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의 人sight | 김선태 작은영화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김선태(51) 작은영화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전국의 작은영화관은 규모는 작지만 화면 품질이 CGV 못지않다”고 주장했다. 그가 창안한 작은영화관 덕에 군 지역에서도 서울과 동시 개봉하는 영화를 반값에 즐기게 됐다. 작은영화관은 지역 최고의 문화 인프라가 됐다. “돈은 안 되는 사업이지만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 치유가 됐다”고 그는 말했다.

▲ 김선태 작은영화관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저렴한 비용 덕분에 영화관 가기를 포기했던 주민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고 작은영화관의 성공비결을 밝혔다.[베티카 제공]
작은영화관사회적협동조합은 전국 16개 시군지역에서 작은 영화관을 운영하는 비영리법인이다(10월 말이면 18곳이 된다). 고용노동부가 인증한 사회적기업이기도 하다. 김선태 이사장은 이 작은 영화관 사업의 기획자이다.

김 이사장은 당초 디지털 시네마 기술을 개발하고 관련 장비를 만드는 글로벌미디어테크를 설립했었다. 국내 영화 시장에 대해 조사하다 ‘촌’에는 영화관이 없다는 사실에 착안했다. 시골에 영화관을 만드는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했다. 2010년 전국 100개 지자체에 개봉 영화관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서를 보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관심을 보인 곳이 인구 2만3000명의 전북 장수군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두번째로 작은 군 단위 오지. 그는 “인구 5만명쯤 되는 곳에서 안정적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너무 작은 군이라 시작할 엄두가 안 났습니다. 연락을 받고도 안 찾아갔더니 전화가 걸려 왔어요. ‘제안서를 보냈으면 와 봐야지 장수가 작다고 무시하는 거냐?’ 바람이나 쐬자는 생각으로 내려갔습니다.” 2010년 우여곡절 끝에 읍내 인구가 7000명에 불과한 장수에 첫 작은영화관 한누리시네마가 들어섰다. 문화회관 대회의실을 리모델링했다. 전북도청 공무원들이 당시 “망하는 건 시간 문제”라며 문 닫는 시기를 놓고 자기들끼리 내기를 하자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개관 후 3년 연속 적자가 났다.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사무관이 운영 실태를 알고 싶다고 찾아왔다. 영화관을 둘러보고 감명을 받은 그가 움직여 지자체가 5억원을 들여 작은 영화관을 만들면 정부가 5억원의 국비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손잡은 매칭 그랜트 방식의 작은 영화관이 전국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전국의 작은영화관은 서울과 동시에 개봉하고 매일 4~6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관람료(5000원)가 저렴해 남녀노소가 찾는다(영화 배급사들이 사회적협동조합인 작은영화관 취지에 공감해 배급료를 일반 영화관의 절반 수준인 2500원 받는다). 저소득층은 문화 바우처로 영화를 볼 수 있다. 최신 디지털시네마 시스템을 갖췄고 팝콘과 음료수도 싸게 판다. 저렴한 비용은 영화관 가기를 포기했던 주민들까지 끌어들였다. 어느새 해당 지역에선 모르는 사람도, 안 가 본 사람도 없는 문화의 중심지가 됐다. 지역 최고의 문화 인프라가 된 것이다.

작은영화관은 기본적으로 50석 규모의 상영관 두개로 구성돼 있다. 인구 3만~4만명인 지역에 최적화했다. 좌석 점유율은 CGV보다 높다고 한다. 좌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재방문율도 높다. 지난해 전국 13개 영화관에 48만6000여 명이 관객이 들었다. 관람료가 싸 투자비를 회수하기는 어렵지만 운영 적자가 나지 않을 만큼 수익도 낸다.
▲ ❶‘현대차 기프트카 셰어링 캠페인’ 전북 장수군 한누리 시네마. ❷전북 부안군 ‘마실 영화관’ 개관식. ❸인천 강화작은영화관. ❹전북 진안군 마이골작은영화관.[사진=작은영화관사회적협동조합 제공]
무엇보다 일자리가 변변치 않은 시골에서 전국적으로 1년 반 새 170개의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 냈다. 절반이 정규직이다. 약 100명이 여성. 김 이사장은 “작은영화관을 찾은 주민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일종의 치유가 됐다”고 말했다. “명량, 인천상륙작전처럼 장년층이 선호하는 영화는 거의 매진이에요. 시집와 30년 만에 처음 영화관 와 본다는 할머니도 있습니다.”

✚ 말 그대로 작은 영화관이라 그런지 개관에 큰돈이 드는 건 아니군요.
“전국적으로 군청에 남아도는 시설이 꽤 됩니다. 이들 시설을 리모델링했어요. 층고가 낮아 리모델링이 불가능하면 영화관을 새로 지어요. 이 경우 돈이 15억원가량 듭니다. 영화관을 신축하는 지자체들이 국비 지원금을 10억원으로 늘려달라고 하지만 재원이 없어 추가 지원은 어렵다는 게 문체부 입장입니다.”

✚ 사회적기업이면서 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를 취했습니다.
“문체부 지원으로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세금을 들여 정부와 벌이는 위탁 사업인데 비영리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작은영화관 사업의 모태인 글로벌미디어테크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만, 이 일은 공익성이 강한 사업이니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양질의 일자리 170개 창출

✚ 돈도 안 되는 사업을 왜 하나요? 작은영화관에 대한 애정인가요?
“지속가능성을 택했습니다. 착해야만 이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겠더라고요. 누군가 정부 재산을 이용해 돈을 벌어간다면 지역에서 납득을 하겠습니까? 운영계약 연장 때 공개입찰을 하는데 지역사회에 공헌한 게 없으면 연장을 해주겠어요? 아무개가 작은영화관을 만들어 열심히 운영했지만 돈 욕심을 부리다 결국 쫓겨났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어요. 말하자면 공공의 영역에서 퇴출 당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전략이었죠.”

✚ 작은영화관이 성공한 비결이 뭐라고 보나요?
“서울과 동시 개봉하는 편리한 영화 전용관이라는 콘셉트입니다. 사람들이 서울 시민과 똑같은 영화관을 원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공연도 할 수 있는 공연장 콘셉트도 생각해 봤지만 접었습니다.”

그는 시골이라고 이런저런 공연장이 없는 건 아니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콘텐트예요. 시골도 문화 인프라 자체가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작은영화관은 규모는 작지만 2개관에서 하루 다섯 편의 영화를 교차상영한다. 영화를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가서 두 편 중 하나를 골라볼 수 있다. 대도시 영화관과 다르지 않은 시스템이다.

김 이사장은 “화질 면에서는 오히려 CGV보다 낫다”고 주장했다. “요즘 영화는 프로젝터 기술로 빛을 쏘기 때문에 화질이 거리에 반비례합니다. 작은영화관은 CGV와 같은 영사기를 쓰는데 말 그대로 규모가 작아 스크린과의 거리가 가깝거든요.”

✚ 작은영화관 비즈니스 모델을 외국에 수출할 수도 있겠어요?
“수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일본ㆍ중국도 우리와 사정이 비슷합니다. 영화관이 대도시에 몰려 있고 시골엔 없어요. 그래서 이들 나라의 비영리 민간단체를 골라 우리 시스템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고 그 단체로 하여금 자국 정부로부터 인프라를 지원받도록 할 생각입니다. 이런 우호관계를 바탕으로 장차 두 나라 간 영화 콘텐트 교환도 해보려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세계적인 작은영화관 네트워크도 구축할 수 있을 거로 기대합니다.” 작은영화관은 독자적인 티켓 예매 시스템과 광고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 이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해외 영화를 싸게 들여올 수도 있겠네요.
“주류 영화 시장에 접근하는 건 쉽지 않겠지만 다양한 영화 쪽은 가능할 거로 봅니다.”

김 이사장은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삼성건설에 근무할 당시 IMF 체제를 맞았다. 때마침 벤처붐이 일어 ‘노가다’를 때려치우고 IT 쪽으로 전향했다. 그래서 만난 것이 디지털 시네마였다. 장수군에 1호 작은영화관을 만들 때 그는 리모델링 설계를 직접 맡았다. 스크린과 영화관 좌석을 그가 고안했다. IT와 건축의 만남. 그가 작은영화관 사업에 매달리게 된 또 하나의 동기이다.

✚ 작은영화관의 성과를 자평한다면?
“문화를 향유할 기본권을 확대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봅니다. ‘1000만 영화라고 하는데 우리는 못 봐’ 하던 사람들이 제 손을 잡고서 ‘영화관 지어 줘 정말 고맙다’고 합니다.” 작은영화관사협 측은 2020년까지 전국 109개 지역에 작은영화관을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필재 더스쿠프 대기자 stolee@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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