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정기룡 미래현장전략연구소장

대전의 4개 경찰서장을 지낸 정기룡(59) 미래현장전략연구소장은 정년퇴직 전 제빵ㆍ제과 학원을 다녔고 손두부와 떡 만드는 일을 배웠다. 자신의 달란트가 손재주가 아니라 말재주라는 사실을 깨닫고서 지금은 은퇴 설계와 행복한 노후 삶을 주제로 강연을 다닌다.

▲ 정기룡 미래현장전략연구소장은 “퇴근 후 2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은퇴 후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한다”고 조언했다.[사진=지정훈 기자]
“완장을 벗어 던져야 합니다. 왕년에 대한 향수를 내려놓아야죠. 왕년에 내가 어느 자리에 있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관심 없어요. 나만 관심 있지. 시쳇말로 뭣이 중헌디? 아침이면 배우자에게 ‘여보, 나 다녀올게’ 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중요해요.”

정기룡 미래현장전략연구소장은 “정년 후 맞는 두번째 인생은 가능하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고 권했다. “먹고살려고 경찰에 들어갔습니다. 수사과장 시절 아래 직원이 저지른 잘못으로 좌천됐을 때 위기감을 느꼈어요. ‘평생 경찰 할 줄 알았는데 언제든 잘릴 수 있겠구나.’ 그래서 경찰서장이 되면 현직에 있으면서 퇴직 후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었죠.”

서장 시절 계급정년이 예고된 상태에서 그는 퇴직 준비를 시작했다. 저녁 시간을 활용하려 모든 회식을 점심 때 했다. 우선 제빵사와 제과기능사 자격증을 동시에 땄다. 이어서 수제 초콜릿 만드는 법을 익혔다. 손두부집과 떡집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다. 토익 700점 장벽에 막혀 포기했지만 공인노무사 시험에 매달린 적도 있다. 신림동 고시학원 주말반에 등록하고 3개월 간 토요일 새벽 첫 차를 타고 대전에서 상경해 강의를 들었다. 토익 점수를 올리려 어학원 강사에게서 1대1 교습도 받았다. 2년 반 이상 공인노무사 시험 준비하느라 1800만원을 썼다.

경찰서장은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잦다. 휘하 직원만 500~600명에 달한다. 서장 시절 그는 연설을 잘 해보려 스피치학원에 등록했다. 거기서 자신의 재능이 빵이나 떡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손재주가 아니라 말재주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55세에 총경으로 퇴직한 후 그는 자신이 다닌 데일카네기연구소 리더십 전문교수를 지낸다. 대전 KBS ‘아침마당’ 등 방송에 여러번 출연했다.

지금은 삼성에스원 충청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미래현장전략연구소를 차려 은퇴 설계와 행복한 노후 삶을 주제로 강연을 한다. 퇴직 전 ‘퇴근 후 2시간’을 투입한 다양한 학습은 일종의 시행착오였지만 지금 그가 하는 강연의 유용한 재료이다. 「현직에서 퇴직 후를 준비하는 퇴근 후 2시간」이라는 공저를 냈고 ‘퇴근 후 2시간’이란 제목의 노래를 작사해 직접 부른 CD도 만들었다.

“퇴근 후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현장입니다. 퇴근 후 2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은퇴 후 삶의 행복지수를 결정합니다. 오늘 저녁 퇴근 후 사람들과 어울려 노래방에 가면 퇴직 후 혼자 노래방에서 시간을 보내게 될지도 몰라요.”

그가 대전 중부경찰서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의 한 부하 직원은 퇴직 후 중부서 앞 지하상가에서 경비원을 한다. 경위가 방망이를 찬 월수 180만원의 경비로 변신한 것이다. 퇴직 후 1년 만에 첫 출근하는 날 그는 설레어 넥타이를 다섯번 고쳐 맸다고 한다.

✚ 100세 시대 인생 후반전엔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은가요?
“현직과 연결되는 일을 하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교통사고조사팀에 있는 경찰관이라면 교통사고감정사 자격증을 따 퇴직 후 보험설계사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거에요. 기술을 배우고 자격증을 따세요. 정년은 또 하나의 졸업일 뿐입니다. 새로운 학업에 도전해야죠. 오랜 취미를 살려 전직하는 길도 있습니다. 등산을 좋아하면 숲해설사에 도전해 볼 수 있죠. 일찌감치 나 대신 재능 있는 배우자에게 투자할 수도 있어요. 꽃을 좋아하는 아내에게 꽃꽂이를 배우게 하면 나중에 꽃집을 차릴 수 있죠.”

박사 공부 시킨 부인은 도립대 교무처장

그의 부인은 충남도립대 교무처장으로 있다. 젊은 날 고인이 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는 아내를 공부시켰다. 미술을 전공한 부인이 석사를 한 후 그도 석사를 했다. 부인이 박사가 된 후 그도 박사에 도전해 한남대 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투자해 박사로 만든 부인은 정년까지 13년 남았다.

“퇴직을 하면 아내에게 직장이 있다는 게 상당한 위안이 됩니다. 아내에게 투자하는 게 곧 나 자신을 위하는 것이죠.” 그와 인터뷰한 9월 1일 두 사람은 나란히 직업상담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직업상담소를 차리게 되면 노인들에게 커피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가 노인들에게 월 50만원씩 지원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낫습니다.”

✚ 퇴직한 남자가 이사 갈 때 ‘묻어가려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를 꼭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우자 등 가족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나요?
“대전 4개서 서장을 역임한 후 퇴직할 무렵 아내가 저에게 앞으로 제가 고칠 점을 적어 줬습니다. 빨래는 세탁기에 집어넣을 것, 선풍기를 발로 끄지 말 것, 소변도 앉아서 볼 것 등이었죠. 명색이 경찰서장 출신인데. 저에게도 자기가 고칠 점을 적어 달라고 하더군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당신은 고칠 게 없다’고 말해줬습니다. 배우자의 지분이 51.0%라고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평생 배우자에게 잘하면 이사 갈 때 두고 가는 일이 없죠. 퇴직 전 음식 만드는 법, 은행 볼 일 보는 법을 배워 둬야 합니다. 적금을 매달 20만원 붓고 있다면 10만원은 배우는 데 투자하세요. 자녀에게 투자한다고 노후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의 아들은 군 복무 중 결혼했다. 일병 시절이었다. 속도위반을 한 탓이었다. 결혼 후 친정으로 다시 보낸 며느리가 집으로 오던 날 그는 플래카드를 만들어 걸었다. 결혼 전 아이를 넷 낳으라면 낳겠다고 한 며느리였다. ‘사랑하는 며느리. 고맙고 사랑한다. 넷 낳겠다고 한 약속 지켜라’ 플래카드를 본 며느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 정 소장은 “정부가 노인들에게 월 50만원씩 지원하는 것보다 일자리를 제공하는 게 낫다”고 지적했다.[사진=지정훈 기자]
그의 아버지는 소동파라는 예명의 조연급 영화배우였다고 한다. 영화에 투자했다 실패해 가세가 기울었고, 그는 두고 두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부사관으로 군에 입대해 중사로 전역한 그는 경찰간부후보생에 지원해 경찰이 됐고, 방송대를 졸업했다.

한번은 구멍 난 팬티를 입고 있는 노년의 아버지에게 그가 싫은 소리를 했다. 아버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가 다시 그의 가슴을 쳤다. “어디 갈 데도 없는데 뭐….” 신영균 주연의 1966년 작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 등에 출연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먼저 보내고서 74세에 혈액암으로 가셨다.

✚ 노후가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정리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침에 내가 나온 자리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100세 시대라지만 오늘 내가 잘못될 수도 있어요. 주변에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사과를 하세요. 그게 한 번뿐인 인생을 나를 위해 사는 길입니다. 많이 사랑하고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죠. 남자는 혼자 되면 살기 어렵습니다. 저는 해로할 수 없다면 저를 먼저 데려가 달라고 기도합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는 침례신학대학원을 다녔다. 내년 3월이면 목사 안수를 받는다.

✚ 목사가 되면 뭘 할 겁니까?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이지만 아버지가 있어서 밥을 굶는 소년소녀 가장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돕고 싶어요. 또 목회자 청빙에 대비해 말씀이 좋은 목사님 설교를 열심히 필사합니다.”
이필재 더스쿠프 인터뷰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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