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더 다칩니다
가난하면 더 다칩니다
  • 노미정·고준영 기자
  • 호수 208
  • 승인 2016.09.29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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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책 이야기「재난 불평등」

자연재해 속 경제 불평등의 민낯

2016년 9월 12일 밤 8시33분.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했다. 국내 지진 관측 이래 최강의 지진이었다. 진앙에서 300㎞ 이상 떨어진 서울은 물론 제주도 등 전국에서 강력한 진동이 감지됐다. 가장 직접적으로 지진 공포를 겪은 경주, 부산 시민들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우리나라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 거다.

하지만 이날 무엇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정부의 부실대응이었다. 재난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신설된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지진이 발생하는 동안 계속 다운 상태였다. 긴급재난문자는 지진 발생 9분이 지나서야 일부 지역에만 전달됐고, 지진 후에는 일부 통신마저 두절됐다. 진동이 감지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발송한다는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민망한 수준이다.

진원이 활성화된 양산단층(경북 영덕부터 부산 낙동강 하구까지 이어지는 170㎞가량의 긴 단층대)이라는 것도 한주가 지나서야 발표됐다. 그동안 경주에서는 지난 19일 규모 4.5의 지진을 포함, 총 409회(9월 21일 기준)의 여진이 발생했다. 별다른 피해복구도 없었다. 시민들의 심리적 불안과 물리적 고난만 가중된 셈이다.

이처럼 지진 공포가 한반도를 엄습한 상황에서 자연재해를 사회적 현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끈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지구환경과학부·국제정책학부)이자 지진학자인 존 C. 머터는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 규모를 키우는 건 지진·화산폭발·홍수 등 자연현상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조적 병폐라고 말한다.

그는 저서 「재난 불평등」을 통해 기존에 있던 부조리, 불평등이 어떻게 자연재해의 피해 규모를 확산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2010년 발생한 아이티 지진과 칠레 지진이 대표사례다. 먼저 21세기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아이티 지진. 2010년 1월 12일 오후 4시 53분, 카리브해의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를 규모 7.0의 지진이 강타했다.

이후 60차례 이상의 여진이 지속되면서 첫 번째 지진으로 약화된 구조물들이 연달아 무너져 내렸고, 그 결과 30만명으로 추산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같은 해 2월 칠레에서도 규모 8.8의 지진이 일어났다. 하지만 놀랍게도 당시 사망자 수는 525명에 그쳤다. 지진 에너지는 칠레가 아이티보다 500배 정도 컸지만 인명 피해 규모는 정반대였던 거다.

왜 그랬을까. 저자는 아이티의 가난과 부패라는 구조적 병폐를 그 원인으로 거론한다. 빈곤한 나라일수록 얼마 되지 않는 부를 권력자 주변의 부패세력이 독점하기 때문에 자연재해 대비·대처 시스템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당시 정부가 적극 부인하긴 했지만, 이웃 국가들로부터 아이티에는 건축 규정이 아예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정도로 건물이 부실했다. 지진학자도 나라 전체를 통틀어 단 1명뿐이었다. 실제로 아이티는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국가부패지수에서 15위를 차지했다.

가난과 부패로 인한 피해 규모는 아이티 내부에서도 나눠졌다. 지진으로 숨진 이들 대부분이 슬럼가나 빈농 지역 거주자였던 거다. ‘니그(neg)’로 불리는 이들 하층민이 조악하게 지어올린 건축물은 무려 20만채나 넘게 주저앉았다. 반면 부를 독점한 고위층 ‘블랑(blan)’ 계급의 고급 저택들에는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자연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안긴 셈이다. 저자가 재해 자체보다 재해 이후 장기간 이어지는 피해조사·복구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이 제어할 수 있는 부분인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시스템을 정착시켜서 자연재해의 피해를 최소화 해보자는 얘기다. 지진 공포에 휩싸인 우리에게 이보다 더한 조언이 있을까. 

세가지 스토리

「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지음 | 글항아리 펴냄

문자는 무한한 상상을 이끌어낸다. 소설 속 주인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예상하고, 심지어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소설이 영화화했을 때 “주인공과 똑 닮은 배우를 캐스팅했네”라는 감탄이 나오는 것도 그때문이다. 이 책은 독서를 할 때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이미지로 재현했다. 또한 이런 과정을 통해 독서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일깨워준다.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지음 | 에이도스 펴냄

수억년 전 지구에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일어났다. 씨앗이 생겨난 일이다. 씨앗은 인류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씨앗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책은 씨앗이 식물과 인류의 진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풀어내고 있다. 어려울 것 같은 소재지만 역사적 사례와 함께 개인적인 일화를 녹여내 쉽게 다가온다. 작은 씨앗에 담긴 경이로운 이야기에 빠져보자.

「사일로 이펙트」
질리언 테트 지음 | 어크로스 펴냄

사일로. 부서 이기주의를 말한다. 생각을 가로막는 편협한 사고를 뜻하기도 한다. 이 책은 사일로에 갇히느냐 넘어서느냐가 개인과 조직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조직 간의 경계가 얼마나 유연한가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는 얘기다. 잘나가던 소니가 몰락하고, 스위스 금융기업 UBS가 금융위기 때 속절없이 무너진 원인도 사일로에 있다고 이 책은 말한다.
노미정·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noet85@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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