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서 혁신 선언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61) 롯데그룹 회장이 9월 29일 구속영장 기각으로 한숨 돌렸다. 한국 롯데 50년 역사에서 총수 구속이란 초유의 사태를 맞아 롯데가 또 한번 표류할 뻔했다. 경영정상화 및 개혁 방안 마련에 서둘러 나서는가 하면 현장 경영에도 시동을 걸었다. “롯데를 책임지고 고쳐 더 좋은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약속이 얼마나 잘 이행될지 두고 볼 일이다.

▲ 9월 2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신동빈 회장은 “롯데를 책임지고 고치겠다”고 약속했다.[사진=뉴시스]
“우리(롯데) 그룹에 여러 가지 미흡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제가 책임지고 고치겠다. 좀 더 좋은 기업을 만들겠다.” 신동빈 회장은 9월 29일 새벽 4시께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빠져 나오면서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 롯데 50년 역사에서 총수가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뻔했다가 겨우 한숨 돌리게 된 순간 그는 국민들에게 이런 약속부터 했다. 약 2년 전부터 형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면서 숱한 내우외환內憂外患을 겪었지만 ‘구속’이라는 위기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소감을 밝히는 순간 얼굴에 여전히 긴장감은 남아 있었지만 전날 출두할 때보다 표정은 가벼워 보였다.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신 회장에 대해 500억원대의 횡령 혐의와 1250억원대의 배임 혐의 등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당했다. 적시된 혐의는 ▲친척인 신동주(62)ㆍ서미경(57)ㆍ신유미(33)씨 등에 대한 500억원대 부당 급여 지급 ▲롯데시네마 매점사업 등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770억원 배임 ▲롯데피에스넷에 대한 계열사 부당지원 480억원 배임 등이었다.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검찰 측과 신 회장 측은 치열한 법리 논쟁을 벌였다. 결과는 신 회장 측의 일단 승리였다. 지난 4개월 간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던 검찰 조사가 기대에 못 미쳤다는 평을 들었다. 일감 몰아주기와 탈세 등의 범죄사실을 밝혀내는 데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비자금 조성과 제2롯데월드 수사를 비롯한 정ㆍ관계 로비 의혹 등을 밝혀내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 회장은 적시된 혐의가 아버지 신격호(94) 총괄회장이 경영 전권을 행사할 당시의 것으로 자신에겐 책임이 없다고 소명해 왔는데 법원이 이를 상당 부분 인정한 셈이 됐다. 검찰 측은 “피의자(신 회장) 변명에만 기초해 영장을 기각했다”며 법원 측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검찰은 6일 현재 불구속 기소냐 구속 영장 재청구냐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구속을 면한 신 회장이 앞으로 롯데의 미흡한 부분을 어떻게 책임지고 고치며, 좀 더 좋은 회사로 만들지가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새벽에 검찰 청사를 빠져나오면서 국민들에게 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당일 오후 1시 45분쯤 사무실로 돌아온 그는 바로 “이번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한다. 실행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서울 소공동 롯데타워 26층 집무실에서 정책본부 실장들을 만나 “(롯데 사태로) 가장 불안한 분들은 롯데 직원, 협력업체, 주주, 고객들일 것”이라며 “이분들의 안정을 위해 경영 정상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 이튿날인 9월 30일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 동안 롯데백화점 본점과 에비뉴엘, 영플라자 등 서울 소공동의 모든 매장을 돌아봤다. 개천절 연휴 첫날인 10월 1일 오후 3시부터 2시간에 걸쳐 현장 본부장과 함께 수원 롯데아웃렛 광교점도 방문했다.

국민 앞 약속 “롯데 고치겠다”

롯데 개혁 문제는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부분이다. 지난 2년 동안 벌여온 형제간 경영권 분쟁, “한국 기업이냐 일본 기업이냐”라는 한국 롯데의 정체성 문제, 창업주 신격호 총괄회장의 치매 논란 등으로 롯데의 이미지는 추락할 대로 추락했다. 이번에 구속영장이 기각되긴 했지만 4개월간 대대적인 검찰 조사를 받은 것도 이미지 손상에 가세했다.

지난해 여름을 한껏 달구었던 롯데 경영권 분쟁은 한국 재벌사에서 기록으로 남을 정도로 심각했다. 신 회장은 누누이 “죄송하다. 롯데를 고치겠다”고 다짐해 왔다. 이번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10월 중 개혁안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들려 주목된다. 개혁안에는 그룹 혁신안과 사회공헌안이 함께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창출과 윤리경영, 경영의 투명성 확보, ‘원톱’ 체제의 안정화, 국내외 기업 인수ㆍ합병(M&A) 방안 등이 제시될 전망이다.

특히 롯데그룹 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인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재추진 문제가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올해 호텔롯데를 상장할 계획이었지만 6월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무기한 연기됐다. 앞으로 호텔롯데 상장 건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 등을 감안해 추진할 방침이다. 상장 규정상 법률적 장애가 해소돼야 기업공개를 할 수 있기 때문.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주주들의 지분율을 99.0%에서 56% 정도로 낮출 계획이다. 지주사 체제 전환도 모색하고 있다. 호텔롯데 상장 자금으로 롯데건설 지분 등을 사들여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방침도 갖고 있다. 그동안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67개로 줄였으나 여전히 국내 최다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말인 12월 22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123층(555m) 완공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계획도 세웠다. 10월 2일 마지막 유리창을 달아 타워의 외관은 완성한 상태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재개장 및 서울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 취득에도 힘을 쏟고 있다. 검찰 수사로 중단하다시피했던 대규모 투자와 신규 사업에도 나설 태세다. 그동안 롯데케미칼의 2조원대 액시올사 인수건이 무산됐다. 롯데면세점과 롯데호텔이 각각 추진한 미국ㆍ호주 면세점 및 유럽 호텔 인수건도 중단됐다. 매년 7조원 상당을 국내외에 투자해왔던 만큼 건별로 경제성을 따져 재추진할 방침이다. 

재계 관계자들은 향후 롯데의 정상화 과정이 녹록지만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많이 내놓는다. 신 회장이 혐의를 모두 벗으려면 오랜 기간 재판 과정을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 대부분이 탈세ㆍ횡령 등의 혐의로 사법처리 대상이 되고 있는 점도 그룹경영에는 악재다.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구속 기소됐고, 서미경씨는 불구속 기소 상태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등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부모ㆍ형제와 화해도 ‘경영’  

신 회장은 ‘한ㆍ일 롯데 원톱 체제’를 꿈꾸며 지난 2년간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 등과 좌충우돌하며 내우內憂에 줄기차게 부딪혀 왔다. 지난 6월부터는 검찰수사라는 최악의 외환外患과도 씨름해야 했다. 국민들로부터는 부모ㆍ형제간 다툼과 한국 롯데의 정체성 문제로 눈총을 받아야만 했다. 안 그래도 유통 전쟁이 격심한데 이러한 내우외환 구조는 그의 운신의 폭을 크게 제한한다. 재계 5위권이란 지위도 한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는 큰 위기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부모ㆍ형제와 화해하는 것도 경영 능력에 속한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다. 분쟁은 전쟁을 통해서만 해결되는 게 아니란 얘기다. 인간사를 살펴보면 전쟁보다 협상을 통해 분쟁을 해결했던 적이 오히려 더 많았다. “신 회장이 언제쯤 내우외환에서 벗어나 그룹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을까” “롯데의 ‘원톱’ 체제가 온전하게 자리 잡을수 있을까” 롯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 두 가지 질문을 늘 갖고 롯데를 바라볼 것이다.
성태원 뎌스쿠프 대기자 lexlov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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