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내부자들 ❹

▲ 조폭두목의 팔모가지도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게 잘려 나간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영화 ‘내부자들’에서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들의 뻔뻔스러움은 가히 충격적이다. 수틀리면 쇠톱으로 ‘팔모가지’를 썰어버리는 폭력도 일삼는다. 멀쩡한 사람을 잡아다 통닭구이를 하고 물고문을 하는 국가의 폭력은 이에 비하면 양호하게 보일 정도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따로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김병옥)과 재벌 회장(김홍파)의 술자리 장면이다. 공무원 직제상 장관급이라는 청와대 수석비서관은 ‘회장님’이 내리는 술잔을 무릎 꿇고 황송해 어쩔 줄 몰라 하며 받는다. 두 손을 머리보다 높이 받들어 모신다. 정권의 굴욕이다. 조선시대 임금이 내리는 ‘어사주’를 본인은 물론 가문의 영광으로 받들어 모시는 신하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연산군이 베푼 연회에서 어사주를 몇방울 흘리는 불경不敬을 저질러 유배를 가고 패가망신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와 유사한 모습이 21세기 대한민국 요릿집에서 재연된다.

흔히 정경유착政經癒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금권金權이 정권을 지배한다. 한 나라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조차도 수하 다루듯 하는 조국일보의 논설주간(백윤식)도 회장님 앞에서는 감히 기를 펴지 못한다. 회장님의 근위대장 조 상무(조우진)는 쇠톱을 품고 다니며 회장님께 불경한 자들의 팔다리를 썰어버릴 궁리에 여념이 없다.

유독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미국을 예로 들어보자.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대통령은 1등 자리를 넘보지 못한다. 1등ㆍ2등을 놓치지 않는 건 빌 게이츠나 테드 터너 등 경제인이다. 그들의 권력(영향력)은 세계 최고의 권력자라는 미국 대통령에게도 ‘넘사벽’이다. 게다가 그들은 임기도 없는 종신직이다. 선출직이나 임명직도 아니고 세습직이니 누구의 비위를 맞추거나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 재벌 회장이 가끔 뉴스에 옹색한 모습으로 링거 매단 휠체어 타고 검찰에 출두한다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 ‘열린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시민사회와 학문의 영역까지 돈의 힘이 침범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정치사회학자인 마이클 월처(Michael Waltzer)는 자신의 저서 「정의의 영역(Spheres of Justice)」에서 ‘정의란 하나의 영역에서의 영향력이 다른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다원주의’라고 규정한다. 돈의 힘이 경제의 영역을 넘어 정치와 언론까지 휘두르면 그 사회의 정의는 왜곡되고 훼손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오 회장은 돈의 힘으로 정권도 주무르고 언론도 통제한다. 돈으로 대통령 후보를 키우고 나라의 대통령 선거도 대규모 공사 따내듯 한다. 신문사를 먹여 살리는 광고비로 언론을 주무른다. 광고가 필요해서 광고비를 지출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의 광고비 지출은 제왕이 제후들에게 내리는 하사금下賜金이다.

마이클 월처는 돈의 힘으로 ‘섹스의 영역’까지 독차지할 수 있는 미국 사회를 개탄한다. 그의 개탄처럼 영화에서 오 회장이 주최하는 회식에 늙은 수컷들은 돈의 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절대 불가능했을 대한민국 최고의 ‘섹스’를 독점한다. 세상에 거칠 것 없는 조폭두목 천하의 안상구(이병헌)의 팔모가지도 돈의 힘 앞에서는 무력하게 잘려 나간다. 돈이 ‘폭력의 영역’까지 간단히 접수한 거다.

우리 사회에서 돈의 힘이 접수한 영역이 영화에서처럼 언론ㆍ정치ㆍ섹스ㆍ폭력의 영역에 국한될까. 돈의 힘은 수상쩍은 시민단체들의 수상쩍은 시위대가 광화문을 뒤덮게도 하고, 대학교수들의 실험과 연구결과도 뒤바꾸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자연의 법칙과 실험실의 기기조차도 돈의 위력 앞에 무릎 꿇는다. ‘열린사회’의 마지막 보루인 시민사회와 학문의 영역까지 침범한다. 마치 알렉산더 대왕이나 칭기즈칸처럼 ‘세상의 끝까지’를 외치며 무한 정복전쟁을 펼친다. 그사이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고통 받고 죽어나간다.
김상회 육영교육문화 연구원장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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