하기 힘든데다 어차피 비슷한 통신비가 나온다면 고가 요금제와 최신 단말기를 선택하는 것이 이로울 거라고 착각까지 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국내 통신시장이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라고 비난받는 이유다. 소비자들이 이동통신사의 영업실적을 채워주는 고가 요금제와 고가 단말기를 강요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이 구조를 개선하려 애를 쓰긴 했다. 단통법(단말기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알뜰폰 사업(MVNO)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드라이브에도 서민들이 통신비 인하를 체감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단통법은 ‘전 국민 호갱(호구+고객)법’이란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고 개정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월 순증폭이 10만명에 달하던 알뜰폰 가입자는 올해 6월 기준 2만명으로 줄었다. 업체들이 가입자 확보를 위해 무리하게 출혈경쟁을 한 게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가계 통신비를 줄이는 일은 정말 요원한 일일까. 여기, 우리나라 통신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실마리가 있다. 인천에 있는 작은 휴대전화 판매점이 그것이다. ‘통구(Tong9)’라는 간판을 내건 이곳은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에서 통신비 절감을 목표로 설립한 예비사회적기업이다. 이 매장의 문을 연 이용구 전국통신소비자협동조합 상임이사는 “기존에 쓰던 이통3사 요금제보다 최대 70~80%까지 요금을 낮출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조합이 저가 요금제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이 매장은 알뜰폰 사업자가 ‘임대한’ 망을 사용한다. 알뜰폰 사업자들은 원래 통신망을 갖고 있지 않다. 이통3사의 통신망을 정부로부터 도매가(이동통신사 공급가의 약 40%)로 임차해 사용한다. 이들은 통신장비를 갖추지 않은 만큼 싼 가격에 소비자에게 이동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장비 투자나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어서다.

소비자의 선택권을 열어라

가격을 낮추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대형 이동통신사의 패키지 요금제가 아닌 자체 요금제를 만들었다. 여러 알뜰폰 사업자와 협력해 얻은 결과다. 기본요금 1500원에 데이터ㆍ음성통화ㆍ문자서비스를 각각 붙이는 요금제다. 고객의 통화 패턴을 분석해 합리적인 요금을 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그만큼 판매 상담시간도 길다. 평균 음성통화 시간, 문자ㆍ데이터 사용량을 꼼꼼히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신요금에 붙은 복잡한 용어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것도 조합의 일이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힌 ‘맞춤형 요금제’인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데이터 중심 요금제, 선택형 요금제, 선불요금제 등 정부에서 추진한 다양한 요금제를 상담 테이블에 꺼내놓는다. 이는 유통마진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일반 이동통신 판매점이나 대리점에서는 판매를 꺼리는 요금제들이다. 소비자가 원하기 전까지는 새로 출시된 비싼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꺼내는 일도 없다. 조석렬 조합 홍보위원장은 “소비자의 혜택을 먼저 생각하고 제도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다”며 “우리의 활동은 ‘판매’라기보다는 ‘컨설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간단한 방법이 통신요금을 낮추는 과정은 놀랍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60대 A씨는 휴대전화 사용량에 비해 과도하게 청구되는 통신비 요금에 부담이 컸다. 그가 사용 중인 요금제는 ‘LTE 데이터 349’로 월 3만8390원에 데이터 1GB와 무제한 음성통화, 30분 부가통화 서비스가 제공됐다. 하지만 A씨의 휴대전화 이용패턴을 분석해본 결과, 데이터는 전혀 쓰지 않고 음성통화만 한달에 10~15분가량 하는 것이 전부였다. 조합(통구) 측은 A씨의 기존 요금제를 해지하고 기본요금에 음성통화만 쓰는 만큼 낼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해지 이후 첫달은 위약금 6만원을 포함해 9만923원이 청구됐지만 두달째 요금은 3909원으로 기존 요금의 10분의 1가량으로 낮아졌다.

데이터를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의 요금도 낮출 수 있다. 30대 직장인 B씨의 사례다. B씨는 A씨와는 달리 데이터와 음성통화 모두 사용한다. 그가 사용하는 요금제는 ‘Band 데이터 47’. 데이터 3.5GB, 음성통화 무제한, 50분 부가통화가 제공되는 5만6870원(30.0% 할인되는 상품으로 청구요금 3만9809원) 상당의 요금제였다.

B씨의 한달 평균 사용량은 데이터 3GB, 음성통화 80~90분가량. B씨에겐 통신서비스 이용 기본요금 1500원에 음성통화 80분 요금 7200원(80분×60초×1.5원), 데이터 3GB 1만5000원, 여기에 부가세까지 포함해서 총 2만5200원의 요금제로 추천했다. 결과적으로 1만원 이상의 요금을 절감했다.

두 사례가 특별 케이스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조합에서 요금제를 변경한 소비자들 가운데 무작위로 20명을 뽑아 요금제 변경 전후 차이를 살펴봤다. 이들의 변경 전 통신요금은 최저 6440원부터 최대 5만8090원까지 다양하게 분포했다. 평균으로 계산해보니 변경 전 요금은 1만9229원, 변경 후 요금은 6144원으로 나타났다. 통신비가 평균 68.0% 절감된 셈이다.

통신요금 낮추는 간단한 비결

이용구 상임이사는 “이통사가 통신서비스를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친다면 시중에 있는 판매점은 소매상, 우리는 도매상이라고 보면 된다”면서 “유통마진 등 중간 수수료를 없애고 사용하지도 않는 불필요한 서비스가 포함된 고가의 패키지 상품을 없애면 통신비는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격이 저렴하다고 서비스의 품질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이통사들이 사용하는 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동일한 품질을 느낄 수 있다. 망을 일부러 재가공할 순 없기 때문이다.

어떤가. 간단한 방법이지만 통신요금 절감 효과는 확실하다. 서비스를 철저히 소비자 중심에 맞췄기 때문이다. 이런 합리적인 움직임이 확대되면 통신사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던 시장구도도 휴대전화 제조사, 콘텐트 회사, 소프트웨어 업체 등 다양한 기업으로 확산될 공산이 크다. 공급자 중심의 시장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다린ㆍ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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