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빨간불 켜진 LG전자 MC사업부

▲ MC사업부 부진으로 LG전자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사진:지정훈 기자>

# LG전자 스마트폰 ‘옵티머스 뷰’를 사용하는 최덕정(34)씨는 싸이언(LG 피처폰 브랜드)의 마니아였다. 남들이 삼성전자 갤럭시, 애플 아이폰에 열광할 때도 그는 ‘옵티머스 시리즈’를 고집했다. 주변 사람들이 “왜 LG스마트폰을 쓰냐”고 핀잔을 주면 “언젠가는 저력이 나올 것”이라며 LG편을 들었다.

하지만 그의 실망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LG전자 휴대전화의 강력한 무기는 감성 카리스마였다. 하지만 지금은 특유의 개성이 사라진 것 같다. 소비자를 세심하게 신경 쓴 흔적도 없다.”

최씨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이 사용하는 옵티머스 뷰의 단점을 일일이 꼬집었다. 그는 스마트폰을 구입한 지 사흘 만에 전용 인식펜을 잃어버렸다. 인식펜 거치공간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LG전자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이 지나치게 많이 내장돼 있는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사용자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이 앱을 깔아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MC사업부 또다시 적자 전환
 
옵티머스 뷰가 장점으로 내세운 4:3 화면비율 역시 최씨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웹을 검색하거나 앱을 구동할 때 화면이 확대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는 “개발자 입장에서 똑똑한 스마트폰은 소비자에게 정감을 주지 못한다”며 “조만간 갤럭시나 아이폰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했다. LG전자는 ‘충성고객’ 한명을 또 잃을 듯하다.

# 올 7월 23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전자상가 휴대전화 매장. 갤럭시S3, 베가 시리즈, 옵티머스 등 다양한 스마트폰이 진열돼 있다. 매장 점주들은 옵티머스 시리즈 판매에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한 점주는 “옵티머스 뷰, 옵티머스 LTE2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은 자취를 감췄다”며 “스마트폰이 10개 팔리면 잘 팔려봐야 1~2개 팔린다”며 한숨을 쉬었다.

사실 점주들은 LG전자 스마트폰을 팔고 싶어 한다. 판매 시 리베이트를 삼성 제품보다 많게는 약 10만원 더 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옵티머스를 추천하면 소비자의 반응은 냉담하다. 판매원 한모씨는 “옵티머스 LTE2 전면부의 백버튼은 보통 스마트폰과는 다르게 왼쪽에 있는데 손님들이 만져보고 불편하다며 내려놓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매원 유모씨는 “옵티머스 뷰는 4G 설정을 하지 않으면 문자도 볼 수 없다는 말이 웹사이트에 돌아다니는 모양”이라며 “소비자들은 사소한 것에 상당히 민감하다”고 말했다.

LG전자가 야심차게 내놓은 무선 충전기도 소비자의 마음을 흔들지 못했다. 소비자 정모씨(28)는 “무선 충전기에 호기심이 생겨서 매장을 방문했다가 10만원이 넘는 가격에 추가로 구매해야 한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템은 신선했을지 모르지만 구매로 이어지진 않았다는 얘기다.

7월 25일 여의도 본사에서 LG전자 2분기 실적발표회가 열렸다. 무대의 주인공은 MC사업부였다. 가장 많이 나온 말이 ‘MC사업부를 제외하고 (실적이 올랐다)’였다. 거의 모든 질문이 MC사업부에 쏟아졌다. 질문은 곧 질책이었다.

 
LG전자의 실적은 신통치 않았다. 올 2분기 매출액은 12조8590억, 영업이익은 349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전분기 대비 5.2% 증가했지만 영업이익은 22.1% 줄었다. 이유는 MC사업부의 실적 부진에 있었다.
다른 사업본부는 대체로 선전했다. TV 사업을 하는 HE사업부는 216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전체 이익의 62%다. 냉장고와 세탁기를 만드는 HA사업본부도 전년 동기 보다 180% 늘어난 165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문제의 MC사업부. 영업실적으로만 보면 말썽꾸러기가 따로 없다. 올 2분기 56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MC사업부의 장비사업을 제외하고 스마트폰 사업만 따로 분석하면 무려 58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휴대전화 출하량은 전분기 대비 4.3% 줄어든 1313만대에 그쳤다.

LG전자 MC 사업부는 지난해 4분기 120억원의 영업이익을 내기 전까지 7분기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2812억원에 달했다. 올 7월 초 국내 스마트폰 시장 2위를 탈환했다며 요란하게 축배를 들었지만 축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MC사업부의 끝없는 부진의 이유는 무엇일까. LG전자는 2010년 말 구본준 부회장을 CEO로 전격 발탁했다. 부진의 늪에 빠져 있는 LG전자를 구원해 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구 부회장은 ‘독한 경영’을 선포했다. 독하게 경영해 ‘피처폰 왕국’의 명성을 재연하겠다는 의지에서였다. LG전자 계열사의 핵심 부품이 총동원된 옵티머스LTE(일명 회장님폰)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LG전자 역시 ‘회장님폰’이 출시되면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소비자는 회장님폰에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역설적이지만 LG전자의 부진에서 소비자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하이테크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KT의 한 매니저는 “삼성•LG•팬택 3사의 원칩이 탑재된 유사한 사양의 모델을 묶어 시장에 내놓은 적이 있는데 LG전자 제품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며 “심지어 LG전자 스마트폰에는 2GB의 대용량 메모리가 탑재돼 스펙이 상대적으로 뛰어났음에도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은 건 의문”이라고 말했다. 소비자가 원하는 건 2GB의 대용량이 아닐 수도 있다는 방증이다. LG전자는 최고의 기술을 모아놓으면 소비자가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는 잘못된 전제에 빠졌다.

다른 회사를 보면 LG전자가 개발자 마인드에 빠져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팬택은 LG처럼 5인치급 대화면을 구현하길 원했다. 하지만 사용자의 그립감이 나빠진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결국 베젤(폰의 가장자리)를 최대한 얇게 구현하는 묘책을 생각해냈다. 사용자 편의가 개발의 1순위였다.

삼성은 갤럭시S3의 메인 광고문구로 ‘당신을 알아보고, 당신을 귀기울이고, 당신을 이해합니다’로 내세웠다. 하이테크가 소비자에 대한 이해와 접목됐을 때 나올 수 있는 기술들로 소비자의 구매욕을 자극했다. ‘인간을 위해 디자인 됐다(Design for Human)’는 문구 역시 LG전자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발자 위주 마인드가 걸림돌
일례로 ‘스마트스테이’기능은 눈동자를 인식해 화면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화면이 꺼지지 않게한다. 잠이 들어 눈동자 인식이 멈추면 저절로 꺼진다. 문자를 보내거나 웹서핑을 하는 동안에도 보던 영상을 계속해서 볼 수 있게 해주는 ‘팝업 플레이’ 기능도 인기다. 두 기능의 공통분모는 두말할 것 없이 ‘사용자 편의’다.

지금의 LG전자에는 과거 피처폰 때의 감성도, 혁신적 디자인 감각도 없다. 소비자가 아니라 개발자 마인드로 스마트폰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전문가들은 LG전자 스마트폰의 ‘개발자 위주’ 마인드가 걸림돌이라고 지적한다.

한 소비자는 “실제 타사 제품과 비교하면 개발자들이 최선을 다해 만들어놨으니 소비자에게 쓰라고 강요하는 느낌까지 든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MC사업부를 팔아야 LG전자가 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MC사업부가 빠진 LG전자는 단순한 가전회사에 불과하다. 기껏 쌓아놓은 하이테크 이미지도 사라진다. MC사업부는 이제 계륵이다. 계륵을 벗어나는 길은 간단하다. 소비자의 마음을 먼저 읽는 것이다. LG전자 MC사업부는 지금 기로에 서있다. 독한 경영보다 더 독한 ‘무언가’가 필요할지 모른다.

정다운 기자 justonegoal@thescoop.co.kr|@itvf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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