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병보석 특혜설 이상한 논박

▲ 간암 3기로 알려진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병보석을 받은 후 골프라운드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의 ‘병보석 특혜설’이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병보석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도 영 석연치 않다. ‘병보석 특혜설을 입증할 만하다’면서 자료를 뿌린 쪽이나 ‘자료의 신뢰성이 부족하다’며 맞받아치는 쪽이나 믿음이 안 가긴 마찬가지다. 대체 이 잡음의 실체는 뭘까.

운명의 2011년. 이 전 회장은 당시 1300억원대의 횡령과 배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과 2심에서 4년6개월의 징역형과 1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은 그는 태광그룹의 모든 임원직에서 사임했다. 이 전 회장의 횡령 등 사건은 현재 대법원 판결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현재 ‘자유의 몸(?)’이다. 2012년 6월 간암과 대동맥류 질환을 이유로 병보석을 받았다. 그가 교도소에 수감된 기간은 60여일에 불과하다.

4년여 잠잠하던 이 문제는 지난 9월 22일 촉발됐다. 더민주당(박범계ㆍ박민주 의원)과 정의당(노회찬 의원), 태광그룹 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참여연대ㆍ약탈경제반대행동ㆍ금융정의연대ㆍ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ㆍ흥국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ㆍ민주노총서울본부 희망연대노동조합) 등이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을 통해서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주목할 만한 사진이 공개됐다. 2012년 4월 항소심 첫 공판에 출석하면서 휠체어를 탔던 이 전 회장의 사진과 2015년 6월 검은 정장을 입고 태광그룹 계열사 대표들과 멀쩡히 서 있는 이 전 회장의 사진이었다.

간암(3기) 환자라고 병실에만 누워 있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간암 3기 환자 중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일상생활을 하는 이들은 적지 않다. 문제는 멀쩡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이 전 회장의 ‘병보석’이 설득력이 있느냐다. 병보석 결정이 ‘특혜’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 건 이런 이유에서다.

태광산업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은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괴로워했다”면서 “대법원의 승인을 받아 보석기간인 2015년 6월 24일에 49제에 참석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해 5월 이 전 회장의 모친(고 이선애 여사)이 별세했을 때 태광산업 측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 전 회장은 간암 3기로 병원을 벗어날 수 없으며, 의료진 역시 절대적 안정을 권하는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모친상 빈소를 지키지 못했다.” 한달 만에 완전히 말을 바꾼 셈이다. 

야당 의원들과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투본이 제시한 근거는 그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지난 8월 19일 시민단체인 서민민생대책위원회가 ‘이 전 회장이 그룹 임원들과 골프라운드를 했다’는 이유로 법원에 진정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 전 회장이 골프 라운드를 한 게 사실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병보석 특혜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서민민생대책위 주장의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을 펼친 야당, 시민단체도 “관련 자료를 확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원에 진정서를 낸 것으로 알려진 서민민생대책위 쪽에서도 의문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대책위 관계자는 “우리는 더이상 이 일에 관여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서 인터뷰를 피했다.

골프라운드 사건이 중요한 이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 전 회장의 병보석 특혜설을 몰아붙이는 데 ‘골프라운드’만한 소잿거리는 없다. 입증만 된다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한국 사회의 오랜 병폐도 꼬집을 수 있다. 그런데 왜 ‘골프라운드’는 비밀에 부쳐진 걸까. 뜻밖에도 여기엔 또다른 병폐가 숨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태광그룹 바로잡기 공투본 관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진실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짐작건대 골프라운드 사건과 관련, 태광산업 하청비대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 것 같다. 서민민생대책위가 진정서를 내고 난 후 하청비대위와 태광 측이 무슨 약속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안다. 이 전 회장의 외삼촌인 이기택(전 국회의원)씨의 아들이 하청 쪽 대주주라는 얘기도 있다. 둘이 공생관계였다가 틀어졌던 모양이다….”

태광산업 관계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골프라운드는 전혀 사실무근이다. 하청비대위는 이 전 회장의 친인척이 주축이다. 이전엔 일감을 몰아줬는데 그룹이 협력업체에 경쟁입찰제를 도입하는 등 관계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관계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우리 쪽에 흠집을 내고 있다. 진정서는 무혐의 처리됐다. 어떤 뒷거래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정황을 종합해보면, 태광산업과 태광산업 하청비대위 간 갈등이 ‘이호진 흠집내기’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골프라운드’가 공격수단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렇지 않았다면 ‘골프라운드’ 건은 세상에 알려졌을 것이다. 진정서가 무혐의 처리된 배경도 의문스럽긴 마찬가지다. 검찰 관계자는 “골프라운드 진정 건이 취하됐는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의 병보석 특혜설은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공식이 더 이상 통용돼선 안 된다. 태광산업 바로잡기 공투본 관계자는 “실제로 이 전 회장이 골프라운드를 하지 않았고, 법원 허가를 얻어 모친상 49제에 참석했다고 해도 그가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은 바뀌지는 않는다”면서 “병보석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게 팩트”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된다. 병보석 특혜설 뒤에 숨은 또다른 의혹도 낱낱이 밝혀내야 한다. 누가 작전을 쓰고, 이를 통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 이 전 회장의 병보석 특혜설 뒤엔 무엇이 있는가.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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