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필의 촌철살인

▲ 영화 암살, 밀정을 통해 잊힌 인물이던 약산 김원봉이 재부각됐다.[사진=제이누리 제공]
약산 김원봉은 의열단의 단장이었다. 일본 경찰이 백범 김구보다 높은 현상금을 걸었을 정도이니, 그의 활약상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수모는 정작 ‘해방’ 후 찾아왔다. 일본 고등계 형사 출신의 수사과장에게 체포돼 취조를 받은 것이다. 그는 사흘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그가 북으로 넘어간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지난해 1200만 관객을 모았던 영화 ‘암살’에 김원봉(1898~1958)이 등장해 화제였다. 그런데 10월 초 개봉한 ‘밀정’에도 김원봉이 나왔다. 조승우ㆍ이병헌이 각각 김원봉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영화는 의열단 단장인 그가 은밀히 작전을 지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약산 김원봉은 1948년 북한으로 넘어가 북한 정부 수립에 참여하고 고위직으로 지내다 김일성에게 숙청됐다. 이 때문에 남한에선 1990년대까지 좀처럼 거론되지 않던 인물이다. 이런 그가 일반 대중에게 관심을 받게 된 건 순전히 영화 때문이다.

그는 1920~1940년대 적敵은 물론 동포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젊은 독립운동가였다. “보기엔 우유부단한 것 같으나, 성질이 극히 사납고 또 치밀하여 오안부적傲岸不敵(거만하여 대적할 자가 없음)의 기백을 가졌고, 신출귀몰하는 특기도 가졌다(일제 기록).” 일제 경찰은 그에게 김구 주석(60만원)보다 많은 현상금 100만원을 걸었다. 지금으로 치면 200억원대 거액이다.

외모도 멋있었다. 님 웨일즈는 「아리랑」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고전적 유형의 테러리스트로 냉정하고 두려움을 몰랐다 … 거의 말이 없었고 웃는 법이 없었으며 도서관에서 독서로 시간을 보냈다 … 아가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가씨들은 그를 멀리서 동경하였다 … 미남으로 로맨틱한 용모를 가졌기 때문이다.”

1919년 11월 그는 22살 나이에 신흥무관학교 출신 13명이 만든 의열단의 단장이 됐다. ‘7가살七可殺(죽여도 될 사람), 5파괴五破壞’가 목표였다. 조선총독부 총독 및 고관, 일본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노, 친일파, 반민족적 대지주와 조선총독부, 동양척식회사, 매일신보사, 경찰서 등이다.

약산은 강조했다. “자유는 우리의 힘과 피로 얻어지는 것이지 결코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선 민중은 능히 싸워 이길 힘이 있다. 우리가 선구자가 되어 민중을 각성시켜야 한다.”

그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형사 황옥을 설득해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굉장한 정열의 소유자였어요. 자기가 만난 사람을 설복해 자기 동지로 만들겠다고 결심하면 며칠을 두고 싸워서라도 모든 정열을 쏟아 뜻을 이뤘지요. 그렇기 때문에 동지들이 죽는 곳에 뛰어들기를 겁내지 않았던 것 아닙니까? 그는 남으로 하여금 의욕을 내게 하는 사람이었지요.” 의열단원 김성숙의 회고다.

약산은 오랫동안 의열단을 이끌면서도 검거되지 않았다. 상하이上海 체류 시 거처가 일정치 않았다. 매일 밤 단원들 처소를 돌며 지냈다. 어떤 때는 베이징北京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의열단 실체는 단원들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일면으로 중국의 한인독립운동가가 거의 전부 단원인 것같이 보이나, 또 일면으로는 김원봉 1인의 의열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 의열단의 진상을 아는 자는 김원봉 1인뿐이다.”
그는 이후 조선민족혁명당(1935년)과 조선의용대(1938년)를 창건하고, 임정 군무부장(1944년)을 지내면서 한인 독립운동세력의 통합ㆍ단결에 노력했다.

그런 그가 해방되고 국내로 돌아와 큰 수모를 겪었다. 일제 고등계 형사 출신인 노덕술(수도경찰청 수사과장)에게 체포돼 취조를 받았다. 이후 그는 사흘 밤낮으로 울었다고 한다. “조국 해방을 위해 일본 놈과 싸울 때도 이런 수모를 당한 일이 없는데 해방된 조국에서 악질 친일파 경찰 손에 의해 수갑을 차다니 이럴 수가 있소.” 그가 북한으로 넘어간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조한필 제이누리 객원논설위원 chohp11@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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