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국제학술지에 실린 삼성 노동자 백혈병 논란 "왜"

▲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제2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 백혈병, 직업병 증언대회에서 유가족이 눈물을 닦고 있다.
산업·환경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이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를 비중있게 다뤘다. 이 저널은 “삼성이 기업문화와 정책을 전환해 화학물질 사용에 있어 사전예방원칙을 적용하고, 관련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16년째 녹색기업으로 선정됐다.

내 딸을 종이컵처럼 쓰고 버려…” 올해 7월 26일 오전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피해자 한혜경씨의 어머니 김시녀씨가 말을 잇지 못했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소속 회원은 이들은 삼성전자와 5년째 힘겨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7월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환경부 업무보고에서 통합진보당 원내대표 심상정 의원이 환경부가 삼성전자를 ‘녹색기업’으로 선정한데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심 의원은 “삼성전자의 녹색기업 선정은 녹색성장기본법에 명시된 ‘사회적 윤리와 책임을 다 해야 한다’는 규정을 위반한 것”이라며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등으로 5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올해 1월 그린피스가 지정한 최악의 기업 3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심 의원은 “삼성전자 녹색기업 선정은 백혈병 관련 사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는 삼성전자의 천안, 온양, 기흥사업장 등 8개 공장을 지난 1996년부터 녹색기업으로 선정해왔다.

 
이에 앞서 산업·환경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인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이 2012년 7월에 발간한 최신호에서 삼성전자의 백혈병문제 관련 논문을 특별기고로 비중 있게 다뤘다. 5년 넘게 끌며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모으게 됐다.

환경부 “노동자 백혈병 논란, 소관 아니다”

국가적 망신으로 확대된 삼성의 백혈병 문제.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기업이 어떻게 16년째 녹색기업으로 선정된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환경부 녹색기술경제과 오종훈 사무관에게 문의했다.

-녹색기업 선정의 정확한 기준이 뭔가.
“녹색기업은 1995년부터 지정했고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지원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평가 항목에 따라 선정한다.”

-올해 6월말 기준 녹색기업으로 지정된 회사들의 평가내역을 공개할 수 있나.

“기업들의 영업비밀과 관련된 부분이 많아 공개할 수 없다.”

▲ 환경보건 분야의 저명한 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이 '삼성 백혈병'문제를 비중 있게 다뤄 화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문제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엔 세계적으로 저명한 ‘직업환경보건국제저널(IJOEH)’에서도 이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뤄 국제적으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어떻게 이런 기업이 녹색기업으로 선정된 것인가.
“녹색기업 선정에 관한 평가는 법에 있는 항목대로 평가한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노동자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고 있는 노동환경이나 삼성전자의 대처와 같은 부분은 고용노동부 소관으로 고용노동법에 따라 평가할 부분이다. 환경부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법적으로는 그렇다고 해도 정부에서 지정한 녹색기업이 노동자의 직업병 문제로 세계적인 학술지에까지 비중 있게 다뤄진 것은 국가적 망신 아닌가. 환경부가 발표한 녹색기업 신뢰성도 훼손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다시 말하지만 법에 명시돼 있는 데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환경부 소관이 아니다. 다만 평가항목 자체에 대해선 앞으로 좀 더 검토하고, 관련 소송의 결과를 지켜본 후 필요한 부분은 법 개정을 건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삼성전자의 변 “발암물질 기준치 이하다”

 
5년간 피해 제보 146명, 사망자 56명. 이 중 지금까지 산재처리 된 백혈병 환자는 1명이다. 백혈병 노동자와 삼성의 긴 싸움에서 핵심 쟁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법률상 산재입증책임은 피해노동자에 있고, 삼성전자는 입증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주장대로 백혈병과 작업환경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면 도대체 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일까. 삼성전자 국내홍보담당 김정석 부장에게 답변을 들었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 문제가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술지 IJOEH에 비중 있게 게재 됐다. 이제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논란이 예상된다. 저널에 실린 기사 내용에 대한 삼성전자 입장은 뭔가.
“게제 됐다는 기사는 봤다. ‘너희 기분이 어떻냐?’ 뭐 이런 걸 물어보는 거 같은데 노코멘트 하겠다. 아직 논문을 읽지 못했다.”

-번역까지 돼서 나왔는데 아직 내용도 읽지 않았다니 놀랍다. 대응 계획이 있기는 한가.
“이 문제는 하루 이틀 사이 제기 된 게 아니다. 오랜 기간 이슈화 됐고 방송사에서 나간 프로그램만 20여편이 넘는다. 각종 신문사에서 기사화된 건 셀 수 없이 많다. 이 모든 것에 일일이 대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쪽(삼성전자)도 많이 지친다.”

-논문은 “연구자들이 공장 관련 정보를 요구했지만 삼성전자 측에서 거부했다”고 밝혔다. 도대체 왜 정보를 공개 하지 않는건가. 백혈병과 작업환경에 상관관계가 없다면 당연히 정보를 공개하는 게 삼성전자에게 유리하지 않나.
“공개를 거부한 정보는 연도별 작업라인에 배치되는 인원 수, 작업라인에 노출되는 시간, 사용하고 있는 화학물질과 같은 영업비밀이다. 다른 기업에게 물어봐라. 이런 대외비를 공개하는 기업이 어디 있나.”

-상대방이 요구하는 모든 정보를 공개했음에도 상관관계를 밝힐 수 없다면 논란이 끝나지 않겠나. 통계적으로 유의적인 수치가 나온다 해도 상관관계를 밝히지 못하면 삼성전자가 책임을 벗을 수 있다고 본다. 정보가 문제될 것이 없다면 대외비라고 하더라도 밝혀야 하지 않나. 그래야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원칙을 저버릴 순 없다. 또한 정보를 공개한다고 이 논란이 종결될 것이라고 보는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사후퇴직자보상제도까지 도입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쪽에서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엔 백혈병으로 시작해서 이젠 온갖 병을 다 갖다 대고 있다. 하물며 병이 아니라 자살까지 우리 책임으로 몰고 있다.”

-발암물질은 전혀 다루지 않는다고 했는데 2009~2011년까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작업환경 정밀조사 결과 각종 발암물질이 검출 됐다. 어떻게 생각하나.
“발표를 봤으면 알겠지만 기준치 이하의 극소량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 하나 문제가 되고 있는 점은 삼성전자 관계자가 산재소송에 참관인으로 들어가는 거다. 행정소송 개입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산재소송을 담당하는 건강복지공단은 반도체 전문지식이 전무하다. 올바른 소송을 위해서는 전문지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참관인이 필요하다.”

-이번 논란이 어떻게 마무리되길 바라나.
“산재를 인정했을 경우 예상되는 피해 보상액은 사실 삼성이 쓰는 마케팅 비용에 비하면 적다. 원칙에 부합한다면 당연히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반올림이 밝히는 내용에 대해 비판적으로 질문해 보길 바란다. 그들이 말한 150여 명의 피해자가 정확히 어느 기간에 어느 작업라인에서 근무 했는가에 대한 것만 물어봐도 답하지 못할 것이다.”

반올림의 변 “독립적 기관에서 조사해야”

삼성은 ‘사후퇴직자보상제도’를 통해 충분히 보상했다고 밝혔다. 또 삼성전자 공장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하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말을 들어보면 논란의 여지가 없다. 보상도 충분히 했고, 법적 하자도 없어서다. 반올림 이종란 노무사에게 ‘왜 논란이 끝나지 않는자’에 대해 물었다.

-삼성은 사후퇴직자보상제도까지 도입하며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충분하지 않나.
“해당 제도의 적용요건이 터무니없이 까다롭다. 수많은 피해자중 적용 가능한 피해자는 단 둘 뿐이었다. 게다가 보상액도 지금까지 들어간 치료비만 보상 해주는 언론용 생색내기 제도였다.”

-2009~2011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작업라인에서 검출된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하라고 발표했다. 법정 기준치 이하면 문제없는 것 아닌가.
“기준치 이하라고 해서 암을 일으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극미량의 발암물질에 노출돼도 발암 가능성이 있다. 일반인에 비해 삼성 반도체 공장 노동자의 백혈병, 비호지킨 림프종의 발병률이 수십배나 높다. 이밖에도 여러 종류의 직업병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많다. 반올림이 삼성전자에 요구하는 것은 독립적인 기관에 의한 공개적인 조사다.”

심하용 기자 stone @ thescoop.co.kr | @ 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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