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공룡 벌크업 경쟁

▲ 유통업체들이 집객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 ‘몸집 키우기’ 경쟁에 돌입했다.[사진=뉴시스]
“우리가 가장 크다.” “아니다. 우리가 더 크다.” 불황의 시대,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 유통업계 빅3(롯데ㆍ신세계ㆍ현대백화점)가 이번에는 몸집 전쟁에 돌입했다. 자사 점포를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며 더 넓게 더 높게 몸집을 벌크업하고 있다. 그런데 욕심이 지나쳤던 것일까. 마냥 좋아할 줄 알았던 고객들의 불만이 흘러나오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신통치 않은 소비자들의 요즘 행동양식은 대략 이렇다. 하나, 지갑을 열지 않는다. 여의치 않으면 둘, 저렴한 걸 찾는다. 이보다 더 상황이 나쁘면 셋, 가성비가 좋은 것을 찾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유통업체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특히 유통채널 중 백화점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고가라는 콘셉트가 요즘 소비자와 도통 맞아떨어지지 않아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백화점 업계 판매액은 2013년부터 감소하고 있다. 2013년에 29조8004억원이던 전국 백화점 판매액은 2014년에 29조3230억원으로 줄었고, 2015년엔 29조2020억원으로 더 쪼그라들었다.

백화점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유통 빅3(롯데ㆍ신세계ㆍ현대백화점)도 예외일 순 없다. 빅3는 지난해 백화점 사업부문에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평균 10.1%나 감소했다. 롯데백화점이 -14.9%로 가장 많이 줄었고, 현대백화점은 -4.7%, 신세계백화점은 -2.8%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영업이익률은 2013년 8.5%에서 2015년 6.4%로 떨어졌고, 신세계백화점은 같은 기간 13.2%에서 12.4%로 하락했다. 현대백화점은 이들 두 곳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20%대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지만 하락폭(25.8%→21.1%)은 가장 컸다.

침체기가 예상보다 길어지자 유통업계는 ‘집객集客 효과’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이른바 ‘몸집 경쟁’이다. 몸집을 키워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롯데그룹은 크기와 높이로 상대를 압도하고 있다. 롯데월드몰은 부지면적 8만7183㎡(약 2만6373평)에 전체 연면적이 80만7614㎡(약 24만4303평)에 이른다. “선先레저, 후後쇼핑으로 여가와 쇼핑을 함께 즐기는 ‘한국의 레저핑(Leisure-ping)’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롯데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 쇼핑몰이자 월드클래스급의 유통 공간’이라며 롯데월드몰을 소개하고 있다.

오는 12월 완공 예정인 ‘마천루’ 롯데월드타워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555m)이다. 롯데는 이 롯데월드타워가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를 잡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의 ‘미래수직도시’로 만들기 위해 디자인 작업에만 약 3000억원이 투입됐다는 게 롯데물산측 설명이다.

백화점 침체, 돌파구 찾아라

신세계그룹은 ‘스타필드 하남’을 꺼내들었다. 정용진 부회장의 야심작인 이곳은 쇼핑·레저·여가를 한곳에서 즐기는 ‘쇼핑테마파크’다. 정 부회장은 “‘스타필드 하남’은 일상을 벗어나 쇼핑·레저·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쇼핑플랫폼”이라고 소개하며 “신세계그룹의 유통 노하우와 역량을 집대성한 만큼 다양한 니즈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1만7990㎡(약 3만6000평)의 부지에 45만9498㎡(약 13만9241평)의 연면적을 자랑하는 스타필드 하남은 ‘쇼핑테마파크’라는 콘셉트에 따라 엔터테인먼트, 식음 서비스, 쇼핑공간을 두루 마련했다.

현대백화점은 ‘더 큰 백화점’으로 승부하고 있다. 잠실운동장 7배 크기의 판교점을 낸 데 이어 2020년에는 여의도 파크원에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백화점을 출점한다. 지하 7층, 지상 9층 규모의 현대백화점은 영업면적만 8만9100㎡(약 2만7000평)에 이른다. 수도권 백화점까지 합하면 현대백화점 판교점(영업면적 9만2416㎡ㆍ2만8000평)에 이은 두번째 규모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국내 최고의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전사적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의 유통 노하우와 바잉 파워 등을 모아 판교점을 뛰어넘는 백화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쇼핑과 레저, 여가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몸집 큰 쇼핑 공간, 다 좋다. 문제는 교통이다. 특히 스타필드는 ‘교통대란’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 9월 9일 오픈한 스타필드는 시작 전부터 교통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였다. 동시주차 가능대수가 국내 최대 규모인 6200대에 달한다고 스타필드는 자부했지만 실제 차량 이용객이 이보다 많아 인근 지역이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외부 쇼핑객들은 “연휴나 휴일에도 가뜩이나 교통정체로 유명한 곳인데 거기다 스타필드까지 들어서니 그 근처는 갈 엄두도 안 난다” “정체를 각오하고 구경 한번 가봤는데 크기만 커진 쇼핑몰이 하나 더 생긴 것 같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대형매장이 들어서면 교통 불편이 가중된다.[사진=뉴시스]
지역 주민들의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지역 국회의원인 이현재(새누리당) 의원실에 따르면 스타필드 개장 이후 주변 주민들은 외부차량 유입에 따른 주차 피해, 쓰레기 투기, 소음 등의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주민 권진수(가명)씨는 “실제 교통량이 얼마나 증가했는지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지만 체감상으로도 예전에 비해 많이 막힌다”고 토로했다. 주민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이현재 의원은 당국에 “주민들의 피해가 당초 예상보다 크다”면서 “주민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속히 주차 공간을 확보하고 주변 환경을 정리해달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외부 쇼핑객들과 지역 주민들의 고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광역버스 노선이 적을뿐더러 지하철 5호선 연장선은 2018년 이후에나 개통 예정이라서다.

인근 지역 주차장으로 돌변

롯데월드몰과 현대백화점도 이 논란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이점은 있지만 주변 지역 교통난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롯데월드몰은 3773대의 차량을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잠실역 일대는 이미 교통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교통량 분산을 위한 우회도로 건설 계획은 주민들의 반발로 미뤄지고 있다. 현대백화점도 판교점을 개장하면서 지역 교통난으로 진통을 겪었던 터라 파크원 현대백화점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영호 김앤커머스 대표는 “유통업체들이 양적 팽창에만 급급해 소비자를 위한 편의와 부가가치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과연 벌크업 경쟁을 펴고 있는 유통업계의 질적 우위는 무엇으로 평가할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고객을 유도하는 건 ‘몸집’이 아니라 ‘콘텐트’라는 것이다.
김미란 더스푸크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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