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세일페스타의 불편한 그림자

▲ 정부가 주도하는 이벤트성 행사는 한계가 뚜렷하다. 민간이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산업 생태계를 마련하는 게 상책이다.[사진=뉴시스]
코리아세일페스타(9월 29일~10월 31일)가 한창이다. 지난해 9ㆍ10월 열린 코리아 그랜드 세일과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합친 국내 최대 쇼핑관광 축제다. 백화점ㆍ대형 마트 등 유통업체가 미리 확보한 물건을 조금 싸게 팔던 지난해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보다 진일보했다. 가전과 자동차업체 등 제조업체와 온라인쇼핑몰도 참여했다.

그렇다고 냉각된 소비가 살아날까. 가라앉은 내수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을까. 정부가 기대하는 만큼 성과를 거두긴 어려울 것 같다. 우선 지난해 이맘 때보다 경제 상황이 나빠졌기 때문이다. 가계소득의 원천인 일자리 새로 구하기는 더욱 힘들어졌고, 다니던 일터마저 구조조정 여파로 놓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금리가 더 낮아져 가계의 이자소득이 줄어든 반면 부채는 계속 불어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70%까지 치솟았다. 가계의 소비여력이 거의 고갈 상태다.

정치ㆍ사회 여건도 속 편하게 쇼핑하고 놀러 다닐 분위기가 못 된다. 남북관계를 어렵게 지탱해주던 개성공단이 문을 닫더니만, 북한은 핵실험에 미사일로 위협해댄다. 한가위 명절을 앞두고 지진이 나더니만, 그 이후에도 여진이 계속 이어져 딛고 있는 땅마저 불안을 더한다. 폭염에 지친 몸을 전기요금 폭탄 고지서가 한방 먹이더니만, 무슨무슨 재단 설립과 관련된 의혹 및 국정감사까지 팽개친 정치권의 막장 드라마가 연거푸 심신을 두들긴다.

청와대 설명대로 경제위기에 안보위기까지 겹친 ‘비상시국’인데 박근혜 대통령은 장ㆍ차관 워크숍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골프를 치라고 권했다. 이에 장관들은 “자비로 골프를 쳐서 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겠다”고 화답했다. “골프를 친 뒤 인증샷을 올리자” “내수진작 머리띠를 두르고 골프장으로 가자”는 농담까지 나올 정도로 내수 경기 활성화에 앞장서자는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정부 정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민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날로 높아가는 청년실업률, 크게 떨어진 제조업 가동률과 늘어나는 기업파산, 가계의 소득정체와 부채급증 등 주요 경제지표가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하면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힘든 민생, 지친 민심을 돌봐야 할 정치권과 정부는 당리당략과 무사안일에 빠져 할 일을 방기하면서 국민더러 골프치고 쇼핑하며 내수를 살리자고 하면 통할까.

고심해 내놓은 오프라인 중심의 쇼핑관광축제도 글로벌 소비 및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방식이다. 스마트폰이나 화장품, TV 등 제품을 멋지게 만드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게 글로벌 유통플랫폼 구축이다. 지난해 11월 11일 하루에만 912억 위안(16조5000억원)의 매출을 올린 중국 광군절光棍節에서 보듯 글로벌 소비는 홈쇼핑과 인터넷 쇼핑을 뛰어넘어 모바일 쇼핑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갑이 얇고 숫자도 적은 내국인보다 전 세계 쇼핑객을 겨냥한 전자상거래 생태계 구축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벤트성 행사로는 한계가 있다. 흥행을 유도한다며 할인 품목과 할인율을 지정하는 식으로 간섭하면 대형 유통업체가 제조업체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등 역효과가 난다. 민간이 더욱 자발적이고 창의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가 주도하고 유통ㆍ제조업체가 끌려오는 식으로는 외국 기업과 외국인 쇼핑객을 유인하기는커녕 미국 블랙프라이데이와 광군절로 몰리는 내국인 해외직구족을 돌려세우기도 어렵다. 한달 내내 벌이는 쇼핑축제로 소비가 반짝하겠지만, 행사 종료와 함께 이내 소비절벽이 닥칠 것이다. 싼값에 살 수 있음에 현혹돼 미래의 소비여력을 당겨쓰는 결과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벤트나 윗분들이 띠 두르고 나서는 캠페인이 우리 경제의 문제를 치유하는 근본 해법이 될 수는 없다. 단기 성장률보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정교한 플랜이 요구된다. 무너진 중산층을 복원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청년층도 내수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싸게 파는 것보다 살 수 있는 여력을 키우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소비는 소득의 함수다. 빚으로 소비하라고 정부가 꼬드겨선 안 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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